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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2주년]개발에 사라진 항일항쟁지…친일 인사 송덕비에 시비 투입

김동성 기자 ㅣ estar@chosun.com
등록 2021.03.02 11:44

경기지역 1919년 3월1일~4월 중순까지 367회 시위… 최대 20만9천명 참여
도내 지자체, 만세 항일 운동 유적지나 의병활동지 등 제대로 파악 못해
경기도, '경기도 항일운동유적 안내판 분포지도' 통해 항일운동 장소 정보 제공
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 항일문화자원 활용한 문화콘텐츠 개발 기대

1919년 3~4월까지 만세운동이 세 차례 일어난 평택시 평택역 원평동 방면 광장/사진=김동성 기자

한국 근대사에서 분수령을 이루는 역사적 사건을 든다면 3·1운동을 꼽을 수 있다. 

1919년 3월1일 만세운동은 전 민족이 일제의 가혹한 무단통치에 저항해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일어난 사건이다. 이전 한국 민족의 역량이 3·1운동에서 집대성됐고, 이후 한국 역사는 여기서 뻗어져 나갔다. 

만세운동은 청년, 학생, 천도교인, 기독교인, 주민 등 다양한 계층에 의해 주도됐다.

하지만 현재는 당시 격렬했던 만세운동의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지자체의 무관심과 도시화 과정에서 항일유적지가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3·1운동 102주년을 맞아 경기도 내 항일 유적관리의 실태 조명과 후대에 남길 방안을 모색해본다.

◆관리자 없고 친일 인사 송덕비 등 항일유적지 관리 엉망

3·1운동을 기록·보전해 후대에 알려야 할 경기도 내 지자체들이 만세운동이 일어난 시위지나 의병활동지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관리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일 도와 국사편찬위원회, 전문가 등에 따르면 도내에서는 1919년 3월1일 수원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4월 중순까지 도내 22개 부·군 전체에서 격렬하게 펼쳐졌다. 일제의 공식 기록에 의하면 도내 만세운동은 총 367회의 시위에 17만명~20만9000명이 참여했다. 이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횟수의 만세운동과 참여 인원을 기록했다.

도는 서울과 인접해 있고 서울로 통학하는 학생이나 직장인들로 인해 만세운동 소식을 빠르게 접했고 어떤 지역보다도 격렬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현재 도내 지자체는 항일유적지 파악을 하지 못하거나 등록 문화재가 아니라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고 친일인사의 공덕을 칭송하는 송덕비 설치에 세금이 투입되는 등 3·1운동 역사가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평택시 평택역 광장은 만세운동이 세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역 광장은 지역 만세운동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지만 시는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했다. 최근 도의 항일유적 안내판 설치 사업을 통해 위치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 역시 평택역 만세운동 광장을 번화가인 평택동 방면 광장으로 파악해오다 항일유적 안내판 설치 사업을 통해 반대편인 현 원평동 방면 광장으로 바로잡았다. 1919년 당시 원평동 방면 광장이 역사 주 출입구였으나,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오폭 이후 역을 다시 건설하며 주 출입문이 평택동 방면으로 바뀌면서 만세운동이 일어난 광장이 뒤바뀌었다.

안산시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아버지에 이어 친일을 하고 총독부를 찬양한 김완수 전 대부면장의 송덕비 건립에 시비가 투입돼 논란이 일었다.

2011년 대부도 일부 주민들이 시비가 투입되는 마을가꾸기 사업에 조선시대 우물을 복원하면서 현대식 송덕비를 새로 건립했다.

김 전 면장은 1933년 경기 연안 섬에 부천통운조합을 세워 인천-대부도 노선을 독점해 여객선을 운행했다. 요금을 인상하거나 정원초과, 과적 등 돈벌이에만 혈안이 돼 무리한 운행을 해 온 부천통운은 1945년 1월 정원초과와 과적 등으로 300여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통운호 침몰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65t 배에 정원의 5배가 넘는 인원을 태웠으며 구조된 사람은 73명에 불과했다. 

부천통운은 1940년 1월 매일신보에 '일본 황기 2600년 기념', '조선총독부 시정(施政) 30주년 기념' 축하광고 등 조선총독부 찬양광고를 개제하기도 했다.

정진각 안산지역사연구소장은 "친일 인사의 송덕비를 순국선열들이 본다면 통탄을 금치 못할 것"이라며 "그들의 친일 행적을 사실 그대로 함께 넣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이천시 신둔면행정복지센터에 일제강점기 당시 면장을 지낸 한봉교, 이일창, 이병석, 이병태와 도순사 박태근의 송덕비가 세워져 있다. 이들은 지역주민 수탈에 앞장서 온 친일 인사들이다/사진=김동성 기자

이천시 신둔면의 면사무소에는 5개의 비석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면장을 지낸 한봉교, 이일창, 이병석, 이병태와 도순사 박태근의 송덕비다. 이들은 지역주민 수탈에 앞장서 온 친일인사들임에도 면사무소 앞 정원에 자리 잡고 있다.

친일인사의 반민족행위는 교묘히 가려진 채 지역에 기여한 공적만 거창하게 소개된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안성시에 위치한 국립한경대학교에는 약 8m 높이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주인공은 안성 출신의 부호 박필병이다. 그는 1920년쯤부터 양조장을 경영했으며 1939년 안성농업학교를 세우는데 당시 10만원(현 15억원)을 기부했다. 당시 안성농업학교가 현재의 국립한경대다.

지역 유지인 그는 1920년대부터 식민통치기구인 경기도 도회의원을 지내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일본 쇼와 천황의 즉위 기념 대례기념장을 받았으며, 1941년 조선총독부 자문기구인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다. 1937년 중일전쟁 당시에는 안성경찰서에 고사기관총 구입비를 헌납했고 1939년에는 전시 체제 강화와 유도 신민화를 위해 조선총독부가 조직한 조선 유도연합회 평의원을 맡기도 했다.

대학원생 이모(27)씨는 "학교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만 알았지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며 "친일 인사의 행적을 공개하는 것이 마땅하나, 이 학교의 학생으로서 사실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이천시는 친일 활동 논란이 있는 월전 장우성 화백을 기념하는 이천시립월전미술관을 운영중이다.

시비로 운영되는 이 미술관에는 작가의 작품 전시와 함께 작품연보가 실려있지만 장 화백의 친일 행위는 명시돼 있지 않다. 홈페이지에도 조선총독부 주관 전람회 수상 내역 등은 찾아볼 수가 없다.

장 화백의 친일 활동을 살펴보면 1941년 조선미술전람회 조선총독상(2등상)을 시작으로, 1942~1943년 창덕궁상(1등상), 1944년 특선 등 다수 입상했다. 

장 화백은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3년에는 총독부 정보과가 후원한 '반도총후미술전람회(半島銃後美術展覽會)'에 일본화부 추천작가로 참여했고 1944년에는 군국주의를 찬양하고 황국 신민의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열린 '결전미술전(決戰美術展)'에 참가한 것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천시 관계자는 "월전 장우성 화백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파악하지 못했다"며 "친일 행적에 대한 설명을 넣을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이밖에 수원시는 항일유적지가 등록문화재가 아니라는 이유로 관리를 하지 않고 있으며 이천시와 평택시 등은 담당 직원조차 없어 항일유적지에 대한 조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화성시에 위치한 독립운동가의 집터는 십수년간 빈집으로 남아있는 등 관리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안성시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잘못 알려진 만세시위지 등을 재조사해 바로 잡고 있다. 당시 만세운동이 일어난 군청 자리가 1928년 이전한 현 안성1동 주민센터로 잘못 표기돼 현재 안성초등학교 운동장 옆으로 바로잡았다.

항일유적지에 대한 조사와 관리, 보전에 지자체의 관심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3·1운동이 올해 102주년을 맞았음에도 지자체 등의 무관심으로 만세운동 역사가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며 "항일유적지를 발굴하고 친일 인사의 행적을 바로잡는 등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1908년 10월 이익삼 의병장의 항일 무대인 현 광주시 중대동 일원에 아파트와 학교, 상가 등이 들어서 있다/사진=김동성 기자

◆무관심에 사라지는 항일 유적지

1908년 10월 이익삼 의병장의 항일 무대인 현 광주시 중대동 18번지 일원은 도시화가 진행돼 업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달 25일 찾은 태전리 이익삼 의병장 전투지는 아파트를 비롯, 학교, 편의점, 한의원 등 각종 상가들이 들어서 있었다. 인근에는 이익삼 의병장의 전투지라는 것을 알리는 안내문도 없었다.

이 지역에서 18년째 살고 있는 주민 이모(34)씨는 "이 지역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일본과의 전투가 벌어진 것은 처음 알았다"며 "주위에 초등학교와 아파트가 있는 만큼 안내판 등을 설치한다면 좋은 역사교육의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달 26일 찾은 의왕시 국어학자 일석 이희승 선생의 생가가 있던 자리에는 주택과 빌라 등이 들어서 있었다. 그는 조선어학회 활동을 통해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학자다. 하지만 2017년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취락지구를 개발한다는 명목하에 역사적으로 고증하고 보존해야 할 이희승 선생의 생가가 사라져버렸다. 이희승 선생의 생가가 있던 곳이라는 것을 알리는 어떠한 표시도 없다.

수원시는 1919년 3월25일 수원시장 일대 장날에 맞춰 청년과 학생이 중심이 돼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10명이 체포됐다. 상인들은 시위대 체포에 항의해 점포의 문을 닫는 철시 시위를 전개하기도 했다. 현재 수원시장은 지동·영동시장 등 시장 규모가 커졌음에도 만세 시위지를 알아볼 수 있는 흔적은 없는 상태다.

도내 시·군의 무관심으로 항일유적지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가운데 도가 항일유적지 알리기 사업을 펼치고 있다.

도는 도내 항일 유적건조물과 집터, 시위지·전투지 등 219개소를 조사(2016~2017년)했으며 2018년부터 현재까지 120곳에 안내판·표지판 등을 설치했다고 2일 밝혔다.

도는 '경기도 항일운동유적 안내판 분포지도'를 통해 도내 31개 시·군 곳곳에서 메아리쳤던 항일운동의 정신이 깃든 장소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와 함께 도는 지난해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조사·연구' 용역 결과 도내 친일 인물에 대한 공덕비 등 기념물이 161건 확인됨에 따라 기념물에 안내판을 설치할 계획이다. 

도 관계자는 "항일운동 유적에 설치한 안내판과 친일기념물 안내판 등은 모두 선열들의 고귀한 정신을 전파하는 기억의 매체"라며 "도는 이를 지켜나가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가 ‘항일유적지 알리기 사업’을 통해 성남시 분당구 낙생고등학교 정문에 '낙생면사무소 3·1운동 만세 시위지' 안내문을 설치한 모습/사진=김동성 기자

◆일제강점기 문화유산 보존과 활용 절실

엄유나 감독, 유해진, 윤계상 배우 주연 영화 '말모이'는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어학회 사건'을 다뤘다. 이 사건은 일제가 조선인 민족말살 정책에 따라 한글을 연구한 학자들을 민족의식을 고양시켰다는 죄목으로 탄압·투옥 시켰다.

경기지역에는 영화와 같은 독립운동가나 항일유적지가 없을까?

바로 의왕지역 국어학자인 일석 이희승 선생이 있다. 그는 1930년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했고 간사장을 맡기도 했다. 1942년 일제는 조선어학회를 민족운동 단체로 규정해 '조선사상범 예방 구금령'과 '치안유지법 위반'을 근거로 이희승 선생과 관련학자들을 검거했다. 이희승 선생은 1945년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6개월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해방으로 출옥했다. 이희승 선생은 1962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또 전국 3대 실력 항쟁지 중 남한에서 유일하게 꼽힌 안성시 양성·원곡면도 있다. 안성지역의 4·1만세운동은 일제 치하에서 유일하게 이틀간의 독립을 맞이했다.

거사가 있었던 1919년 4월1일 원곡면사무소 앞에는 1000여명이 모여 "독립 만세"를 외쳤다. 당시 양성면사무소 앞에서도 1000여명이 운집해 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이들은 합세해 양성경찰관주재소, 면사무소, 우편소 등을 불태웠다. 양성·원곡면에 있던 일제 통치기관을 무력화 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당시 양성·원곡면에 있던 일본 경찰, 공무원, 민간인들은 모두 만세 행렬을 피해 평택 등 인근 지역으로 도피했다. 이로써 양성·원곡면은 4월1∼2일 이틀간 일본인을 몰아내고 짧은 해방을 맛봤다.

도와 시·군 등 지방자치단체와 박물관·미술관·문화재단 등 공공기관은 이 같은 항일문화자원을 활용해 문화콘텐츠 개발을 기획·추진할 수 있다.

문화콘텐츠 개발·기획하고 추진할 수 있는 주체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등 2가지로 구분된다.

공공부분은 ▲항일문화자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서비스 사업 ▲항일문화자원을 활용한 문화콘텐츠 제작 및 서비스 지원 사업 ▲공공기관이 자체적으로 문화콘텐츠를 개발하는 사업 등이다.

민간부분은 ▲영화나 연극 등과 같이 항일독립운동을 소재로 한 문화상품을 개발 ▲공공기관의 행정적, 재정적 지원과 협조를 통해 문화콘텐츠를 제작 서비스 제공 ▲일반 시민이나 교사 등이 교육자료나 프로그램 자료, 연구 자료 등으로 활용하거나 작가나 연출가들이 창작 소재로 활용할 수 있게 향유자로서의 활용 등이다.

도내 항일문화자원이 활용된다면 도서를 비롯해 영화, 드라마, 웹툰, 캐릭터, 음악, 뮤지컬, 연극, 게임, 체험·교육프로그램, 관광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만날 것으로 기대된다.

강진갑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장은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다보니 항일유적지에 아파트와 상가건물, 편의시설이 들어서는 등 도시화로 인해 사라지고 있다"며 "현재를 사는 세대는 항일유적지를 발굴하고 관리, 보존해 후대에 전해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만큼,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해 청소년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3·1운동 102주년을 맞아 항일독립운동가와 항일독립유적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며 "항일의병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름을 남기지 않고 순국했는지 숫자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그 항일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그 흔적을 찾아 항일유적지로 보존하고 기억하는 일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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