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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칼럼]윤석열 유감(遺憾)

[정상혁 기자]
digihyuk@chosun.com
등록 2021.06.30 13:39

디지틀조선일보 방송본부장 정상혁.

시대정신은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소망 결정체다. 그것은 국민들 마음 속에 발아돼 나무가 되고 마침내 숲을 이뤄 세상을 바꾼다.

박정희 대통령은 전후 잿더미가 된 나라에 무엇이 필요한지 꿰뚫어 봤다. 그는 1963년 대통령 선거 유세장에 몰려든 청중들을 보고 “저 많은 실업자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배고픔의 해결, 산업화는 당시의 시대정신이었다. 박 대통령은 외국 차관을 들여와 공장을 짓고 댐을 건설하고 고속도로를 깔았다. GDP 경제 규모 세계 10위라는 한국의 현주소는 50년 전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은 리더와 그를 따른 국민들의 합작품이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산업화 다음의 시대정신을 간파했다. 바로 민주화였다. 그들은 초고속 성장의 그늘을 봤고,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읽었다. 그래서 군사독재를 청산해 문민정부를 세웠고 탈권위의 참여형 진보정부를 탄생시켰다. ‘위대한 국민에의 헌사’라는 제목의 김대중 대통령 퇴임사엔 그가 일찌감치 꿰뚫은 시대정신 민주화에 대한 확고부동한 역사적 소명이 담겨있다. “저는 민주주의와 나라의 발전, 그리고 조국 통일을 위해 일생을 바쳤습니다. (중략) 역사는 결코 불의에게 편들지 않습니다. 역사를 믿는 사람에겐 패배가 없습니다.”

어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선출마 기자회견이 있었다. 1시간 가량 이어진 그의 발언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 일색이었다. 마치 검찰총장 때 겪은 온갖 수모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는 듯 했다. 납득이 안 가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호를 이끌어 가겠다는 큰 뜻을 품은 마당에 미래 청사진보다 현정부 비판에 비중을 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21세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든 두 개의 시대정신 ‘산업화’와 ‘민주화’는 이제 그 소명을 다했다. 세계는 지금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대감과 더불어 날로 벌어지는 빈부격차 그리고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감이 공존하고 있다. 새로운 지도자는 이런 조류 속에서 국민 개개인의 마음 속에 둥지 트고 있는 열망이 무엇인지 간파해야 한다. 민주화 뒤를 잇는 대한민국 시대정신의 실마리는 여기서 찾아야 하고 이를 선취하는 자가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이다.

헤겔은 “시대의 한복판에선 정작 시대정신이 보이지 않는다”며 “숲을 벗어나야 숲이 보이듯 시대가 끝날 때 비로소 시대정신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맞는 얘기다. 그러나 불확실성과 자기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자신이 믿는 시대정신의 기치(旗幟) 아래 사람들을 모아 끌고 가는 게 지도자의 역할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선대 대통령들이 그러했다. 만일 국운이 다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내년 3월 향후 백년의 부흥을 가져다 줄 새로운 시대정신 깃발 아래 헤쳐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