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기적' 박정민 "아직도 카메라가 무서워요…좌절이 취미죠"

[이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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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1.09.13 17:39

'기적' 박정민 화상인터뷰 /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박정민은 '녹아든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배우다. 이번 '기적'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찻길밖에 없는 어느 시골 동네, 작품 속에는 어떻게 해서든 마을 사람들에게 간이역을 만들어주고 싶어 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소년이 있다. 때 묻지 않은 시골 소년은 마냥 순박하지도, 그렇다고 마냥 철이 없지도 않다.

박정민은 극 중 수학 천재인 '정준경'을 연기하면서 적당한 순수함과 적절한 감정 연기로 관객의 공감대를 이끌어 냈다. 흰쌀밥 같은 매력으로 어떤 상대와도 각각의 케미를 만들어내는 박정민과 영화 개봉 전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작품은 오랜만에 스크린을 찾은 가족 드라마다. 웃음과 감동, 그리고 공감까지, 미소와 눈물을 머금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이런 매력 때문인지, 박정민은 여느 작품보다도 '기적'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했다. 함께한 사람들도 좋았고, 환경도 좋았고,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그를 사로잡았다.

"첫 번째는 사람 때문인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들면서 특별히 돈독해진 것도 같고, 서로를 너무 아끼다 보니까 영화에 대한 마음이 저절로 커졌던 것 같거든요. 모든 배우들이 이 영화에 참여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시나리오였는데, 이야기가 가진 힘이 너무 따뜻하고 강해서 마음을 울리는 요소들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작품을 좋아하게 됐죠"

"저는 제가 나온 영화를 그렇게 재밌게 보지 않는 편인데, 이 영화는 제가 같이 영화를 만들었던 기억이 덧붙여져서 인지는 몰라도 마음이 더 가더라고요.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긴 소풍을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어느덧 30대 중반의 나이지만, 이번에도 박정민은 10대 고등학생 역할을 소화했다. 앞서 '더 이상 학생 역은 안 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고, 나이가 나이인지라 고사할 마음을 먹고 감독을 만났다. 그런 그를 붙잡은 건 이장훈 감독이었다.

"제가 30대잖아요. 이 시나리오가 정말 좋았는데, 감독님께 할 수 없다고 말한 이유가 나이 때문이었어요. 작품 처음 받았을 때 34살이었는데, 17살인 준경이를, 등장인물의 두 배를 더 산 배우가 할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나는 할 수 있다 치더라도 관객분들이 그걸 용서해주실까 싶었어요"

"감독님께서도 같은 고민을 하고 계셨던 거죠. 그렇게 미팅을 하면서 감독님이 정말 좋은 사람 같았고, 조금씩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어요. 마지막에 정준경이라는 명찰이 달린 펭수 인형과 우산, 선물을 잔뜩 가져오셔서 거기에 마음이 녹았죠.(웃음)" 게다가 전작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는 트랜스젠더로 파격 변신을 했던 박정민이다. '기적'에서 180도 다른, 시골 소년을 연기해야 했던 박정민은 스스로 그 변화의 폭을 견뎌야 했다.

"어쩌다 보니 역할의 갭이 커졌어요. 제가 의도적으로 도전적이거나 특이한 걸 고르는 건 아니거든요. 준경이는 감독님께서 표현해주신 단어가 아주 적절한 것 같아요. '흰쌀밥 같은 역할'이거든요"
"'다만악'에서 독특한 역할을 했다 보니 '기적' 초반에 찍을 때는 제가 너무 뭘 안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연기를 해야 하는데 뭔가 허전한 느낌. 그런데 감독님은 좋다고 하시고, 저는 불만족스러운 순간이 있었어요"

"저는 항상 만족은 없는 것 같아요. 만족을 잘 하지 않아요. 매 작품마다, 어떤 역할이냐, 감독님이 어떤 연기를 원하느냐가 다르니까요. 짧지만 저도 연기를 해보니 감독님마다 원하는 게 너무 다르세요. 그래서 어떤 감독님과 작품을 만나던 내가 유연하고 빠르게 녹아날 수 있도록 훈련한다는 생각이에요. 내 생각만 고집하는 버릇을 고치려고 했어요"
박정민은 극 중 임윤아와 풋풋한 첫사랑을 그려냈다. 두 배우 모두 30대이지만, 작품에서만큼은 시골 소년소녀의 순수한 눈빛으로 돌아가 관객의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었다. 특히 평소 소녀시대의 팬으로 알려진 박정민은 임윤아와의 호흡을 묻는 말에 '그저 좋았다'고 답했다.

"윤아 씨는 제 마음의 스타였죠. 처음에는 어떻게 다가가서 편하게 해야 하지? 하는 고민을 했는데, 촬영장에서 만나고 보니 윤아라는 사람 자체가 너무 좋은 사람이어서 어떤 장난도 재밌게 받아줄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장난도 치면서 굉장히 가까워졌고, 전혀 어색함 없이 촬영할 수 있었죠. 영화를 보면서도 '윤아랑 더 재밌게 촬영했던 장면이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이젠 '믿고 보는 배우'로 꼽히는 박정민은 아직도 카메라가 두려울 때가 있다고 했다.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아직도 매 테이크마다 좌절하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완벽주의자였다. 그런 그의 생각을 바꾸게 해준 작품이 '기적'이다. 박정민은 이번 현장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무언가를 얻었다.

"저는 카메라가 아직도 좀 무서워요. 배우라는 카테고리 안에는 여러 배우들이 있는데, 카메라와 함께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있고, 관객과 연기하는 배우들이 있고, 다 같이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카메라와 함께 호흡을 해줘야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겁이 날 때가 있더라고요"
"좌절도 많이 하고 있어요. 거의 매 테이크마다 하고 있고요. 좌절이 취미라, 예전엔 그 감정에서 제가 안 나오려고 발버둥을 쳤던 것 같아요. 그 안에서 동굴 파고 들어가야 더 좋은 게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그 생각이 바뀌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