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칼럼]화살촉들은 무엇을 먹고 사는가?

정상혁 기자 ㅣ digihyuk@chosun.com
등록 2022.01.10 15:44

디지틀조선일보 방송본부장 정상혁.

뇌의 확증편향을 논할 때 ‘투명 고릴라(Invisible Gorilla)’ 실험이 자주 언급된다. 1999년 미국 심리학자 대니얼 사이먼스와 크리스토퍼 샤브리스가 농구선수들의 패스 횟수를 맞추는 실험을 했는데 피실험자 40% 이상이 볼 세는데 집중하느라 경기장에 나타난 고릴라 인형을 보지 못했다. 우리 뇌는 새로운 정보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취사선택해 유리한 것만 본다. 오랜 세월 쌓아 온 정치·종교적 신념 앞에서 이 확증편향성은 더욱 견고해진다. 기존 신념과 대립하는 정보를 받아들이기 위해 에너지를 소진하기보다 일관성 유지라는 편리함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소통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조성되면서 개개인의 확증편향성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 끼리끼리의 대화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신념 정당화를 위해 편향적 억지 주장을 수용하고 진실엔 눈을 감는다. SNS에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활개를 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드라마 ‘지옥’에 나오는 인플루언서 화살촉은 권선징악을 외치며 스스로 신의 심판 대행자 반열에 올랐다. 그가 뱉어내는 밑도 끝도 없는 낭설에 현혹된 추종자들은 정의의 이름으로 무고한 시민을 폭행하고 심지어 살인도 불사한다.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에서도 인플루언서들의 영향력은 가공할 만하다.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에베레스트 산 크기의 혜성. 이것을 상업적으로 이용하자는 대통령 추종세력과 빨리 파괴해 지구를 구하자는 세력이 분열돼 SNS에서 격론을 벌인다. 지식인과 전문가들은 여론을 주도하기는 커녕 인플루언서들과 영합해 선동에 가담하고 그러는 사이 인류 멸망이라는 진실은 희미해진다.

화살촉과 같은 인플루언서들은 무엇을 먹고 살까? 팔로워의 ‘좋아요’와 ‘슈퍼챗’이 없으면 그들의 생명력은 끝이다. 팔로워는 자신의 확증편향적 신념을 확인해 주는 인플루언서에겐 기꺼이 좋아요를 누르고 슈퍼챗을 쏘지만 그렇지 않으면 가차없는 비난 댓글과 언팔로 대응한다. 이 생리를 너무 잘 아는 인플루언서들은 더욱 편향되고 극단적인 컨텐츠로 팔로워들의 비위를 맞춘다. 정치 유튜버들의 발언이 점점 선정성을 띄고 극단을 향해 치닫는 이유다. 전북대 신방과 강준만 교수는 저서 ‘감정독재’(인물과사상사)에서 “특정 논객과 지지자들의 관계를 ‘멘토-멘티’의 관계로 본다면 멘티들은 멘토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보내다가도 멘토가 자신이 애초에 갖고 있었던 구도나 틀을 넘어서는 발언을 하게 되면 하루아침에 무시무시한 적으로 돌변해 돌을 던질 수 있다”며 “멘티들이 원한 건 ‘확증’이지 새로운 사고·관점·해석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정치인의 처지도 인플루언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국론 분열의 원흉으로 정치인들이 자주 지목되지만 그들 또한 대중의 확증편향에 영합할 뿐이다. 사회 분열 구도라는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는 대중이고 차상위는 인플루언서, 정치인은 그 밑에 존재한다. 인플루언서가 팔로워의 구미에 맞는 컨텐츠로 연명하는 것처럼 정치인은 포퓰리즘 공약으로 정치생명을 이어가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는 지난해 7월 “반대되는 정치 성향의 뉴스를 일부러 찾아보는 사람은 25.8%에 불과하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나머지 53%는 ‘일부러 찾아본 적은 없고 우연히 접해서 본 적은 있다’고 대답했고, ‘거의 본 적이 없다’는 답변도 12.6%에 달했다. 화살촉들과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활개치기 딱 좋은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미디어 소비에 있어 스마트해져야 한다. 망국적 분열을 조장하는 자들이 미디어 공론의 장에 얼씬도 못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생태계 최상위에 있는 대중의 몫이기 때문이다. 지금 혹시 특정 매체를 편식하고 있거나 비슷한 정치 성향의 SNS 친구가 지나치게 많고, 특정 정치 유튜버에 흠뻑 빠져있다면 확증편향 중증을 의심해 봐야한다. 미국 코넬대 사회심리학자 토머스 길로비치는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정보에 지나치게 점수를 많이 주는 것은 불리한 정보를 무시해버리는 쪽이 편안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애써 무시해 온 불편했던 진실과 마주해 보자. ‘내가 틀렸을 수도 있음’을 인정할 때 비로서 나를 애꾸로 만든 화살촉의 실체가 명약관화하게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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