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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많이 울었기에 많이 웃길수도 있는, '고경표'

조명현 기자 ㅣ midol13@chosun.com
등록 2022.08.20 00:01

영화 '육사오'에서 천우 역을 맡은 배우 고경표 / 사진 : 싸이더스 제공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어요. 많이 내려놨어요. 어머니는 저에게 하나의 세상이었고요. 그 세상이 없어진 거거든요. 저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가족 모두 다 같이 죽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우린 다시 시작해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고요. 그 시간이 지나 힘든 것도 힘들게 안 느껴져요. 이미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이라고 생각하는 걸 겪었으니까요."

배우 고경표는 지난 2020년 9월 26일 어머니와 이별했다. 어머니의 투병 소식을 알게 된 것은 군대에서였다. 힘들었다. 아픈 어머니의 곁을 지키지 못한다는 슬픔까지 더해졌다. 그렇지만, 고경표에게 군대는 힘든 곳만은 아니었다. 곁에 사람이 있었다. 밖에서는 5~6시간 정도의 만남인데, 군대에서는 24시간의 만남이 지속됐다. 같이 눈떠서 하루를 시작해 같이 잠드는 시간들이 모였다. 그 속에서 배우 주원, 래퍼 빈지노, 그리고 그룹 빅뱅의 멤버 태양, 대성과 '군뱅'을 결성하기도 했다. 군대에서 만난 형들은 여전히 고경표에게 꿈을 꾸게 하는 좋은 형들이다.

아마도 군대에서 겪은 자신의 경험이 고경표를 영화 '육사오'에서 만나게 한 건지도 모른다. 고경표는 2018년 6월 입대해서, 2020년 1월 제대했고, 약 1년 후에 군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육사오' 현장에 임했다. '육사오'는 최전방에서 복무 중인 병장 천우가 주운 1등 당첨 로또를 북으로 날려 보내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코믹 영화다. 고경표는 "군대에서 저와 함께 지낸 분들이 다 잘해주셔서요. 군대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 없어요. 무엇보다 '육사오' 시나리오가 재미있었고요. 관객 입장에서 봤을 때, 예측이 잘 안됐어요. 천우가 처한 상황이 점점 커지고,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이 재미있어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라고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말한다.

영화 '육사오' 스틸컷 / 사진 : 싸이더스 제공

"천우에게 담고 싶었던 것은 '순수함'이에요. 위험한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로또에 대한 집중력이 순수하게 전해지길 바랐어요. 천우가 동물을 사랑하는 인물로 나오는데, 그런 사람치고 크게 나쁜 사람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촬영하다 보니, 처음 생각한 것보다 천우가 더 착한 친구더라고요. 물욕만 가진 게 아니라 마음도 예뻐요. 로또 당첨금으로 동물도 행복한 농장을 차리겠다잖아요."

"천우가 천 마리 소를 키우는 큰 사람이라는 뜻이거든요. 군인 아저씨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군인들은 20대 초반의 어린 친구들이잖아요. 사회 초년생의 느낌이 천우에게 드러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살을 찌웠어요. 야식을 엄청나게 먹었어요. 제가 '사생활' 때 70kg대였거든요. 그런데 '육사오' 찍을 때 89kg까지 찌웠어요. 천우의 성격이나 사회 초년생의 순수함이 느껴지도록요."

고경표는 천우를 통해 다양한 표정을 보여준다. 사실 그는 데뷔 초 'SNL 코리아', 시트콤 '감자별 2013QR3'에서 코믹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특히, '감자별 2013QR3'에서 보여준 약올림 짤은 '밈'이 되어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는 약올림 짤 언급에 "이모티콘도 그 표정으로 생기더라고요"라고 웃으며 답변을 이어갔다.

영화 '육사오' 스틸컷 / 사진 : 싸이더스 제공

"데뷔 초 장진 감독님과 함께한 'SNL 코리아', 정범식 감독님과 함께한 '무서운 이야기2' 등의 작품에서 배운 것들이 '육사오'에 큰 도움이 됐어요. 웃기려고 해서 웃기면 안 되거든요. 상황 자체에 진정성을 가지고 몰입이 되어야 해요. 코미디는 정서가 쌓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천우가 손을 흔드는 장면을 예고편에서 볼 때 웃기지 않지만, '육사오'에서 보면 웃겨요. 배우들은 즉각적으로 자기 작업에 대한 리액션을 받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데 웃음은 즉각적으로 크게 반응이 다가와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코미디는 참 매력적인 장르이고, 또 어려운 장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육사오'는 제대하고 약 1년 만에 돌아간 군대 배경의 현장이었다. 덕분에 남들은 생각하지 못했던 디테일들이 고경표로 인해 더해졌다. 고경표는 특히 천우가 TV를 보는 장면과 헤어 스타일을 꼽았다.

"제가 GP에 체험 근무를 간 적이 있어요. 그곳에서는 병장이 TV 리모컨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영화를 보시면 TV 리모컨이 제 사물함에서 나올 거예요. 천우가 누워있는 자세도 제 병장 시절 자세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리고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병장들은 모자 라인에 숨겨질 정도로 바가지 머리로 자르거든요. 제가 군대에서 머리카락 커트도 해줬는데요. 바버샵 스타일로 그러데이션을 넣자고 권유해도, 절대 안 들어요. 1mm의 오차도 용납이 안 해요. 그때의 기억을 살려서 바가지 헤어 스타일로 추가됐어요."

사진 : 태양 인스타그램

본격적으로 군대 이야기가 시작됐다. 고경표의 군대 시절 이야기를 하면, 주원, 빈지노, 태양, 대성의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이들 다섯 명은 군대에서 '군뱅'을 결성하기도 했다. 군대에서 다진 의리는 제대 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제가 막내인데요. 그 형들이랑 좋은 계기로 행사를 한 적이 있어요. 그 공연 때 돈독해졌어요. 요즘에도 종종 만나는데, 되게 건강한 모임이에요. 술도 안 마시고요. 살다 보면 어느 순간 현실에 타협하는 순간이 생기잖아요. 그런데 그 형들은 항상 꿈을 꿔요. 예술과 창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요. 빈지노, 태양 형이 준비 중인 음악을 들려준 적도 있는데요. 정말 진짜 좋아요. 너무 멋있는 형들이에요. 사실 밖에서 만나면 5~6시간 정도 만나고 헤어질 텐데, 군대는 그렇지 않잖아요. 덕분에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 같아요. 군대가 그런 면에서 마냥 부정적인 곳은 아닌 것 같아요."

고경표의 매력에 '여유'라는 단어가 더해졌다. 고경표는 모친상을 이야기하며 삶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달라졌음을 말했다. 인생의 가장 힘든 일을 겪은 자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태도로 느껴졌다.

영화 '육사오'에서 천우 역을 맡은 배우 고경표 / 사진 : 싸이더스 제공

"힘든 것이 힘든 걸로 안 느껴져요. 인생은 짧고 덧없는데 '이것이 정말 힘든 일인가?'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건강해졌어요. 언젠가 다시 마실 수도 있지만, 술도 끊었어요. 저와 절친인 강태우 배우가 어느 날 '경표야, 술 마시는 건 다음 날 행복을 끌어다 쓰는 거야'라고 했는데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술을 끊으니, 하루에 한정된 행복을 매일 느끼며 살아요. 몸도 좋아지는 게 느껴지고요."

'여유'라는 태도에 '창작'이라는 열정이 더불어 자리한다. 앞서 언급한 '군뱅'의 멤버들인 형들의 덕분에 고경표는 "저 스스로 표현할 예술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요"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넷플릭스 영화 '서울대작전' 속 캐릭터와 연결 선상에서 DJ 장비도 구입했다.

"제가 '서울대작전'에서 DJ로 등장하거든요. DJ 장비를 실제로 구입했어요. 컴퓨터와 건반을 사서 세팅을 해놓기는 했는데요. 잘 안되더라고요. 처음 시작하는 일인 만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니 속상하긴 해요. 그래도 차근차근 배워보고 싶어요." (웃음)

영화 '육사오'에서 천우 역을 맡은 배우 고경표 / 사진 : 싸이더스 제공

고경표는 영화 '헤어질 결심'에 이어 '육사오'로 연이어 관객과 만난다. 또한, 넷플릭스를 통해 '서울대작전'으로 전세계 관객과도 만날 예정이며, 오는 9월에는 tvN 드라마 '월수금화목토'로 시청자들과의 만남도 앞두고 있다. 고경표는 영화 '헤어질 결심'을 하며 박찬욱 감독과 함께하는 작업에서 희열을 느꼈다. 배우들의 의상 컬러뿐만 아니라 질감까지, 말투뿐만 아니라 어미 처리까지 디렉팅하는 박찬욱 감독과의 작업은 "지치는 작업이 아니라, 너무 재미있었던 작업"이라고 말한다.

"최고의 한 장면을 위해서는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배우들이 NG를 내면 위축된다고 하는데요. 그러면 안 돼요. 우리는 팀이잖아요. 정말 좋은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모두가 노력하고 있는데, NG 한 번에 위축되면 안 되죠. 다시 찍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짜릿한 일이에요."

고경표의 "짜릿한"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어느 순간부터 저는 '주연'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았어요. 저는 배우가 하고 싶지, 주연을 하고 싶은 건 아니거든요. 그 마음을 내려 놓으니, 조연이든, 단역이든, 시나리오가 재미있다면, 현장에서 웃고 떠들며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가는 시간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제 삶이고, 그 시간이 잘 쌓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큽니다. 조연도, 특별출연도, 다 좋아요. 제가 되고 싶은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에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그 안에서 저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은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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