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혁의 글로벌 인사이트]갈라파고스 휴대폰…붕괴중인 일본 전자산업

정상혁 기자 ㅣ digihyuk@chosun.com
등록 2022.10.20 16:30

일본 종합통신사 KDDI가 2021년 12월 발매한 갈라파고스 핸드폰 G’zOne TYPE-XX./ KDDI 홈페이지 갈무리

가라케(ガラケー)라는 일본 신조어가 있다. ‘갈라파고스 휴대폰’의 준말로 세계 표준과 무관하게 독자적 진화를 이뤄 글로벌 시장에서 환영 받지 못하고 일본에서만 팔리는 휴대폰을 뜻한다. 일본 종합통신사 KDDI는 지난해 1.8미터 높이에서 떨어져도 멀쩡하고 방수기능이 있는 신형 4G핸드폰을 출시했다. KDDI가 9년만에 내놓은 이 핸드폰에 네티즌들의 반응은 비아냥 일색이었다. “일본의 이런 갈라파고스 진화가 계속 돌진하길 빈다”, “순간 몇 년전 휴대폰 뉴스가 추천에 뜬 줄 알았다”, “조만간 못도 박을 수 있는 게 나오겠다…”

2000년대 초반 11개에 달했던 일본 휴대폰 제조사는 2000년대 말을 기점으로 애플과 삼성의 약진에 밀려 속수무책 쓰러졌다. 2008년 미쓰비시와 산요가 핸드폰 사업을 포기한 후 현재 소니, 샤프, 후지쯔 등 5개 업체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다. 세계 시장에서 맥을 못추고 있는 전자제품은 비단 휴대폰 뿐만이 아니다. 20여년 전 산요TV와 파나소닉 냉장고가 집에 있고, 소니 워크맨을 들고 다닌다면 분명 부유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제품들 대부분은 중국산으로 교체됐다. 파나소닉은 2011년 세탁기와 냉장고 사업을 중국 하이얼에 매각했고, 소니는 2014년 개인용컴퓨터(PC)사업을 니혼산교파트너즈에 넘겼다. 도시바는 2016년 백색가전 사업을 중국 가전업체 메이더에 통째로 팔아버렸다.

과거 세계시장을 주름잡던 일본 전자제품이 최근 들어 왜 이리 맥을 못 추고 있을까? 중국 매체 관찰자망은 지난 17일 ‘세계적으로 인기 있던 일본 전자제품들은 왜 사라졌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경쟁력을 상실해 가고 있는 일본 전자산업에 대해 분석했다. 이 기사는 “1990년대 세계 전자산업에 큰 영향을 미친 세가지 변혁이 있었는데 일본은 세 번의 기회를 모두 놓쳤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이 지적한 세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PC 시장이 열릴 때 일본은 여전히 대형 컴퓨터에 필요한 안정성과 내구성에 집중했다. 그 결과 상품의 짧은 개발 주기와 저비용이 생명인 PC시장에서 뒤처질 수 밖에 없었다. 둘째, 90년대 세계 전자산업은 원가절감을 위한 글로벌 분업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그런데 유독 일본만 독자 기술을 고집하는 바람에 가격 경쟁력에서 밀렸다. 셋째, 90년대 PC 보급률 급증으로 세계적인 인터넷 투자 붐이 일어났는데 일본의 ICT 투자는 경쟁국가에 비해 크게 못미쳤다.”

일본 전자업계 사람들 사이에선“일본은 기술에서 이기고 사업에서 진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온다고 한다. 기술력만 맹신한 나머지 세계 시장의 트렌드와 맞지 않는 제품을 개발하며 갈라파고스화를 수십년째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 일본을 세계 최고 제조업 대국으로 만들어 준 ‘장인정신’이 빠른 변화와 협업을 요구하는 21세기 글로벌 시장에서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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