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칼럼] 섣부른 일본 경제 낙관론

정상혁 기자 ㅣ digihyuk@chosun.com
등록 2023.07.02 10:06 / 수정 2023.07.03 08:29

디지틀조선일보 정상혁 방송본부장

“취업 열차 타고 흔들리며 도착한…우에노는 우리들 마음의 역” 일본 엔카(演歌) <아아 우에노 역> 가사엔 1960년대 초 취직을 위해 기차 타고 도쿄로 올라 온 이향민들의 애환이 담겨있다. 1964년 도쿄 올림픽 이후 일본은 연평균 10%이상의 고도성장을 거듭했다. 기업엔 일자리가 넘쳐났고 도시는 농촌의 저임금 유휴 인력들을 빨아들였다. 일본은 그 때 농촌 노동력 대부분이 도시로 흡수되는 ‘루이스 전환점(Lewis Turning point)’을 지나고 있었다. 루이스 전환점이란 경제발전 단계에서 농촌의 값싼 노동력이 고갈되고, 노조를 결성한 도시 노동자의 임금 및 그들이 보유한 자산가치가 급등하는 시점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아서 루이스(William Arthur Lewis)는 이 이론을 제시하며 “경제가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 빠지면 기업은 생산 기지를 해외로 옮길 수 밖에 없고, 국가는 지속 성장을 위해 그 빈 자리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을 맞닥뜨린 가장 큰 이유는 산업의 체질 개선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IT기술 혁명은 세계를 정보통신 시대로 바꿔놨지만 일본은 산업화 시대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혁신을 상징하는 유니콘 기업 수만 따져봐도 미국(629개)이 독보적 1위로 그 뒤를 중국(173개), 인도(68개)가 잇고 있다. 한국(15개)은 10위, 일본(6개)은 인도네시아와 함께 17위에 머물고 있다. 미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 애플과 도요타의 직원 1인당 부가가치는 각각 99만 달러와 12만 달러로 약 8배 차이가 나고, 평균 급여 격차 또한 8배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일본의 제조업 경쟁력 차이를 팹리스(공장 없는 제조업)에서 찾는다. 애플은 물론이고 반도체 업계의 기린아 엔비디아 역시 설계에 특화된 팹리스 기업이다. 전기차 세계 1위 테슬라의 경쟁력 또한 내연기관 브랜드들과 달리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서 나온다.

최근 일본 증시가 뜨겁다. 닛케이225 지수는 올해 들어 30%나 올라 33년 전 거품경제 정점일 때의 3만3000을 웃돌고 있다. 발빠른 한국 일학개미(일본 주식을 사는 국내 개인 투자자)들의 보유고도 지난달 벌써 4조를 넘어섰다. 2011년 이후 최대치다. 올 1분기 GDP 성장률도 전분기 대비 0.7% 증가해 일부에선 버블경제 이후 잃어버린 30년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대만 TSMC 매각 대금으로 일본 5대 종합상사 주식에 베팅한 워런 버핏의 선택은 과연 이번에도 적중할 수 있을까?

일본 경제에 대한 낙관론은 아직 이르다. 정부의 과도한 부채는 향후 예측되는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금리 인상을 못하게 막을 것이고, 지속되는 엔저 정책은 수출기업의 배만 불릴 뿐 수입물가 상승으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고착시킬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뒤처진 디지털화로 인한 산업 전반의 생산성 저하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세계 디지털 경쟁력 평가에서 일본은 63개국 중 29위(한국 8위)에 머물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2021년 디지털청이 출범했지만 이 조직마저도 일본 특유의 관료주의에 발이 묶여 혁신의 길로 나가지 못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최근 일본 증시가 역대급 호황을 맞이한 이유는 경제 펀더멘털이 좋아져서가 아니다. 미중 갈등 속 지정학적 반사이익으로 해외자금이 몰렸고, 장기적인 엔저 정책으로 기업 이익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가 디지털화에 실패해 체질 개선이 지연되고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등 미래 산업 경쟁에서 뒤처진다면 최근 증시의 상승 랠리는 반짝 호황일 뿐 자칫 또 다른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해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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