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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신아→세기말·오겜2' 노재원의 진심을 담아내기

조명현 기자 ㅣ midol13@chosun.com
등록 2024.01.31 00:01

영화 '세기말의 사랑'에서 구도영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노재원 / 사진 : ㈜엔케이컨텐츠

배우 노재원을 아는가. 넷플릭스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본 시청자라면 그를 '서완 님'으로 기억할 것이고, 영화 '세기말의 사랑'을 본 관객이라면 그를 '구 기사님'으로 기억할 거다. 아마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올해는 더 많아질 거다. 영화 '세기말의 사랑'의 개봉으로 올해를 시작한 노재원은 시리즈 '오징어 게임2', '삼식이 삼촌' 등의 작품으로 대중과 만날 예정이기 때문이다.

영화 '세기말의 사랑'은 세상 끝나는 줄 알았던 1999년, 짝사랑 때문에 모든 걸 잃은 ‘영미’(이유영)에게 짝사랑 상대의 아내 ‘유진’(임선우)이 나타나며 벌어지는 이상하고 사랑스러운 뉴 밀레니엄 드라마를 담은 작품이다. 그 속에서 노재원은 두 여인의 사랑을 받는 '구도영' 역을 맡았다. 그가 구도영 역을 맡게 된 것은 '세기말의 사랑'을 연출한 임선애 감독의 애정에서 비롯됐다.

영화 '세기말의 사랑' 스틸컷 / 사진 : ㈜엔케이컨텐츠

"예전에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어요. '재원아 안녕? 나 윤단비야'라고 하셔서 깜짝 놀랐어요. '남매의 여름밤'을 연출한 윤단비 감독님 작품에 제가 단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었거든요. 윤단비 감독님께서 함께 있는 임선애 감독님에게 소개해 주고 싶다고 연락을 주신 거예요. 그 후에 임선애 감독님께서 '지금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꼭 완성되면 보여드리고 싶다'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정말 1년 뒤에 대본을 주셨어요. 그 작품이 '세기말의 사랑'이었어요. 임선애 감독님께서는 단편 영화 심사를 하신 적이 있으셨는데, 그때 제가 나온 모습을 보셨대요. 그렇게 봐주신 것도, 1년 뒤에 약속을 지켜주신 것도 너무 감사했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이분의 기대에 못 미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엄청나게 크게 들었어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저에게 큰 애정을 주시니까, 어떻게 보면 그 애정 덕분에 '구도영'을 연기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구도영은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되는 인물이다. 영미의 짝사랑 상대이고, 유진의 남편이다. 각기 다른 지점에 선 두 여인을 움직일 정도로 말 그대로 '지극한 사랑'을 받는 인물, 구도영을 바라보며 노재원은 "도영에게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저만의 매력이 있으니까. 그렇게 믿으려고 발악했어요. 도영은 본인의 매력이 뭔지 알고 있는 인물이 아니에요. 또 그 사람에게 그게 중요하지도 않았고요. 도영의 모든 행동과 선택은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았어요. 그 마음을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었어요. 감옥에 가게 되면서도, 그걸 감내하며 사랑하는 게 뭘까. 그걸 이해하려고 하니, 어렵더라고요. '나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게 훨씬 더 중요했어요."

영화 '세기말의 사랑' 스틸컷 / 사진 : ㈜엔케이컨텐츠

"저희 엄마가 공감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세요. 예전에 제가 학교 다닐 때 단막극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주인공이 마지막에 모래로 녹아 없어져요.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엄마한테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엄마가 '그 인물은 너무 힘들어서 모래로 녹을 수밖에 없겠네. 나 같아도 그럴 수밖에 없겠다'라고 대답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저는 필요할 때마다 엄마에게 여쭤보곤 하거든요. 도영이에 대한 마음도 여쭤봤었어요. 엄마가 '넌 누군가를 조건 없이 사랑해 본 적 있어? 네가 할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을 생각해 보면 될 거 같은데. 충분히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지 않겠니'라고 하셨어요. 생각해 보니 그럴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또 다른 지지는 감독님이셨죠. 작은 그릇이라고 생각한 저에게서 이만큼 큰 그릇을 봐주신 감독님의 눈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 두 가지가 도영을 그리는데 가장 중요했어요."

영화 '세기말의 사랑' 스틸컷 / 사진 : ㈜엔케이컨텐츠

구도영은 영미와 함께한 순간, 그리고 유진과 함께한 순간에서 각기 다른 온도를 담아낸다.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건, 이미 구도영을 마음에 담은 노재원 덕분인지도 모를 일이다.

"현장이 주는 힘이 컸어요. '어떻게 할까'가 아닌, 그 상황에 대한 마음만 가지고 현장에 가요. 영미와 모텔에서 2000년을 맞이하는 그 상황이 생각만 해도 어색하더라고요. '내가 지금 연기가 어색한 건가, 진짜 어색한 건가' 저도 분간이 어렵더라고요. 유진과 화상으로 만나는 장면은 (임)선우 누나 촬영분이 먼저 진행됐어요. 그때 촬영 현장에 직접 가서 대사를 쳐줬어요. 그 기억을 토대로 제 촬영에 임했고요. 누나가 연기를 워낙 잘하셔서, 그때의 유진을 떠올리며 연기했어요."

"영미와 장례식장에서 만날 때, 제가 실제로 장례식장 예의를 잘 몰라서 굉장히 조심스러운 마음이 있었어요. 그 마음이 그 장면을 연기할 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실제 현장에서 영미에게 소곤소곤 이야기했어요. 정말 속삭이듯이요. 그래서 후시 녹음으로 채워야 했지만, 모든 장면에서 현장이 주는 힘이 컸던 것 같아요."

영화 '세기말의 사랑'에서 구도영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노재원 / 사진 : ㈜엔케이컨텐츠

노재원은 지난 2021년 진행된 '서울독립영화제'의 배우 프로젝트 60초 독백 페스티벌에서 1등의 영예를 안았다. 당시 그의 모습은 유튜브를 통해 공개됐는데, 그 속에서 그는 누군가에게 조언하는 이야기를 건넨다. 그 누군가는 바로 과거의 자신이었다. 현장이 주는 힘을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 유튜브 영상으로 본 그의 모습이 스쳐졌다.

"제가 26살 때쯤 군대를 전역하며 피부가 정말 많이 안 좋아졌어요. 피부과도 다니고 했는데 점점 악화되어서 사람을 만나기 힘들 정도였어요. 그 당시에 제가 '미래의 내가 나타나서 피부가 괜찮은지 좀 이야기해 주면 좋겠다, 어느 피부과에 가라고 말 좀 해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서울독립영화제' 60초 독백 프로젝트를 준비하는데, 60초라는 시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잖아요. 그 시간 동안 뭔가를 한다면, 3년 전 나에게 가서 이야기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피부도 그런데 그 기간 동안 할머니가 편찮으셨거든요. 원래 매일 등산 다니실 정도로 건강하셨는데, 한번 꺾이시고 나니 산책만 하세요. 그래서 지금의 제가 3년 전 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거였죠."

영화 '세기말의 사랑'에서 구도영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노재원 / 사진 : ㈜엔케이컨텐츠

진심이었다. 그런데 노재원이 극 중 보여주는 모습은 그렇게 믿게 한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와요'에서는 다시 공시생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워 온몸을 주춤하는 서완의 모습이었고, 영화 '윤시내가 사라졌다'에서는 이미테이션 가수 운시내로 등장해 그 모습 그대로를 각인시켰다. 과거 KBS2 드라마 '꽃 찾으러 왔단다' 마지막 회에서 NG 퍼레이드를 보고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했던 그에게 '배우'에 대해 물어본 이유이기도 하다.

"그 당시에는 연예인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꽃 찾으러 왔단다' NG 모음을 보면 다들 웃고 있거든요. 저희 부모님은 사무직에 계셔서, 저런 직업도 있다니 생각하며 예고에 갔어요. 그러다가 대학에 떨어지면서 더 생각이 간절해졌어요. '배우 해야겠다'고요. 떨어지는 게 가슴 아픈 일이면서도 크게 힘들지 않았어요. 또 하고 싶고요. 연기를 너무 재미있게 생각하다 보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표현하고 재미를 쫓았다면, 지금은 표현보다 진심을 생각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척을 안 할 수 있지'에 좀 더 집중되는 것 같고요. 아직 부족하지만, 그렇게 되려고 발악하는 중이에요."(웃음)

영화 '세기말의 사랑'에서 구도영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노재원 / 사진 : ㈜엔케이컨텐츠

앞서 말했듯이 노재원은 '삼식이 삼촌', '오징어 게임' 시즌2 등 2024년 기대작으로 꼽히는 작품에 이름을 올렸다. 초스피드 성장의 소감에 그는 "그 말 들으니 너무 불안해요"라며 답변을 시작했다.

"동료들도 잘될 것 같다고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보기도 해요. 그런데 저는 잘 된 게 아니라,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느낌이에요. 얼른 여기에서 나와 '내 마음에 평안을 찾고 싶다', '익숙해지면 좋겠다'라는 솔직한 마음이에요. 사람마다 각자 잘된다는 기준이 있잖아요. 저는 좋은 작품에서 좋은 역할을 담아내고 싶은 마음이에요. 인기에 휘둘리고 싶지 않은데 휘둘려요. 아직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시는 것도 아닌데, 혼자 상상하며 불안해지기도 해요. 지금 저의 시기가 겸허하게 잘 지나가면 좋겠어요."

여전히 노재원에게 연기는 여전히 '재밌는 일'이다. 그리고 '진실한 마음'이다.

"재미있잖아요. 저라는 사람이 이 인물을 연기하게 되었을 때, 저도 모르는 제가 나온다는 것이요. 좀 더 쉽게 말하면 '나라는 사람이 이런 상황에 부닥쳐있다면?'이라는 상상을 하는게 너무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연기하고 싶어요. 어떤 인물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도 하겠지만, 그보다도 제가 연기 안에 솔직함을 담아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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