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칼럼] 美 경쟁국들의 잔혹사와 중국몽(中國夢)

정상혁 기자 ㅣ digihyuk@chosun.com
등록 2024.03.14 14:51 / 수정 2024.03.14 15:07

디지틀조선일보 정상혁 방송본부장

‘공동부유’(共同富裕·함께 잘살자)와 ‘방주불초’(房住不炒·집은 주거용이지 투기용이 아니다). 최근 중국 정부 문건에선 이 두 문구를 찾아 볼 수 없다. 애초 시진핑 주석은 정권을 잡자마자 체제 위협 수준까지 벌어진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성장이 아닌 분배에 주력했다. 또 중국 경제 뇌관인 부동산 버블을 없애기 위해 레버리지와 구매를 제한하는 등 온갖 규제를 총동원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인플레이션율은 지난해 10월부터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청년실업률은 21.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급기야 중국 최대 부동산 기업 헝다(恒大)와 비구이위안(碧桂園)이 자금난으로 청산에 들어가자 일각에선 “중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흡사한 길을 걷고 있다”는 주장마저 나왔다.

‘공동부유’와 ‘방주불초’은 실패했다. 최근 중국 정부는 이들을 캐비넷 속에 슬그머니 집어넣고 대신 각종 부양책을 내놓고 있다. 인민은행은 5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4.2%에서 3.95%로 0.25% 전격 인하했다. 증권감독관리위원회는 증시안전화기금 75조8000억원을 시장에 풀었고, 공매도 금지 조치도 내놨다. 시장은 즉각 화답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7% 상승했고 수출은 전년 대비 7.1% 증가했다. 홍콩H지수는 지난 12일 연저점 대비 19%나 뛰었고, CSI300지수와 상하이종합지수 또한 13% 상승했다.

시장의 긍정적 신호는 중국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 더욱이 많은 전문가들이 “수출의존도가 17.8%로 낮아진 중국은 국내 소비만 살아나면 독자생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가 지난 11일 발표한 GDP 성장률 ‘5% 이상 달성’과 국방예산 ‘7.2% 증액’에서도 중국 정부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과연 중국 경제는 이대로 기사회생할 수 있을까?

미국이 경쟁국들을 상대로 벌였던 과거 잔혹사를 보면 그 대답은 일단 부정적이다. 일본은 1968년 서독을 누르고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국가가 됐다. 20년 동안 ‘메이드 인 저팬’은 세계 시장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렸고,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는 말까지 돌았다. 제2의 진주만 공습을 당한 듯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일본에게 '잃어 버린 30년'을 안겨줬다. 이듬해엔 반도체 협정을 통해 일본 반도체 산업도 몰락시켰다.

냉전시대 소련은 미국과 군비 경쟁을 벌이다 해체됐다. 레이건 대통령은 1983년 소련의 핵미사일들을 우주에서 격추시키는 SDI(전략방위구상, Strategic Defense Initiative)를 발표했다. 일명 '스타워즈'로 불린 이 계획에 화들짝 놀란 소련은 국가재정을 탈탈 털어 대응연구를 추진했다. 물론 체제 자체에도 결함이 있었지만 감당할 수준을 벗어난 군비 출혈이 소련의 붕괴를 재촉했다. 1991년 소련이 몰락하자 미국 클린턴 정부는 1993년 스타워즈 계획을 대폭 축소했다.

요즘 미국의 타깃은 중국이다. 중국 정부가 세계 최강 제조 국가 반열에 오르겠다며 2015년 발표한 ‘중국제조 2025’는 미국을 자극했다. 2045년까지 최첨단 분야에서 미국을 제치겠다는 중국몽이 문제였다. 미국은 2018년 중국 제품에 25%의 최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화웨이 제품 사용금지령을 내렸다. 이어 한국 미국 대만 일본의 ‘칩4 동맹’을 구축해 AI, 빅데이터, 양자컴퓨터 등 중국의 최첨단 기술 개발을 원천봉쇄했다.

지금 중국에게 ‘도광양회(韬光养晦)가 맞았다’던가 ‘중국몽을 꿀지언정 가슴에 품고 있어야 했다’는 등의 후회는 사치다. 비정한 미국에 대한 원망 또한 역사에 대한 몰이해다. 기존 패권국가와 빠르게 부상하는 신흥 강대국은 결국 부딪칠 수밖에 없다. 과거 일본과 소련의 잔혹사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미국은 설령 중국과의 무역전쟁이 여의치 않더라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명분은 국가안보지만 본질은 패권국가의 ‘2등 죽이기’이기 때문이다. 마침 중국엔 대만 독립, 공산당 고위층 부패, 소수민족 인권 등 체제 위협 요소들이 차고 넘친다. 오는 11월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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