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혁의 글로벌인사이트] 히타치와 일본 증시의 부활

정상혁 기자 ㅣ digihyuk@chosun.com
등록 2024.04.04 11:21 / 수정 2024.04.04 13:38

일본 도쿄의 번화가 긴자 거리/디지틀조선TV DB

"일본 기업이 변하고 있다. 주가가 내려가면 사고, 회복하면 팔지 말아야 하는 형국이다". 영국 자산운용회사 제이 오 함브로 캐피탈 매니지먼트(J·O Hambro Capital Management Limited)는 지난해 가을 투자자들에게 일본 회사 주식 비중을 높이겠다는 레터를 보냈다. 그 후 가장 먼저 히타치 제작소 주식을 매수했다. 히타치 제작소는 한 때 손 대지 않는 사업이 없다고 해서 '더 일본 주식회사'로 불렸다. 2000년대 초 일본 제조업 역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한 이 회사는 화학, 금속 등 비핵심 사업을 매각하는 혁신을 단행했다. IT, 철도, 에너지 등의 사업에 집중한 전략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위기 때 8000억엔으로 줄어든 시가총액은 지난 1월 10조엔을 넘어섰다.

히타치의 부활엔 미국 3M 전 CEO 조지 버클리(George Buckley)의 영향이 컸다. 2013년 6월 가와무라 타카시(川村隆) 당시 히타치 회장은 사외이사를 겸하고 있던 조지 버클리와 마주 앉았다. 버클리는 가와무라 회장에게 글로벌 스탠다드 경영의 관점에서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회사가 이미 방침을 정해 놓고 이사회에 의견을 묻는 것 같다. 의사 결정 전에 회사 측과 이사회는 전략적 옵션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여야 한다. 그리고 사람이 아닌 아이디어 경쟁을 해야 한다".

그는 연구원들의 마인드도 지적했다. “미국 연구원들은 개발자금을 모으려면 더 많은 이익을 올려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도 사업 검토에 참여해 수익성과 현금경영을 이해해야 한다. 히타치 연구원들은 이익 창출에 둔감하고 속도감도 없다”. 조지 버클리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신제품 도입 속도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경쟁력 하락은 아이디어가 없고 혁신적이지 않은 조직에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찾아온다”.

카와무라 회장은 히타치의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 놓았고 버클리 사외이사는 3M의 사례를 들어가며 명확한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버클리는 투자자와 눈높이를 맞출 것을 주문했다. 복잡하고 불안정한 수익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본 비용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했다. 재무 목표 또한 얼마나 많은 현금을 창출해 미래 투자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의 대면 이후 히타치가 취한 10년의 개혁은 놀라울 정도의 성과를 거둬 벤치마킹 대상이었던 3M의 시가총액(9조엔)을 추월했다.

도쿄증권거래소(JPX)는 지난해부터 기업 거버넌스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개혁의 중심에 ‘자본 비용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 구현을 위한 행동’(저PBR 개혁)이 있다. JPX는 PBR이 1배 미만인 기업은 물론 1배 이상인 기업들에게도 앞으로 어떻게 자본 효율성을 개선하고 주가를 올릴 것인 지에 대한 계획안을 홈페이지에 공지하도록 요구했다. 지난달 말까지 일본 프라임 시장 상장사 70%가 계획안을 홈페이지에 공시했다. 올해 1분기 일본 상장 기업이 주주에게 지급한 배당금은 작년에 비해 6% 증가했고, 자사주 매입은 9% 늘었다.

최근 닛케이지수는 거품 경제 시기였던 1989년 12월의 최고치 3만8957을 갱신하고 4만을 넘어선 뒤에도 탄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 경제가 ‘뱅크(Bank) 거버넌스’에서 ‘에퀴티(equity) 거버넌스’로 변화했다고 말한다. 과거 일본 경제가 은행이 기업에 융자해 성장하는 구조였다면, 이젠 투자자들의 돈으로 기업이 신규 사업을 벌여 성장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도 취임 초부터 ‘새로운 자본주의’를 내세우며 투자를 통한 개인들의 자산 확대를 강조했다.

원가가 얼마며 미래에 그 이상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지 여부가 장사의 근본이다. 대표는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사업을 확장해 회사 가치를 높여 주주를 만족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이 개념을 상실하면 사업은 쇠퇴하고, 회사 구성원들은 물론 주주도 거래처도 모두 행복할 수 없다. 근본을 진지하게 지키는 경영만이 롱런할 수 있고, 히타치와 일본 증시의 부활이 그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최신기사


    최신 뉴스 더보기


        많이 본 뉴스

          산업 최신 뉴스 더보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