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 美 석유업계…유가 50달러 '버티기'

    입력 : 2015.02.11 14:17 | 수정 : 2015.02.11 15:00

    사진 블룸버그


    "회사 분위기가 바뀌었어요. 비용절감에 더 집중하고 위험이 낮은 프로젝트를 택하죠"(애널리스트 존 쉴러)


    약 1년 전 미국 텍사스주(州) 남동부 휴스턴에 있는 석유업체 에너지 XXI는 경쟁사를 인수하기 위해 10억달러(약 1조976억원)에 달하는 빚을 졌다. 이 회사 주가는 주당 24달러까지 뛰었다. 임직원은 싱글벙글 웃었다. 이때만 해도 아무도 유가가 40달러대로 떨어질지는 꿈에도 몰랐다.


    이 빚더미 회사는 자산 매각·비용 축소 등 허리띠를 졸라매는 노력을 했다. 그럼에도 지난 9일(현지시각) 지난해 4분기 3억7700만달러(약 4138억원)의 적자라는 실적을 발표했다고 10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비단 에너지XXI만의 일은 아니다. 이달 더 많은 미 석유업체들이 암울한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다. 투자자들은 이들 회사가 올해 원유 가격을 50달러선에서 고정하는 것을 전략으로 삼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많은 회사들이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때 시추 설비를 대량으로 빌렸다. 하지만 지금은 하락한 국제유가가 회복할 때까지 긴축에 나서고 있다.


    대니얼 카젠버그 로버트 W.베어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올해 살아남는 것"이라며 "현재 환경에서 어떤 계획을 세우고 이를 운영할 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 美 석유업체 '감산→비용 축소→해고' 악순환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몇몇 대형 셰일오일 업체들은 아직 투자계획 등을 확정 짓지 못했다. 스무곳이 넘는 관련 업체가 이미 비용 축소와 함께 올해 예산을 지난해 대비 250억달러(약 27조4400억원) 삭감하기로 했다.


    유가가 지난 1월 최악의 상황을 기록하고 나서 약 19%가량 상승한 53달러대로 올라서자 미국 에너지업체들은 경쟁을 대비해 원유를 저장고에 쌓아두고 리비아에서 오일 생산을 줄이는 등 긴박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몇몇 대형 셰일오일 업체들은 헤징(가격변동으로 인한 손실을 막기 위한 금융거래) 전략을 통해 국제유가 폭락과 상관없이 양호한 경영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셰일오일 업체인 파이어니어 내추럴 리소스의 경우 지난여름 이후 유가가 큰 폭으로 내렸음에도 헤징 전략을 잘 세운 덕에 견고한 실적을 기록했다고 평가했다.


    반대로 몇몇 중소 업체들은 살 길 모색에 나섰다. 루카스에너지는 720만달러의 빚을 진 상태에서 최근 대규모 손실을 낸 후 오스틴에 있는 경쟁업체에 합병되는 방안을 발표했다.


    ◆ 1년 전만 해도 억대 인재 모시기 경쟁…지금은 '나가라'


    6년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유가 충격 피해는 고스란히 직원에게 돌아가고 있다.


    미 석유업체들은 최근 수 천 명의 직원을 해고한다고 발표했다. 불어나는 빚 때문에 더는 직원의 고액 연봉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유전서비스 업체인 슐룸버거는 최근 전체 인력의 7.1%인 9000명을 내보냈다. 미 정유업체 셰브론도 지난달 신규 프로젝트 관련 일자리를 줄이고 비용도 1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삭감했다.


    세계 4위 유전서비스업체 웨더포드도 5000명을 감원하기로 했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사를 둔 웨더포드가의 전체 고용 규모는 2013년말 기준 6만7000명이다. 이번 감원으로 전체의 7%가 줄어드는 셈이다. 회사는 감원을 통해 연간 3억5000만달러(약 3817억원)이상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셰일가스 자원개발 업체 E&P의 경우 예산 축소와 함께 직원 명예퇴직을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석유업계는 1년 전만 해도 ‘엔지니어 모시기’에 나서며 치열한 인재 경쟁에 나섰다. 특히 경력 5~15년인 인재들에 대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과장·차장급이 3억원을 넘는 연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1년 반 만에 상황은 180도 뒤바뀌었다.


    '인재 모시기'가 아니라 '인재 내보내기' 경쟁에 나선 것이다. 파이퍼모간의 글래드니 대로 컨설턴트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석유업계가) 비용을 줄이지 못한다면 결국 이들 업체는 퇴직을 강요하거나 직원을 해고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현재 유가 하락으로 석유업계가 어쩔 수 없이 감원을 선택하고 있지만, 이는 결국 앞으로 업계 전반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FMI캐피탈 스콧 둔칸 부사장은 "(앞으로 유가가 회복돼 다시 생산량을 늘린다면) 큰 폭의 인센티브를 주지 않고서야 앞으로 좋은 직원을 다시 고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