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2.13 09:18
넥슨은 왜 엔씨소프트(036570) (204,000원▲ 1,000 0.49%)에 전자투표제 도입을 제안했을까?
넥슨이 엔씨소프트 측에 보내는 주주 제안 6가지를 공개했을 때만해도 '전자투표제'에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넥슨은 주주를 우대하겠다면서 이를 위한 세 가지(자사주 소각·비상업용 건물 매각·배당 확대)를 제안했고, 의결권 싸움을 염두에 둔 듯 주주명부 열람·등사와 넥슨 측 이사 선임 등 두 가지를 요구했다. 나머지 제안이었던 전자투표제 도입 요구에는 다들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주주가 인터넷으로 투표할 수 있도록 만든 편리한 제도 정도로만 여겼기 때문이다.
-
- ▲ 엔씨소프트 창업자 김택진(왼쪽) 대표와 넥슨 창업자인 김정주 NXC 사장. /각 회사 제공
하지만 전자투표제 도입은 단순한 ‘덤’이 아니었다. 넥슨은 이후에 전자투표제 도입과 주주명부 열람·등사, 이사 선임시 정보 공개 등 세 가지를 다시 콕 집어낸 후, 여기에 대한 입장을 지난 10일까지 서면으로 달라고 요청했다. 증권가에서도 이때부터 전자투표제를 다시 보게 됐다. 주주명부 열람·등사와 이사 선임 문제는 경영권 다툼 때마다 나오는 문제인데, 넥슨은 이와 같은 비중으로 전자투표제 도입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전자투표제가 뭐길래 이럴까? 양측의 경영권 갈등에 전자투표제는 어떤 영향을 줄까?
◆ 전자 투표를 하면 뭐가 달라지기에 넥슨은?
전자 투표란 간단하다. 주주총회 때의 투표를 인터넷으로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지금까지 주주총회는 사실 실제 참가하는 사람이 적었다. 이 때문에 참가자가 모자라 아예 총회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섀도 보팅’제도가 도입돼 있다. 우리나라 주식은 한국예탁결제원이 맡아 보관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주주총회에서 참가한 주주들의 의견이 '45%대 55%'로 갈렸다면 예탁원이 나머지 주식을 45대 55의 비율로 나눠서 표결에 참가한 것으로 해준다.
① 전자투표제가 도입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만약에 표대결이 벌어질 경우 전자투표제가 도입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크게 두 가지에서 승부가 갈린다.
-'백기사' 대결
백기사란 어느 한쪽 편을 들어 주는 (대규모)주주를 말한다. 쉽게 말해 대형 투자가를 자기 편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 처럼 지분이 높은(6.88%) 투자자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위임장 모으기
엔씨소프트 경영진과 넥슨 측이 서로 각각 소액주주들의 위임장을 받으러 다녀야 한다. 소액주주들은 주주총회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고 나와도 약속대로 투표해줄지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사전에 주주들과 접촉해서 미리 ‘내 투표권을 이 사람에게 맡긴다’는 위임장을 받아 놓는 것이다.
② 전자투표제가 도입된 상황이라면
이경우 백기사대결과 위임장 모으기에 한 가지가 더 중요해진다.
-주총장에 나오지 않는 주주들의 지지 얻기
전자투표제가 도입되면 집에서도 투표할 수 있다. 현장 분위기가 중요하지 않게 되고, 사전에 어떤 공약을 내놓는지가 중요해진다.
◆ 넥슨이 전자투표에서 유리해지는 세 가지 이유
'주총장에 나오지 않는 주주들의 지지 얻기'라는 한 가지라면 넥슨이나 엔씨소프트나 같은 조건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증권가에선 전자투표제를 기업인수합병(M&A) 경험이 많은 넥슨의 ‘묘수’라고 본다. 전자투표제를 선택할 경우 기존 경영진(엔씨소프트)의 ‘눈에 보이지 않고, 공식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어드밴티지가 대부분 사라진다는 것이다.
① 엔씨측의 주총장 장악을 막아라
그동안 적대적 M&A의 경우 세력이 비등비등한 수준이라면 기존경영진이 승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유는 주주총회 현장을 기존 경영진이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영진이 정문을 지키고 있다가 미리 약속한 주주만 들여보내고 상대편 주주들은 필요한 서류가 안 갖춰졌다는 이유로 돌려보내거나, 위임장의 미세한 부분을 트집잡아 투표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작전을 벌여왔다. 전자투표를 하면 경영진이 이런 작전을 쓸 수 없다.
② 주주 정보에서의 열세를 극복하라
위임장을 받으려 다니려면 주주가 누구인지, 연락처는 어떻게 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 때문에 경영권 분쟁에선 주주명부 열람과 복사가 언제나 큰 분쟁거리가 된다. 기존 경영진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주주가 누구인지 안 알려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데 전자투표제를 하면 이런 열세를 어느정도 만회할 수 있다. 직접 연락해 위임장를 받는 것보다는 공개적인 지지확보전이 더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③ 단기 주주를 잡아라
대개 주총장에 나타나는 주주는 어느정도 장기로 투자하고 주주로서 열성적인 사람들일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단기에 주가를 올리겠다는 식의 주장이 덜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전자투표를 하게 되면 배당을 위해 하루만 주식을 산다든지, 업무시간에 주총장을 찾을 수 없는 이른바 '단기 주주'들의 투표율이 크게 높아지게 된다. 이 경우에는 기존 경영진이 주가를 올리는데 무심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주주들에게 보상을 약속하는 식의 전략이 가능해진다. 단기 주주들은 단기간에 주가를 올려놓고 팔고 나가면 그만이다.
실제로도 넥슨은 주주들이 환영할 만한 제안을 엔씨소프트 측에 내놨다. 넥슨은 엔씨소프트에 자사주 소각, 배당 확대, 비상업용 건물 매각을 제안했다. 미래에셋증권 고훈 연구원은 "모두 단기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이다. 국민연금 같은 기관투자자나 개인투자자들이 주주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은 다 담았다"고 말했다.
◆ 엔씨소프트의 방어술은?
물론 엔씨소프트 현 경영진도 전자 투표에 대비한 나름대로의 방어전략을 펼치고 있다.
우선 11일 실적발표회를 열고 깜짝 실적(증권가 관계자들 예상치보다 높은 것)을 발표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영업이익(연결기준)이 2781억원으로 전년보다 35.5%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33%로, 2013년 대비 6%포인트 높아졌다. 이는 엔씨소프트의 현 경영진이 충분히 주주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넥슨의 주주 제안에 대응해 엔씨소프트도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했다. 엔씨소프트의 윤재수 최고 재무책임자(CFO)는 실적발표회에서 그간 엔씨소프트가 주주가치를 올리는 데 소홀한 면이 있었다며 앞으로 최대한 주주환원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아직 엔씨소프트는 3월 27일 열릴 주주총회에 올릴 안건을 확정하지 않았다. 넥슨의 주주제안에 상법에 나와있는 주주명부 열람·등사와 전자투표제 도입만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전자투표제 도입은 상법상 권고 사항이다.
다만 넥슨의 의도가 어느 정도로 통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경영권 분쟁이 일어난 기업에서 전자투표제가 핵심으로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실제로 주총에서 투표를 해 봐야 넥슨 측의 시뮬레이션이 옳았는지가 밝혀질 것이다.
한국예탁결제원의 김용신 팀장은 "금융당국이 섀도보팅제도 폐지를 검토하면서 도입된 전자투표제가 엔씨소프트 주주총회에서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확인해보는 것도 좋겠다"며 "주주의견을 강화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