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2.24 08:56
["원래 베팅은 불황에 하는 것" 10년간 35개 기업 인수·합병]
렌터카 업체 KT렌탈 인수하고 7兆 넘는 투자 등 공격적 행보
1년에 평균 3.5개 기업 사들여 中 유통업체 제외 대부분 이익… 소극적인 롯데 색깔 진취적으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롯데의 '공격 본능'을 일깨우고 있다.
롯데그룹은 지난 11일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사업권 입찰전에서 무려 6조원 넘는 금액을 베팅하는 배짱으로 호텔신라를 제치고 가장 많은 사업권역을 획득했다. 또 18일에는 국내 1위 렌터카 전문업체인 KT렌탈 본입찰에서 SK그룹 등 경쟁 기업에 비해 훨씬 많은 약 1조원의 가격을 써내며 승리를 쟁취했다.
이달 15일에는 1967년 그룹 창립 후 48년 만에 사상 최대 규모인 7조5000억원을 올해 투자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내수 불황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보수적'이란 이미지가 강했던 롯데그룹으로서는 믿기 어려운 대변신이다.
주목되는 것은 신 회장의 공격 경영 스타일이 위기일수록 더 확실하게 타오른다는 점이다. 2004년 10월 그룹 경영을 책임지는 정책본부장을 맡은 후 지금까지 약 10년 동안 그가 인수한 기업은 35개로 인수 금액은 10조원을 웃돈다. 이 가운데 22개(63%)는 글로벌 금융 위기와 유럽 재정 위기가 한창이던 2008~2010년에 인수했다. "불황이 바로 기회이다. 좋은 기업 인수는 불황 때 하는 것"이라는 신 회장의 평소 지론이 반영된 결과다. 실제로 위기가 진정 국면에 들어선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롯데가 인수한 회사는 5개뿐이다. 신 회장의 야성적인 투자 본능이 불황의 그림자가 짙어지는 올해 다시 깨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10년 동안 35개 기업 인수
신 회장의 기업 M&A 욕구는 '식음료 등 손쉬운 사업만 한다'는 롯데그룹에 대한 선입견을 완전히 불식시킨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신동빈 회장은 정적(靜的)인 컬러가 강했던 롯데그룹의 DNA를 공격적이고 진취적으로 바꿔놓고 있다"고 말했다. 신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기 이전에 롯데그룹은 내실을 다지는 보수적 기업이었다면 지금은 성장을 향한 '야성적 본능(animal spirit)'이 분출하는 곳으로 환골탈태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10년 동안 매년 평균 3.5개의 기업을 인수한 것은 물론, 1조원 넘는 자금을 투입한 기업만 해도 하이마트, GS리테일의 백화점·대형마트, 말레이시아의 석유화학 기업 타이탄, KT렌탈 등 4개나 된다. 대한화재(현 롯데손해보험), 두산주류BG(현 롯데주류) 등도 굵직한 인수 사례로 꼽힌다. 제2롯데월드 건설 비용은 3조7000억원에 달하고 해외에서는 중국과 동남아는 물론 최근에는 미국 셰일가스 사업 진출(롯데케미칼)로 시야와 전장(戰場)을 넓히고 있다.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해외 진출이라는 분명한 전략 속에서 일관되게 투자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KT렌탈 인수전 참여는 카렌탈과 카셰어링 사업이 큰 흐름인 공유 경제와 맞아떨어진다는 신 회장의 판단 아래 이뤄졌다"며 "롯데의 기존 주력인 유통·관광 부문과 연계하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신 회장은 무모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2008~2010년에 신 회장이 22개의 국내외 기업을 살 당시 이런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이 인수 회사들은 중국의 일부 유통업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익을 내고 있다. 또 자신이 경영 전면에 나섰던 2004년 계열사 36개에 재계 6위였던 롯데그룹은 현재 74개 계열사를 거느린 5위 그룹이 됐다. 23조원이었던 매출은 약 3.6배인 83조원이 됐다.
◇'포스트 신격호 체제' 事前 작업 성격도
신 회장의 공격적인 리더십에 대해 롯데 그룹 내부에서는 "신 회장이 세계경제 흐름과 금융에 대한 확실한 안목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롯데 입사 전인 1981~1988년 노무라증권에서 근무했던 신 회장은 7년 가까이 노무라증권 런던지점에서 근무하며 글로벌 경영 감각을 익혔다는 것이다.
한 롯데 임원은 "신 회장이 영국에 근무할 당시 영국 경제는 구조개혁이 진행되던 어려운 시기였다"며 "신 회장이 이때 선진 기업들의 재무 관리나 금융 관리 기법은 물론 거시 경제 흐름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전했다.
재계에서는 "신 회장의 자신감이 최근 더 커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회장으로 있는 전경련 행사에 빠짐없이 얼굴을 비치고 있으며 지난달에는 왕양(汪洋·60) 중국 국무원 부총리가 방한했을 때 전경련 공식 오찬 행사를 주재했다.
제2 롯데월드의 안전성에 대해 시비가 끊이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최근 기자실을 직접 찾아와 질문에 답변하기도 했다. 신 회장은 "다른 대기업 오너나 대표들은 올해 경기가 나쁘다고 보지만 나는 저유가 덕분에 좋아질 것으로 본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재계 일각에서는 신동빈 회장의 이런 공격 경영이 '포스트 신격호 체제' 구축을 위한 사전작업과 맞닿아 있다고 관측한다. 부친인 신격호 총괄회장이 올해 93세로 고령인 만큼 신 회장이 아버지에게 더 확실한 믿음을 주기 위해 과감하고 빠른 의사 결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의 진취적인 공격 경영에 대한 평가는 아직 진행 중"이라며 "지금부터 신 회장이 커진 그룹 덩치에 걸맞은 실적과 선진 경영 체제를 잘 구축해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