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車산업 산증인 디터 제체 벤츠 회장이 말하는 미래 자동차 시장은?

    입력 : 2015.03.06 18:40

    디터 제체 다임러그룹 회장


    기업을 이끄는 리더의 도전에는 성공과 실패가 반복된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디터 제체 다임러그룹 회장은 최악의 상황을 맞은 회사를 두번 맡아 두번 모두 회생시킨 위기관리 전문가다.


    제체 회장의 겉모습은 영락 없는 동네 할아버지다. 큰 키에 하얀 콧수염이 나 있다. 하지만 그가 치열한 경쟁의 무대인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성공한 비결은 냉철하고 과감한 판단력이다.


    다임러그룹은 독일 고급차 브랜드 메르세데스 벤츠의 모기업이다. 제체 회장과 다임러그룹은 서로의 성장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존재다. 터키에서 태어난 제체 회장은 독일 칼스루헤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뒤 1976년 다임러 벤츠에 입사했다. 40년째 한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것이다.


    제체 회장이 다임러그룹 회장 자리에 오른 계기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위르겐 슈렘프 전(前) 다임러 회장은 회사 역사상 가장 큰 M&A(인수합병)를 단행, 크라이슬러를 인수했다. 다임러그룹은 당시 경영난에 시달리던 미국 3위 자동차회사 크라이슬러를 395억달러(약 43조원)에 인수했지만 두 회사는 시너지효과를 내지 못했다.


    2000년 11월 다임러는 메르세데스 벤츠 임원 중 한 사람을 크라이슬러의 구원투수로 임명했다. 바로 그 구원투수가 제체 회장이다. 부임 후 노조와 끈질긴 협상을 벌인 끝에 2만6000명을 감원하는 혹독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하지만 벤츠의 앞선 기술을 크라이슬러에 도입, 연간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의 적자에 허덕이던 크라이슬러를 2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았다. 하지만 다임러 경영진은 벤츠의 브랜드 가치 하락을 걱정하며 협업이 순탄치 않았다. 당시 위르겐 슈렘프 전 다임러 회장은 미쓰비시자동차 인수를 추진하는 등 몸집 불리기를 시도하다 실적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05년 사임했다.


    그러나 슈렘프 전 회장의 마지막 선택은 옳았다. 퇴임과 동시에 후임자를 지명했는데 그가 바로 크라이슬러를 이끌던 제체였던 것이다. 제체 회장이 다임러크라이슬러 총괄 회장에 임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주가는 하루 만에 10% 가까이 뛰었다.


    제체 회장은 빠른 결단력으로 그룹의 체질개선에 나섰다. 2007년에는 크라이슬러를 74억5000만달러(약 8조2000억원)에 매각했다. 제체 회장은 대표 브랜드인 벤츠의 경쟁력 강화에 힘썼다. 고객층을 아버지세대에서 아들세대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자동차 산업과 40년을 함께 해온 그가 바라보는 자동차의 미래는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지난 3일(현지시각) '제네바 모터쇼 2015'가 열린 스위스 제네바 팔렉스포 벤츠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다양한 언어로 인터뷰를 했다.


    불어부터 스페인어, 라틴어, 영어, 포르투갈어, 독일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개방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소통을 중요시했다. 어떤 질문이라도 받겠다면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마이바흐 풀만


    "전기차는 천천히 성장할 것입니다. 지금의 전기차는 배터리가 오래가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수소연료전지차가 개발될 시점에는 전기차가 더욱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기에 수소차가 미래형 자동차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체 회장은 "앞으로 자율주행차를 많이 보게 될 것"이라며 "사고를 줄이고 밤낮, 노면상태와 상관없이 자율주행이 가능해야 하므로 한 단계씩 숙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2020년까지 고급차시장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올 1월 판매에선 메르세데스 벤츠(12만5865대)가 경쟁사인 BMW(12만4561대)를 앞질렀다. 한국에서도 올 1월 수입차 브랜드 중 가장 많은 4367대를 팔아치웠다.


    제체 회장은 "지난해 경쟁자들과 달리 우리는 러시아에서 성과가 괜찮았다"며 "성장 잠재력이 줄어들긴 했다"고 말했다.


    제체 회장은 애플과 구글의 자동차 사업 진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IT와 자동차가 융합돼야 자율주행차·전기차 등이 활성화돼 구글과 애플의 관심을 환영한다"며 "다임러 그룹도 미래 자동차에 대한 준비를 해왔으며, 애플·구글과 협력할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애플과 구글이) 자동차 업계의 경쟁자가 된다해도 반긴다"면서도 "애플·구글이 강력한 힘을 지닌 회사지만, 애플의 팀 쿡 CEO가 다임러 그룹이 휴대폰을 만든다고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그들이) 전혀 두렵지 않다"고 했다.


    애플은 현재 타이탄이라는 이름의 전기차 개발 프로젝트를 내부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제체 회장은 현대자동차(005380) (173,000원▲ 5,500 3.28%)그룹에 대해 "15년 전 다임러가 현대차와 지분교환을 한 것은 당시 현대차가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지분 교환은 청산했지만, 현대차는 잠재력을 현실화하며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자동차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제체 회장은 "현대차는 다임러와 직접적인 경쟁 관계는 아니다"며 "차종과 고객층을 감안하면 우리의 경쟁상대는 BMW와 아우디"라고 말했다.


    다임러그룹은 한국 기업과 많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체 회장은 "한국의 전장·자동차 부품 공급업체들은 전 세계적으로도 큰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거나 논의하는 한국기업만 LG·삼성을 포함해 7~10곳이나 된다"며 "배터리 셀, 디스플레이뿐 아니라 일반 차량 부품에 대해서도 협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지난해 말 LG전자(066570) (60,400원▼ 200 -0.33%)와 무인주행자동차의 핵심 부품인 스테레오 카메라 시스템 개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 시스템은 차량 전방의 위험을 관찰하고 교통정보를 수집한다.


    다임러그룹은 한국산 부품을 사면서 자신들의 부품을 팔기도 한다. 쌍용차에는 5·7단 변속기, 5000㏄ 엔진 등을 공급한다.


    더 뉴 메르세데스 AMG GT3


    메르세데스 벤츠는 이번 모터쇼에서 초호화 리무진인 '마이바흐 풀만'을 선보였다. 지난해 마이바흐 S클래스를 선보인 데 이어 두번째 모델을 공개했다.


    마이바흐 풀만 리무진은 6499㎜로 마이바흐 S600보다 1053㎜ 길다. 휠베이스는 4418㎜에 달한다. 전고는 1598㎜로 벤츠 S클래스보다 100㎜ 이상 높다. 엔진은 V12 6L이며, 최고출력은 530마력·최대토크는 54.6㎏·m다. 차량 가격은 6억1400만원부터 시작한다.


    제체 회장은 "마이바흐는 다양한 국가의 최상위 고객을 위한 것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한다"며 "중동, 러시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 팔릴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과 미국이 주요 시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사 모델 가운데 GT3, A 클래스를 가장 좋아하는 차종으로 꼽았다. 다른 자동차 회사 중에는 벤츠와 협력관계가 있는 애스턴 마틴 차량을 선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