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규 KB금융 회장 '쥐 잡는 게 고양이'

    입력 : 2015.03.10 15:39

    낭중지추: 주머니속에 있는 송곳
    두번 퇴사, 세번 입사 끝에 KB수장에 올라
    적장까지 영입해가며 리딩뱅크 탈환 의지
    인사 정치권 외풍 등 장애물 산재


    작년초 세상을 떠난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은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국민은행장을 "상고 출신 천재"로 불렀다. 윤 회장은 삼일회계법인 부대표 시절 국민은행 회계컨설팅을 담당하며 김 전 행장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김 전 행장은 2002년 3월 첫 임원 인사에서 윤 회장을 재무기획본부장(CFO)으로 영입했다. 삼고초려 끝에 윤 회장을 불러들인 김 전 행장은 인사 보도자료에 직접 ‘상고 출신 천재’란 문구를 넣도록 지시했다.


    김 전 행장만 윤 회장을 찾은 건 아니었다.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도 2010년 법무법인 김앤장 상임고문으로 있던 윤 회장을 KB금융 CFO로 불러올렸다. 윤 회장은 상사라면 밑에 두고 일하고 싶은 능력을 갖고 있었다.


    윤 회장은 광주상고를 졸업하기도 전인 1973년 외환은행에 입행해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성균관대 경영학과(야간)를 졸업했다. 졸업 전에 행시(25회) 2차와 공인회계사 시험까지 통과했다. 학내 시위 주도 전력을 이유로 공무원 최종 임용에선 탈락했지만 삼일회계법인에 들어가 부대표까지 올라갔다. KB금융 관계자는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이해될 때까지 파고들어 노력하는 스타일"이라며 "숫자의 추이를 보고 돈이 되는지 아닌지 판별해낼 수 있을 정도로 재무적 통찰력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윤 회장은 '낭중지추(囊中之錐)'란 사자성어를 떠올리게 한다. 이 말은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뜻이다. 어디에서든 윤 회장의 재능은 송곳처럼 튀어나왔다.


    ◆ 두번 짐 싸고 떠나도 회장이 돼 금의환향


    윤 회장은 KB에서만 퇴사를 2번, 입사를 3번 했다. 2004년 김정태 전 행장이 금융당국의 눈 밖에 나 물러날 때 함께 나왔다. 당시 금융감독원은 카드사태 해결과 관련해 사사건건 엇박자를 놓던 김 전 행장에게 중징계를 내리면서 재무담당 부행장이었던 윤 회장도 함께 불명예 퇴진시켰다. 2003년 국민은행이 국민카드를 흡수합병할 때 조세를 포탈하기 위해 회계부정을 저질렀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지난 1월 대법원이 '2003년 당시 회계처리가 부정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윤 회장의 명예는 회복됐다.


    윤 회장은 2010~2013년 어윤대 전 회장과도 임기를 같이 했다. 국민은행장을 노렸지만 어 전 회장과 상극이던 임영록 당시 KB금융 사장이 회장에 오르자 미련없이 짐을 싸서 김앤장 고문으로 돌아갔다. 작년 임 전 회장과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이 내분을 벌이다 동반퇴진하는 KB사태가 터졌다. 내부 출신 회장이 필요하다는 여론 속에 윤 회장이 금의환향했다.


    윤 회장의 '권토중래(捲土重來)'는 IQ(지능지수)와 함께 EQ(감정지수)도 갖췄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 김정태 전 행장 상가에선 사실상 상주 역할을 했을 만큼 의리도 깊었다. KB금융 직원은 "배려심과 겸손함이 미덕이며 수평적으로 직원들을 대한다는 점에서 내부에서도 평이 좋다"고 전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 및 국민은행장


    ◆ 윤 회장식 흑묘백묘론


    국민은행은 2007년만 해도 은행권 사상 최대인 2조8000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던 리딩뱅크였다. 그러나 국민은행은 거듭된 경영진간 내홍과 각종 금융사고로 그 영광을 다 내주고 물러앉았다. 작년 KB금융의 순익은 1조4000억원 수준으로 1위 신한금융(2조811억원)에 6000억원이나 뒤쳐졌다.


    윤 회장은 리딩뱅크 탈환 계획을 가동했다. 그 첫번째 일환으로 보수적인 은행권에서 적장을 영입하는 파격을 보였다. 최영휘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KB금융 사외이사로 영입한 것이다. 이는 마치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덩샤오핑(鄧小平) 전 중국 국가주석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연상시켰다.


    최 전 사장은 행시 15회 출신으로 1982년 신한은행에 창립 멤버로 참여해 2007년 퇴직했다. 윤 회장과는 대학과 고시로 연이 닿아 있다. 윤 회장은 김정태 전 행장이 자신을 불렀을 때 그랬던 것처럼 최 전 사장을 삼고초려 끝에 영입했다. 윤 회장은 또 삼성맨인 유석렬 전 삼성카드 사장도 사외이사로 끌어들였다.


    그의 실용적인 성격은 지점 방문시에도 드러난다. 윤 회장은KB 간판이 보이면 무조건 차를 세워 들어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회장이 홀로 사전 통보도 없이 불쑥 나타나면 영업점 직원들은 혼비백산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윤 회장은 "사전 예고 하에 대형 영업점 위주로 다니면, 현장의 소리를 듣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불쑥 방문의 이유를 설명한다. 직원들에겐 '우문현답'을 강조한다. '우리들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뜻이다.



    ◆ 송곳 무디게 만드는 정치권 인사개입


    그러나 낭중지추의 윤 회장을 어렵게 하는 문제들도 적지 않다. 그룹 지배구조와 인사에 불어오는 외풍(外風)이다. KB금융 사장 인사를 놓고 외부 개입설이 끊이지 않는다. 올초 금융 경력이 전혀 없는 정치인을 KB금융 사장으로 앉히라는 압박이 윤 회장에게 가해진 걸로 알려졌다. 추천된 인물은 18대 국회의원 출신으로 여권 실세라는 신상이 은행가에 떠돈다. 윤 회장이 국민은행장직에 집중하기 위해 금융지주 사장직을 부활하려는 것인데 문외한이 오면 그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에 윤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외압에 떠밀려 역량 없는 사람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작년 'KB 사태'로 징계를 받은 전직 임원들이 경영 일선에 복귀하고 있다. 지난 5일 박지우 전 국민은행 부행장이 KB금융 계열사인 KB캐피탈 대표로 내정됐다. 박 전 부행장은 작년 9월 KB사태의 핵심 관련자 중 한명으로 금융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고 작년말 자리에서 물러났다. 박 전 부행장은 2007년 서강금융인회(서금회) 창립 때부터 참여해 6년간 회장직을 맡은 바 있다. 당초 KB캐피탈 사장은 다른 사람으로 내정돼 있었으나 막판에 외부 입김이 작용해 박 전 부행장으로 바뀌었다는 설이 제기된다.


    여기에 KB사태로 주의 처분을 받은 윤웅원 전 KB금융 부사장(CFO)이 조만간 KB금융 중책으로 복귀할 거란 소문이 돈다. 일각에선 경영진 내분 사태가 벌어졌던 KB금융이 도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염려가 나온다. 1월초 자진 사퇴한 정병기 국민은행 상임감사의 후임이 3개월간 정해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외압설 등으로 시끄럽다. 지배구조 개선안은 신구(新舊) 사외이사진 간 이견 속에 주춤거리고 있다.


    윤 회장의 장점이 발목을 잡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재무적 판단이 너무 앞서다보니 정무적 판단이 다소 미약하단 평가다. 모든 판단을 본인이 내려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의사결정이 느려진다는 문제점도 생긴다. 한 KB국민은행 직원은 "일을 부하에게 믿고 맡기질 못하는 것 같다"며 "끊임없이 문제를 제시하는 유형이라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힘들어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