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0조원 中기업과 손잡고... 금융 키우는 이재용

    입력 : 2015.03.27 09:17

    [中 시틱그룹과 금융사업 제휴, 삼성의 27년 숙제 풀기 나서]


    이재용의 도전, 글로벌 금융 - 규제 많은 美·英 대신 中 공략
    보험·증권·핀테크·카드 등 세계적 거물들과 잇단 회동


    오래된 숙제, 금융 키우기 - 전자가 90배 성장할 동안
    생명은 10배 성장에 그쳐… 27년 동안 성적표 극과 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5일 중국 베이징에서 시틱(CITIC·中信)그룹 창전밍(常振明) 동사장(董事長·대표이사)을 만났다. 시틱그룹은 증권·은행·보험·부동산 사업 등을 하는 중국 최대 국영기업(자산 규모 약 750조원)이다. 이날 만남에서 두 사람은 금융 사업 협력 확대에 합의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은 것은 2013년 6월 이후 약 2년 만이다. 그동안 이 부회장은 중국을 10차례 넘게 찾아 중국 고위층과의 네트워크를 쌓는 등 중국 사업에 공을 들여왔다. 이날 회동은 이달 9일 삼성증권이 시틱그룹 계열사인 중신증권과 전략적 업무제휴를 체결한 데 이어 두 그룹의 협력 관계를 공고화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 부회장은 "두 회사의 협력을 자산운용의 ETF (지수연동형 펀드) 사업 제휴 등 다양한 금융분야로 확대하자"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이번 회동은 그동안 IT·전자(電子) 부문에 집중됐던 중국 내 협력 기반을 금융 부문으로 확장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금융에서도 삼성전자와 같은 세계 일류(一流) 회사를 만드는 작업'을 본격화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電子는 90배 성장… 생명은 10배 남짓


    금융사업 부문은 실제로 삼성그룹의 대표적인 고민거리 중 하나다. 세계 금융산업은 눈부시게 진화하고 있지만, 삼성은 세계시장에 자랑할 금융계열사가 전무(全無)하다. 오죽하면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에 '금융일류화추진팀'까지 만들었을 정도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금융계열사 사장단과 회의를 가질 때마다 삼성생명 등을 질책(叱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왜 금융에서는 삼성전자와 같은 회사가 나오지 못하느냐"는 취지였다. 이 회장이 삼성그룹 회장으로 취임할 1987년만 해도 삼성생명(당시 동방생명)의 매출은 3조1000억원으로 삼성전자(2조3800억원)를 압도했다. 그러나 27년 동안 두 회사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오른쪽), 시틱(CITIC·중신) 그룹 창전밍 동사장(董事長·대표이사·왼쪽)


    삼성전자가 지난해 매출 206조원을 기록하며 90배 가까이 급성장하는 동안, 삼성생명(27조4000억원)의 증가폭은 10배를 밑돌았다. 삼성생명의 주가(株價)는 5년 전 공모가(주당 11만원)를 밑돌고 있다. 작년 5월부터 병상에 있는 이 회장을 대신해 삼성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 부회장도 금융사업에 특히 관심이 많다. 이 회장의 질책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 부회장으로서는 금융산업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큰 숙제인 셈이다. 그를 잘 아는 재계 지인은 "금융산업이 크게 발달한 미국에서 공부한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이 부회장은 금융산업에서도 삼성전자와 같은 세계 일류 회사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전했다.


    ◇"금융의 삼성전자 만들어야"



    이 부회장은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임영빈 금융일류화추진팀장(부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매월 1회 '금융사장단 회의'를 주재한다. 이 부회장은 이 회의에서 "금융도 국내에 안주하지 않고, 해외로 나가야 한다"며 '금융산업의 글로벌화'를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전 세계 시장을 통해 급성장했듯이, 금융회사들도 좁은 국내시장을 벗어나 세계시장에서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주문이다. 실제로 삼성증권은 최근 고객수익률 중심의 평가보상제를 도입했고 삼성카드는 빅데이터 마케팅 전담조직을 확대 개편하는 등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강도 높은 체질개선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직접 보험, 증권은 물론 카드와 핀테크까지 해외의 거물 금융인사들을 직접 만나며 금융 육성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고 있다. 지난달에는 미국 '비즈니스 카운슬' 정기 콘퍼런스에 참석해 마스터카드의 아자이 방가 CEO 등 미국 카드사 CEO들을 만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방한한 세계 최대 전자결제 기업인 페이팔의 창업자 피터 틸도 만났다. 작년 10월에는 일본 최대 손해보험 회사인 도쿄해상화재보험과 중국 국영 보험사인 중국인민재산보험공사(PICC) 대표 등을 그룹 영빈관인 서울 이태원 승지원(承志園)에 초청해 만찬을 함께했다. 이 부회장이 승지원에서 만찬 행사를 가진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이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일본 금융기업들이 어떻게 해외시장에서 성공했는지 등에 큰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금융산업은 대표적인 규제산업으로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이재용의 도전'이 큰 난제(難題)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금융산업은 영미계의 장악력이 막강한데다 각국마다 규제를 통해 진입장벽을 쳐놓고 있기 때문에 후발 주자가 힘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이 상대적으로 금융산업의 틀이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중국 시장에 큰 공을 쏟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