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대출 안되면 보금자리론? 서민들은 못갈아탄다

    입력 : 2015.04.01 09:51

    [저축은행 등 2금융권 대출 100만명, 정부 代案은 '그림의 떡']


    정부, 보금자리론·디딤돌 권하지만 LTV 한도 낮춰야 갈아타기 가능
    대부분 집값 떨어진 빌라·연립 상당수가 수천만원 일단 갚아야
    LTV 겨우 통과해도, 소득 낮아 매달 갚아야할 돈 더 늘어나
    "저소득층에 보금자리론 만기 연장 등 추진해야"


    수도권에 사는 김성태(가명·70)씨는 4년 전 2억원짜리 아파트를 사면서 지역 농협에서 변동금리·만기 일시상환 조건으로 1억6200만원을 대출받았다. 금리가 한때 5~6%였지만, 해마다 떨어지면서 지난해 3.75%까지 내려왔다. 그래도 매달 이자를 47만원씩 낸다. 학교 야간 경비를 서며 한 달에 150만원 버는 점을 감안하면, 소득의 30% 이상이 이자상환에 들어가고 있다. 그는 금리가 2%대인 안심전환대출(이하 안심대출)로 바꾸고 싶었지만, 은행 대출이 아니어서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정부가 대안이라고 내놓은 은행·보험권의 보금자리론을 알아봤다. 금리를 조금 낮출 수 있으려나 싶어 알아봤지만, 절망했다. 보금자리론의 아파트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은 70%로 제한돼 있어 최대 대출한도가 1억4000만원이었고, 보금자리론으로 갈아타려면 2200만원을 갚아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목돈이 없는 김씨는 보금자리론도 포기했다. 그는 "나 같은 서민이 태반일 텐데 혜택받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되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안심대출에서 제외된 약 100만명가량의 2금융 대출자들을 위해 대안으로 보금자리론 등을 제시하지만, 이용자는 거의 없는 상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2금융권 대출자들의 문의가 많지만, 보금자리론·디딤돌대출의 대상자격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실적이 전무(全無)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대안상품 있지만 수천만원 갚아야 가능


    정부가 내건 보금자리론은 조건이나 금리 면에서 안심대출보다는 떨어지지만 크게 뒤지지 않는다. 누구나 전환이 가능한 안심대출과 달리 무주택자이거나 1주택 보유자라는 점에서 제한적이긴 하다. 또 대출금리가 연 2.85~3.10%로 안심대출보다는 0.2~0.5%포인트 정도 높지만 일반 주택대출 평균금리(3.5%)보다는 낮다. 대상주택과 대출한도는 각각 9억원, 5억원으로 안심대출과 똑같다. 인터넷으로 신청하는 '아낌 e보금자리론'을 이용하면 10년 만기 금리는 2.75%로 낮아진다.



    만약 2금융권에서 6%대 금리로 1억원을 만기일시상환방식으로 대출받은 사람이 '아낌 e보금자리론'으로 갈아타면, 종전에는 매년 600만원의 이자를 내야 했지만 이자부담이 첫해에 265만원으로 335만원 줄고, 2년째에는 239만원으로 낮아진다.


    하지만 상당수 2금융 대출자에겐 그림의 떡이다. 가장 큰 문제는 2금융권이 2014년 8월 이전까지 LTV를 시중은행보다 20% 이상 높은 85%까지 허용해줬다는 점이다. 보금자리론으로 갈아타려면 LTV를 60~70%로 낮춰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대출 한도가 떨어져 대출원금을 토해내야 한다. 새마을금고 관계자는 "현재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30조원가량 되는데, 이 가운데 LTV를 80~85% 적용받은 경우가 최소 60~70%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상당수 대출자들은 집값 상승보다 하락 가능성이 큰 빌라·연립주택 등 비(非)아파트 담보 대출자들이다.


    금융 당국에 따르면, 신협·농협·산립조합 등 상호금융사 주택담보대출 잔액 56조3000억원 가운데 57%가 비(非)아파트 담보대출이다. 3억원짜리 연립주택을 구입하면서 2억4000만원(LTV 80%)을 대출받은 사람이 보금자리론을 이용하면 LTV 65%가 적용돼 4500만원을 상환해야 한다.


    A시중은행의 부행장은 "2금융 대출자들은 대부분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거절당해 2금융권에서 LTV·DTI 기준을 꽉꽉 채워 받은 사람들"이라며 "빌라나 연립주택은 아파트보다 집값이 하락했을 요인이 커 더욱 자격 요건을 갖추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신협의 경우, 전체 주택담보대출 11조2000억원(2013년 기준) 가운데 보금자리로 갈아탄 금액은 10억원에 불과했다.


    ◇LTV 통과해도 저소득에 발목


    2금융권 대출자들이 가까스로 LTV 기준을 통과했다고 해도, 이번엔 낮은 소득이 발목을 잡는다. 상호금융사들에 따르면, 2금융권 대출자들은 대부분 자영업자나 저소득자로 연소득 1000만~2000만원인 경우가 부지기수다. 매달 130여만원 소득을 버는 사람이 1억4000만원(주택 가격 2억원)에 대해 보금자리론(20년 만기, 연 2.95% 금리)으로 갈아타면, 매달 77만원가량의 원리금을 갚아나가야 한다. 월수입의 절반 이상을 빚 갚는 데 써야 하는 셈이다.


    반면에 정부가 밝힌 안심대출 이용자들의 평균 소득은 4100만원이고, 담보물도 아파트가 91%였다. 2금융권 대출자들은 신용등급 5~6등급에 편중된 다중 채무자들이 많다. 자영업자들은 소득을 신고하면서 세금을 줄이기 위해 실제 소득수준보다 금액을 낮춰 신고하는데, 이것이 보금자리론 대출 등을 받을 때 화살로 돌아온다. DTI를 재산정할 때 구두(口頭)로 밝히는 소득보다 서류상 소득이 적게 나와 DTI 인정을 제대로 못 받기 때문이다.


    보금자리론에 대해서도 안심대출처럼 중도상환수수료(대출원금의 1.2%) 부담을 없애준다 하더라도, LTV와 DTI 벽이 높아 2금융 대출이용자들이 좀 더 좋은 조건의 주택대출로 갈아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주택금융공사 관계자는 "2금융권 대출자는 다른 금융사의 부채를 감안했을 때 LTV를 충족했다 하더라도 DTI가 기준선인 60%를 초과하는 경우가 많다"며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보금자리론 만기를 연장하는 등의 개선책으로 부담을 줄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