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쇼크, 돈이 움직인다] "여보, 우리 옛날 증권계좌 어디 있지?"

    입력 : 2015.04.14 09:26

    김 부장도 이 대리도… 개미들 여의도로 귀환


    부동자금, 주식 등 위험자산으로 움직여


    -화장실 못가는 증권사 직원들
    "종목 추천 좀" 전화상담 폭주
    구조조정 칼바람에 시달렸지만… 이젠 "단체미팅 합시다" 제안도


    -개미들 '머니 무브'
    개인 거래 4년만에 60% 육박
    초저금리에 투자 심리 살아나… 투자자 예탁금 2년만의 최대치


    -低유가·低원화·低금리
    금리 인하에 외국인들 한국으로… 인도보다 한국 주식을 더 많이 사


    코스피가 30포인트 가까이 급등한 지난 10일, 한 대형 증권사 고객상담센터는 전화가 폭주하는 바람에 통화 연결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전화기에서는 "대기 고객이 현재 30명"이라는 안내 음성이 반복적으로 흘러 나왔다. 신한금융투자 김수영 부장은 "이달 들어 평소보다 20~30% 전화 상담이 늘어 직원들이 화장실 갈 틈도 없다"며 "잊고 있던 계좌 번호를 문의하거나 적당한 투자 상품을 추천해 달라는 문의가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 증권사 직원들은 최근 결혼 정보업체에서 걸려온 단체 미팅 주선 전화를 받고 활황장을 새삼 실감했다. 증권업계에서 인원 감축, 성과급 동결 같은 어두운 뉴스만 나왔던 최근 3~4년간은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 증권사 지점의 PB팀장은 "몇 년간 연락이 없었던 작은 아버지가 얼마 전 갑자기 지점을 찾아와 정기예금을 깬 돈을 맡겼다"면서 "실질 예금 금리가 제로(0)에 가까워지자 더 이상은 저금리를 견딜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이 경험하지 못한 1%대 금리 쇼크가 잠자고 있던 돈을 깨워 투자 심리를 뒤흔들고 있다. 주식 통장을 장롱에 처박아두었던 개인들이 기준금리 인하 이후 주식시장으로 몰려들면서 유가증권시장에서 개인의 거래 비중이 3월 말 50% 수준에서 지난 13일 58.7%로 껑충 뛰었다. 개인 투자자 비중이 이렇게 높아진 것은 2011년 4월 이후 꼭 4년 만이다.


    ◇초(超)저금리가 시동 건 자금 이동


    지난달 12일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인 1.75%로 떨어진 뒤 본격적인 머니 무브(Money Move·시중 자금이 예금 등 안전 자산에서 주식 등 위험 자산으로 이동하는 현상) 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증시에선 투자자 예탁금이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며 2013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고, 신용 거래 융자 역시 2011년 5월 역대 최고치에 근접하는 수준에 이른다. 증시 주변 자금인 MMF(머니마켓펀드) 규모도 110조원을 넘어섰고, CMA 잔액도 48조원을 넘어서는 등 언제든 증시에 유입될 수 있는 대기성 자금이 계속 불어나고 있다. 이런 자금을 바탕으로 개미 투자자들이 주식 투자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주문에 참여한 개인 주식 계좌 수가 지난 2월 162만개에서 3월 189만개로 16.4% 늘어났다.


    반면 과거 '없어서 못 팔았던' 은행 특판 예금 인기는 크게 시들해졌다. 농협은행이 지난달 2일부터 팔고 있는 '2015 NH 류현진 정기예·적금'(만기 3년 예금 기준 기본 금리 연 1.85%)은 출시 한 달 이상 지난 지금까지 3000억원 한도 중 1759억원 정도가 팔린 데 그쳤다. 메이저리거 류현진의 승수에 따라 금리가 더해지는 구조인 이 예·적금은 지난해 출시됐을 때는 7영업일 만에 한도가 소진될 만큼 인기였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류현진의 부상도 원인이겠지만, 그것보다는 금리가 너무 낮아 예금 자체의 매력도가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이 여자 프로농구 우승을 기념해 이달 1일 판매를 시작한 특판 상품 '강한 우리한새(농구팀 이름) 정기예금'(만기 1년 기본 금리 연 1.8%)은 한도를 1조원으로 야심 차게 설정했지만 지금까지 1000억원어치밖에 팔리지 않았다. 이 은행 관계자는 "특판이긴 하지만 기본 금리가 연 1%대에 머물다 보니 관심이 떨어지는 것 같다. 은행보다는 증시 쪽으로 자금이 흘러가고 있다"고 말했다.


    ◇증시 달구는 3低(저) 효과



    최근 국내 증시는 저유가, 원저(원화 가치 하락), 저금리라는 3低(저) 효과 덕을 톡톡히 보며 4년간 발목을 잡아온 박스권 장세에서 벗어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선 올 1분기 평균 유가(49달러 선)가 작년 1~3분기 평균치(99달러)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 상장 기업들의 수익 구조 개선에 일조하고 있다. 하반기에 유가가 오르더라도, 올해 유가가 평균 65달러 수준으로 유지된다면 상장사들이 매출 원가를 50조원 이상 아낄 수 있어, 영업이익도 12%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또 작년 평균 1054원이었던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이 올해는 평균 1103원 수준으로 떨어져(원화 가치 하락), 수출 기업 채산성 회복에 도움을 주고 있다. 하반기 미국이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 달러화 강세 기조가 예상돼, 저유가와 원화 약세 추세가 더 강화되고, 이는 국내 수출 기업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로 시장 금리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저금리를 견디다 못한 부동 자금이 주식 등 위험 자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국내 증시에서 돈 냄새를 맡고 먼저 움직인 사람은 외국인 투자자들이다. 한은의 금리 인하 이후 외국인 투자자가 유가증권시장에서 순매수한 규모는 2조6300억원이 넘는다.


    같은 기간 기관투자자나 투신권은 순매도세를 보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증시를 끌어올린 세력은 외국인이다.


    이들이 '바이(buy) 코리아'를 한 규모도 많지만, 아시아 신흥 6개국(한국, 대만, 인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중 한국에 대한 상대적 편애가 두드러진다는 점이 주목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3월 이후 이달 10일까지 외국인의 한국 증시 순매수 규모는 약 30억달러(3조3000억원)로, 2위 인도(17억달러)를 압도한다. 증시 닮은꼴 국가로 늘 비교되는 대만에서는 오히려 약 12억달러를 빼갔다. 국제금융센터 강영숙 연구원은 "기업 실적 부진 우려가 완화된 가운데, 통화 완화 정책 등이 부각되면서 외국인들의 매수세가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