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켜? 中 미디어 큰손들, 한국 콘텐츠기업에 군침

    입력 : 2015.04.14 09:44

    [국내업체 지분 인수, 주요주주 부상]


    대륙서 한국 영화·방송 인기 끌자 거액 자본금 대며 직접 지분 투자
    다롄완다그룹, 덱스터에 110억원… 소후닷컴, 키이스트에 150억원…
    일부선 "콘텐츠산업 中종속 우려"


    야구 경기가 한창 진행 중인 경기장. 몸집이 사람 다섯 배는 되는 고릴라가 타석에 오른다. 야구공이 광속으로 날아오고, 고릴라는 야구 방망이로 공을 있는 힘껏 친다. 방망이가 산산이 부서져 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고릴라는 털을 휘날리며 1루를 향해 내달린다.


    지난 2013년 개봉한 영화 '미스터고'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에 사용된 VFX(시각 특수 효과)는 컴퓨터 그래픽 전문 회사인 덱스터가 만들었는데, 덱스터는 지난 9일 중국의 1위 극장 사업자인 다롄완다그룹으로부터 1000만달러 투자를 유치했다. 애초 투자 예정 금액이 500만달러 수준이었는데 그룹 2세인 왕쓰충 이사가 방한해 즉석에서 투자금을 2배로 늘렸다. 다롄완다는 덱스터의 2대 주주(13.3%)로 등극하게 됐다.


    중국의 대형 콘텐츠·미디어 기업들이 국내 콘텐츠 업체에 막대한 자본금을 대고 주요 주주로 등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국산 콘텐츠가 자국에서 큰 인기를 모으자 아예 직접 지분 투자를 해 전략적 제휴 관계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저장화처·소후닷컴·텐센트, 국내 콘텐츠 기업 주요 주주로


    지난해 저장화처미디어그룹은 국내 영화 배급사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NEW)의 지분 15%를 사 2대 주주에 올랐다. 주식 양수도 금액은 535억원이었다. NEW는 2분기 중 저장화처미디어그룹과 합자회사를 설립해 중국 영화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미국 나스닥 시장 상장사이기도 한 중국 검색 포털 업체 소후닷컴은 자회사인 폭스비디오유한회사를 통해 국내 연예 기획사인 키이스트의 주식 483만주를 150억원에 샀다. 폭스비디오유한회사는 지분 6.36%를 보유해 배용준씨에 이어 2대 주주에 올랐다.


    인터넷 서비스 기업인 텐센트의 손자회사인 한리버인베스트먼트도 지난해 넷마블게임즈의 지분 28%를 사 3대 주주가 됐다. 중국의 공연 기획사 주나인터내셔널은 지난 1월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체 초록뱀미디어 지분 26.19%를 인수해 최대주주가 됐다.


    ◇중국, 국내 콘텐츠업체에 954만달러 투자


    중국 자본의 한국 콘텐츠 업체 지분 인수가 잇따르는 이유는 자국에서 우리나라 영상·게임 등 콘텐츠가 큰 인기를 얻자 전략적 제휴를 강화해 사업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덱스터 관계자는 "완다그룹에서 중국 칭다오에 미국 할리우드 모델을 본뜬 테마파크를 짓고 있는데, 영상을 활용한 놀이 기구가 많이 있어 덱스터의 시각 효과 기술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중국 자본의 한국 콘텐츠 기업 투자는 전년 대비 2.7배 넘게 증가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중국인이 지난해 국내 비디오, 기타 문화 방송, 게임 소프트웨어, 광고 영화 등 콘텐츠 업체에 투자한 금액은 총 954만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2013년 투자금(345만달러)보다 180%가량 큰 금액이다.


    ◇"막강한 자본력 앞세워 공격적 진출"


    중국계 자본의 대규모 유입에 대해, 국내 투자 업계 관계자들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투자 유치가 활발해져 국내 콘텐츠의 중국 수출 등 한류 문화 확산을 가속화·활성화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긍정적 전망이 나오는 한편, 일각에서는 중국 자본이 공격적으로 유입돼 국내 콘텐츠 산업을 좌지우지하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상주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국장은 "중국 기업은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저작권·판권 등 콘텐츠와 관련된 모든 권리를 통째로 사버리는 방식으로 해외 콘텐츠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면서 "이런 현상이 더 심해진다면 자칫 국내 콘텐츠 산업이 중국인들의 구미에 맞는 방향으로 변질하는 등 중국 시장에 종속되는 부작용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中 규제 피하려… CJ E&M 등 한국기업들은 中업체와 콘텐츠 공동제작]


    반대로 한국 기업들도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방법으로 방송 콘텐츠를 중국 업체와 공동 제작, 수출하고 있다. 중국 업체가 지분을 갖고 콘텐츠 제작에 참여할 경우 당국의 규제 문턱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SBS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런닝맨'의 리메이크작인 '달려라 형제'를 저장위성TV와 공동 제작·방영했다. 달려라 형제는 중국 예능 프로그램 사상 최고 시청률인 4.2%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증권 업계 관계자들은 SBS가 달려라 형제의 로열티 비용으로 벌어들일 수익이 2분기부터 반영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CJ E&M은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의 중국판 작품 '화양저저'를 중국 동방위성TV와 공동 제작했다. 지난해 '꽃보다 할배'의 리메이크작 '화양예예'를 공동 제작·방영한 데 이어 두 번째 시도다. 이외에도 CJ E&M은 중국 톈진세기락성문화미디어유한공사와 함께 영화 '수상한 그녀'의 리메이크작인 '20세여 다시 한 번'을 공동 제작해 10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팬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해 1~3월 MBC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킬미힐미'는 저장화처미디어그룹과 공동 제작한 작품이다. SM C&C는 중국 동영상 플랫폼 사업자 요우쿠투도우와 함께 예능 프로그램인 '슈퍼주니어M의 게스트하우스'를 공동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