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4.17 09:54
글로벌 IT기업들 치열한 각축장으로
아마존 '관심 제품 추천 서비스' 전체 매출의 3분의 1 넘어
미국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고객의 마음을 귀신같이 읽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관심 제품 추천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고객의 구매 이력과 패턴을 분석해 고객이 지갑을 열 만한 상품을 추천해준다.
아마존 추천 서비스의 위력은 놀라울 정도다. 국제전기전자협회(IEEE) 자료에 따르면 아마존 매출에서 추천 서비스의 비중은 3분의 1이 넘는다. 작년에는 '고객이 아예 주문하기도 전에 배송을 시작하는 기술'에 대해 특허를 받았을 정도로 이 분야에 관한 한 아마존의 자신감은 대단하다. 고객이 살 것으로 예상되는 물품을 미리 포장해 고객과 가까운 물류창고나 배송 트럭에 옮겨 놓음으로써 물류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하겠다는 것이다.
이 서비스의 비결은 '머신러닝(Machine Learning·기계학습)'이라는 기술이다.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어떤 패턴을 읽어내고, 이를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이다. 분석 위주의 빅데이터 기술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아마존의 경우 머신 러닝에 바탕을 둔 예측을 일주일에만 무려 500억번이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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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글의 데이터 센터 내부 모습
아마존이 이 '비장의 기술'을 다른 기업에도 제공하기로 했다. 아마존의 온라인 서버·저장 공간 대여(클라우드 컴퓨팅) 사업인 '아마존웹서비스(AWS)' 고객을 대상으로 '아마존 머신러닝'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예컨대 고객 정보가 입력된 데이터를 AWS 클라우드 서비스에 올리고, '고객이 이 제품을 살까요?' '이 제품을 가장 좋아할 고객은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지면, 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존에 따르면 기존 방식에 따라 고객의 이름만으로 성별을 알아내는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엔지니어 2명이 꼬박 45일을 작업해야 한다. 머신러닝 서비스를 이용하면 엔지니어 한 명이 단 20분 만에 같은 정확도의 예측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고 아마존은 설명한다.
사용자가 데이터를 올리면 아마존 머신러닝은 데이터를 검증하고 최적화된 분석 알고리즘을 제공한다. 개인이나 기업은 이를 활용해 각자의 비즈니스에 필요한 고객 패턴 분석, 마케팅 전략 수립 등의 작업을 할 수 있다. 이 기술은 인터넷 서점으로 출발한 아마존의 초기 직원 57명이 내부 업무용으로 개발해 운용, 발전시켜온 시스템이다. 이제 누구나 돈만 내면 아마존의 마술 같은 '고객 관심법(觀心法)'을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마존이 가세하면서 머신러닝 시장은 글로벌 IT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각축하는 치열한 시장으로 변하게 됐다. 선발 주자는 미국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다. MS는 독일 엘리베이터 업체 티센크루프 등 세계 수백개 기업에 머신러닝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티센크루프가 도입한 MS의 '애저(Azure) 머신러닝' 시스템은 엘리베이터에 달려있는 센서 10여개를 통해 엘리베이터의 속도와 모터의 온도, 출입문 오작동 등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사고가 발생할 위험도를 예측해준다. 아마존 것보다 더 정교해 전문가를 위한 고급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사티아 나델라 MS 최고경영자(CEO)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머신러닝 기술로 집약돼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면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구글은 지난해 영국의 머신러닝 관련 업체 딥마인드를 4억달러(약 4300억원)에 인수하면서 이 분야에 진출했다. 2012년 설립된 딥마인드는 전자 상거래, 게임 등에 대한 예측 모델을 개발하는 기업이다.
구글은 영국 옥스퍼드대학과도 관련 기술 연구를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페이스북도 자체 개발한 머신러닝 관련 소프트웨어를 외부 기술자에게 공개하는 등 사업 영역 확장을 추진 중이다.
머신러닝의 원조 격인 IBM은 자연어 처리를 기반으로 일반인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왓슨 애널리틱스'를 내놓았다. 왓슨(Watson)은 자연어 형식으로 된 질문들에 답할 수 있는 인공지능 컴퓨터 시스템이다.
머신러닝은 사람의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데이터의 양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이 때문에 강력한 검색 엔진을 갖고 있는 구글과 MS, 거대한 상거래 정보를 축적해온 아마존 등이 유리한 형국이다.
IT 기업들이 앞다퉈 머신러닝 분야에 뛰어드는 것은 거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수시로 생성되고, 이를 분석할 컴퓨팅 기술이 더 정교해지고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데이터베이스에 머신러닝 기술을 접목하면 상업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전에 없이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구글과 아마존, MS 등이 주도하는 세계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은 성장세가 가파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가트너는 이 시장이 2015년 1800억달러 규모에서 내년 2070억달러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이 서비스를 운용하는 기업들의 수익성은 떨어지고 있다. 거대 IT 업체들이 너나없이 비슷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레드오션(수익을 내기 힘든 경쟁 포화 시장)'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머신러닝은 기존 클라우드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높여 수익성을 높이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국내 기업도 연구를 본격화하고 있다. 네이버의 경우 온라인 저장 서비스인 'N드라이브'에 올라오는 사진을 자동으로 분류하는 서비스에 머신러닝을 접목했다. 예를 들면 반려견이 나오는 사진, 음식이 나오는 사진 등 사용자가 원하는 사진을 따로 모아주는 기능이다. 네이버 산하 연구기관인 '네이버랩스' 김정희 수석연구원은 "이제 머신러닝 기술은 인간의 뇌를 닮은 모델, 즉 인공지능에 의한 미래 예측 기술로 발전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머신러닝(Machine Learning·기계학습)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로, 딥러닝(Deep Learning)이라고도 한다. 컴퓨터가 데이터의 패턴을 검증하고 스스로 학습한다는 점에서 ‘러닝’이라고 하는 것이다. 머신러닝이 발달하면 범죄나 테러, 교통사고를 예방하는 것도 가능하다. 기존 범죄자와 잠재적 범죄자들의 행동 패턴, 심리 상태 등 수없이 많은 범죄 발생 요인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특정 시점·장소에서 누군가가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몇%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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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 / MS 최고 경영자 사티아 나델라 / 아마존 최고 경영자 제프 베조스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
"모든 것(everything)을 분석하겠다." 대학원 시절 웹페이지 분석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MS 최고 경영자 사티아 나델라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머신러닝 기술로 집약돼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면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
아마존 최고 경영자 제프 베조스
"우리는 절대로 데이터를 내다버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