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4.20 10:00
200자 원고지 3장 정도, 5편의 글 3개월씩 올려… 직원들이 공유하도록 해
LG생활건강의 본사가 있는 서울 광화문 빌딩의 남녀 임직원 화장실. 이곳에는 A4 절반 크기 종이에 다양한 주제를 담은 'CEO 메시지'가 붙어 있다. 이달 초부터 게재된 CEO 메시지의 제목은 '힘 희롱'이다. 메시지는 대략 이런 내용이다.
"윗사람의 지위를 이용해 아랫사람을 괴롭히는 '힘 희롱'을 경계하자는 분위기가 최근 미국과 일본에서 퍼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힘 희롱을 용인했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회사 밖에서 벌어지는 '갑(甲)의 횡포'는 물론 사내에서도 '갑질 횡포'를 줄여야 한다."
LG생활건강의 CEO인 차석용〈사진〉 부회장은 2007년 3월부터 메시지를 쓰기 시작해 모든 임직원이 보도록 화장실에 붙여놓고 있다.
차 부회장의 화장실 CEO 메시지는 이달 19일로 총 116편을 기록했다. CEO 메시지의 분량은 보통 200자 원고지 3장 정도이다. 각 5편을 3개월씩 게시하는데, 본사와 지방 공장, 물류센터, 해외 공장·법인에 있는 모든 화장실에 CEO 메시지 932건이 붙어 있다.
차석용 부회장은 "CEO 메시지는 주로 주말에 직접 쓴다"며 "직원들에게 CEO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특히 LG생활건강이 지난 10여년 동안 M&A(인수·합병) 13건을 통해 외부 수혈을 많이 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조직 문화를 융합하려면 CEO의 경영 방침과 철학을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글의 내용은 크게 ▲경영 철학과 전략 ▲고객을 위한 경영 ▲직원의 역량 개발을 위한 조언 등으로 나뉜다. 그는 'M&A, 최고를 향한 큰 그림'이라는 글에서는 "우리 회사의 M&A는 외형 성장이 아니라 회사 목표 달성에 필요하냐 여부로 결정된다"는 회사의 경영 전략을 집중 소개했다.
'아름다운 양심선언'이라는 제목의 CEO 메시지에서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스트라이커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세계 축구계에서 인정을 받는 이유는 골을 많이 넣었을 뿐 아니라 평소에 자기가 얻은 페널티킥이나 골이 오심(誤審)에 따른 것이라면 곧바로 솔직하게 공개하는 정직함이 있기 때문"이라며 "회사에서도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용기 있게 고백하는 사람이 롱런할 수 있다"고 썼다. LG생활건강의 김흥식 상무(인사 담당)는 "화장실은 모든 직원이 사용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화장실 메시지'가 사보(社報)나 인트라넷보다 훨씬 더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