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대출도 못받게 되나...질병정보, 신용정보 편입 논란

    입력 : 2015.04.21 09:21

    정부, 통합 신용정보추진委 출범…보험 질병정보 대출 신용정보에 편입되나
    시민단체로부터 국민감사청구 받은 감사원…1년 가까이 묵묵부답


    '아픈 것도 서러운데 병에 걸린 것 때문에 은행에서 대출도 못받는 시대가 온다?'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정부가 보험업권에 있던 질병정보를 여신심사와 직결되는 신용정보로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병정보가 신용정보에 해당하는 지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결론나지 않은 상태라 논란이 되고 있다. 감사원은 시민단체로부터 이에 대한 국민감사청구 요청을 받고도 1년 가까이 시간을 끌고 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3월을 목표로 암 진단은 물론 부인과 진료 등 민감한 질병 내용까지 신용정보에 포함할 수 있는 통합 신용정보기구 출범을 추진하고 있다.


    4월 1일 신용집중체계 개편 방향을 담은 신용정보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 이어 16일에는 통합 신용정보기구를 출범하기 위한 통합추진위원회가 발족했다. 통합 신용정보기구는 은행, 보험, 카드 등 권역별로 흩어진 계약자 정보를 한 곳에 모아 관리한다.


    문제는 질병정보가 신용정보에 해당되느냐는 여부다. 질병정보는 보험업권에서만 쓰는 개인정보다. 질병 진단 여부가 보험금 지급의 주요 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산부인과 병력, 암발생 여부 때문에 대출을 거부하거나 금리를 인상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는 문제"라며 "미국도 비금융정보의 경우 임대료나 수도, 전기 사용료 등으로 한정해 신용정보로 사용하고 있는데, 신용평가에 질병정보를 사용하는 경우는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금융소비자연맹 등 시민단체는 지난해 3월 "보험권의 질병정보가 신용정보에 해당한다는 정부의 유권해석에 문제가 있다"며 감사원에 국민감사청구를 요청했다. 감사원은 그 해 7월 “금융위를 상대로 기관 감사 일정이 예정돼 있어 함께 들여다보겠다”고 회신한 뒤 1년이 가깝도록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감사원은 통보시기나 결과 발표가 지연되는 이유에 대해 “감사중인 사안에 대해선 밝힐 수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금융권에선 질병정보가 신용정보에 포함되는 것이 시간 문제라고 보고 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통합 수순은 거스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통합 기구를 은행연합회 내에 있는 신용정보집중기관과 합칠 건지 별도 기구로 설립할 것인지만 남았다"고 설명했다.


    공론화 과정이 부족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금융당국은 '밴(VAN)수수료 체계 개편'이나 '카드복합할부 존폐 여부' 같은 쟁점 현안이 있을 때마다 공청회나 설명회를 거쳐 관련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왔지만 질병정보의 신용정보 편입 여부에 대해선 별도의 공론화 과정이 없었다.


    질병정보에 대한 논란은 2002년 신용정보법 담당 부서인 당시 재정경제부가 '보험정보는 신용정보'라는 유권해석을 내리면서 불거졌다. 보험협회는 이를 확대 해석해 200여개에 가까운 계약자의 신체 및 질병정보를 회원사에 제공해오다 적발돼 금감원 제재를 받기도 했다.


    지난해 초 개인정보 유출사태가 터지면서 통합 신용정보 집중기관에 대한 논의가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신용정보 집중기관인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통합안이 추진됐다.


    다만 대출 관련 신용정보를 제공할 때 질병정보를 제외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기술적으로는 전산시스템상 질병정보를 신용정보로부터 분리 할 수 있지만, 내부자가 공모한다든가 CEO가 요구 하는 등 운영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6명으로 구성된 통합추진위원회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위원들이 신분 공개를 꺼리고 있어 공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