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4.23 09:05
- 작년부터 비중 빠르게 줄여
총자산 17% 차지했던 삼성電, 아예 다 팔아버린 펀드도 있어
- 삼성전자 주식 왜 파나
실적 부진에 따른 주가 하락… 투자매력 중·소형주로 옮겨가
삼성전자를 바라보는 가치주 펀드 매니저들의 시각이 달라졌다.
가치주 펀드란 그 기업의 실력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돼 있는 주식을 주로 사들이는 펀드를 말한다.
이미 실력이 검증된 데다 주가도 100만원에 달하는 삼성전자와 같은 주식을 편입하는 것을 놓고 가치주 펀드로서 투자자에 대한 약속을 지키고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2013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가치주 펀드 매니저들은 삼성전자 주식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는 비중을 빠르게 줄이고 있다. 설정액이 많은 가치주 펀드는 대부분 삼성전자 주식을 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예 다 팔아버린 펀드도 있다.
◇KB·한투 등 주요 가치주 펀드, 삼성전자 비중 줄여
국내에서 설정액이 가장 큰 가치주 펀드는 한국밸류10년투자 1(주식)(C)로 1조5600억원 규모다. 다음으로 KB밸류포커스자(주식)클래스A(1조3600억원), 신영마라톤(주식)A(8300억원), 한국밸류10년투자연금전환 1(주식) C(7100억원), 에셋플러스코리아리치투게더자 1(주식)Class C(6200억원) 순이다.
이 5개 펀드 중에서 4개가 지난해 담고 있던 삼성전자 주식을 많이 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펀드 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한국밸류10년투자 1(주식)C는 2013년 말 펀드 총 자산의 17.17%가 삼성전자 주식이었는데 올해 초 전부 매도한 것으로 집계됐다.
KB밸류포커스자(주식)클래스A와 한국밸류10년투자연금전환 1(주식) C도 지난해까지 10% 이상 담고 있었지만 올해 초 전부 팔았다. 에셋플러스코리아리치투게더자 1(주식)Class C 도 최근 1년 사이 2%포인트 이상 줄였다.
◇가치주 펀드, 삼성전자 왜 파나
그동안 삼성전자를 10% 이상 가지고 있던 펀드 매니저들이 갑자기 돌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①삼성전자 주가 하락
2013년까지 가치주 펀드 매니저들이 삼성전자를 들고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오르는 주식'이었기 때문이다. 중·소형주가 대부분인 펀드 포트폴리오에 굳이 삼성전자를 끼워 넣은 것은 분기마다 좋은 실적을 내며 주가가 상승해서다. 펀드 수익률에 도움이 되는 주식이었던 것.
지난해부터는 실적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초 130만~140만원에서 거래되던 주가가 10월에는 100만원대로 떨어졌다.
가치주 펀드 매니저들이 말하는 투자 철학에 따르면, 주가 하락은 주식을 팔 이유가 아니라 살 이유가 된다. 갑작스럽게 투자 심리가 악화되면서 주가가 많이 내려간 경우를 두고 펀드 매니저들은 주식이 본래 기업 가치에 비해 '저평가'됐다고 판단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 삼성전자를 담고 있는 펀드 수익률이 악화되자 부랴부랴 포트폴리오에서 비중을 줄이기 시작했다.
연초까지 두 자릿수 수익을 내던 일부 펀드는 삼성전자 주가 하락과 동시에 수익률이 0~1%로 뚝 떨어졌다.
삼성전자를 편입하지 않고 있거나 편입 비중이 낮았던 펀드는 전체 평균보다 좋은 성과를 냈다. 메리츠코리아, 트러스톤밸류웨이, 미래에셋가치주포커스 펀드는 평균 수익률이 7~8%로 전체 가치주 펀드 평균이 5% 초반이었던 것에 비해 높았다.
국내 자산운용사에서 가치주 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한 매니저는 "주가 흐름과 상관 없이 앞으로의 성장이 정체될 것이라고 판단돼 삼성전자 비중을 줄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②투자 매력 높아진 중·소형주
또 다른 원인은 중·소형주의 투자 매력이 커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동안 국내 증시를 이끌었던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의 주가가 글로벌 경기 침체, 국내 수요 부진 등의 영향으로 내리막길을 걷자 투자자들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중·소형주로 옮겨갔다.
지난해 코스피지수가 하락하는 동안 신성장 산업인 화장품, 헬스케어 기업이 많이 상장돼 있는 코스닥지수는 8.6% 올랐다.
삼성전자를 굳이 편입하지 않더라도 수익을 끌어올릴 수 있는 다른 주식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