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前미래부 장관 후보자 "꿈은 크게, 목표는 높게"

    입력 : 2015.04.29 09:37


    박근혜 정부의 첫 인사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인물. 이전까지만해도 재산 1조원의 미국에 이주한 한국계 미국인 출신의 벤처 신화 1세대, 미국 벨연구소 최연소 사장이라는 화려한 주목을 받은 인물.


    박근혜 정부의 경제 기조를 이끄는 미래창조과학부 초대 장관후보인 김종훈(사진·55) 키스위 모바일 회장 겸 전 벨 연구소 사장에게 쏟아진 평가다.


    김 회장이 28일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KAIST) 교내 KI빌딩에서 그간의 침묵을 깨고 첫 대중 강연을 열었다. 주제는 ‘목표는 높게, 행동은 신속하게’라는 주제였다. 청년이 어떻게 공격적 비전을 세우고 이를 실행에 옮길지 후배 공학도에게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김 회장은 "기업가 정신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기업을 경영하기 편리한 정책과 돈, 사람, 그리고 기질이 있어야 한다"며 "무엇보다 이 가운데 목표를 크게 잡고 이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미국 사회에서도 살아있는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1975년 서울 정릉의 산동네에 살던 그는 중학교 때 미국에 이민을 떠났다.


    그는 17세 때 집을 나와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오후 11시부터 오전 7시까지 일하면서 고등학교에 다녔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과학과 수학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그는 전액 장학금을 받고 존스홉킨스대 전자공학·컴퓨터과학과에 입학했고 메릴랜드대에서 통상 4∼6년 걸리는 공학박사 학위를 3년 만에 따내며 성공신화의 기반을 마련했다.


    김 회장은 1980년대 말 한 차례 소프트웨어회사를 창업했다가 실패를 경험한 그는 미 해군에 자원해 장교로 7년간 복무했다. 해군 장교 업무 중 가장 고된 것으로 알려진 핵잠수함 탑승을 자원했다.


    제대한 뒤인 1992년에는 큰딸의 이름을 딴 벤처회사 '유리시스템스'를 창업해 초고속인터넷 기술 중 하나인 비동기식 전송 모드(ATM) 통신장비를 개발했다. 1998년 세계적인 통신장비업체인 루슨트테크놀로지에 10억 달러에 회사를 매각하며 38세의 나이에 미국 400대 부자의 반열에 올랐다. 성공한 뒤엔 둘째 딸의 이름을 딴 ‘주리재단’을 만들어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도 앞장섰다.


    2001년 메릴랜드대 교수로 자리를 옮겨 전자공학을 가르치던 그는 2005년 벨연구소의 최연소 사장에 취임했다. 김 회장은 사장에 취임한 직후 연구원들이 센서와 네트워크를 활용해 사람들의 생활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스마트기술 연구에 집중하도록 했고 기업 창업도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이런 그의 활동을 높게 평가한 주변의 추천을 받아 초대 미래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지만, 국내 재산 운영과 미중앙정보국(CIA)의 자문 위원 활동 경력이 문제가 되면서 스스로 내정자직을 내놨다.


    하지만 그는 후보자직을 사임한 이후에도 박 대통령의 방미를 물밑에서 수행하는 등 창조경제 확산에 적잖은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회장은 KAIST 학생 예비창업가를 대상으로 하는 이날 강연에서도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며 공격적이고 뒤를 보지 않고 달려드는 벤처 정신에 대해 강조했다.


    김 회장은 "세계는 급변하고 정보와 사람이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글로벌한 시대에 한국에 국한된 목표가 아닌 글로벌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며 목표를 높게 잡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어쩌면 내가 가진 잠재적인 능력보다 더 이룬 것 같다"며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회장은 "대학시절 전기공학과 전산을 전공하고 박사 학위를 2년 만에 졸업하는 것을 목표를 세우고 공부했다"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조건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또 "박사학위도 2년만에 따고자 했고 이론적인 주제로 논문을 써서 남들보다 더 빨리 졸업했다"며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목표를 이룬다"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이날 강연에서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벤처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유리시스템을 시작할 때 이미 젊지 않은 나이였고 단돈 40달러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그때도 목표를 잡아 5년 내 100만 달러 회사로 만들겠다는 다짐을 했고 결국 6년 내 목표를 달성했다"고 했다. 목표를 크게 잡고 나서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가 세운 유리시스템즈는 처음엔 컨설팅이었지만 제품을 만드는 회사로 바뀌었고 정부 대상으로 상업적 회사로 거듭났다.


    김 회장은 최근 맞춤형 쌍방형 스포츠 중계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키스위 모바일이라는 벤처를 새로 창업했다. 평소 그의 소신대로 매출 목표도 10억달러로 잡았다.


    김 회장은 "영화관에서 텔레비전으로 다시 모바일 기기로 전환되는 시점에 영상을 개인의 선호도에서 맞춰서 인터랙티브하게 보는 새로운 미디어 시대가 열릴 것"이라며 "스포츠 분야를 겨냥한 인터랙티브와 모바일, 소셜네트워크 기능을 영상 기술과 접목하는 제품을 개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또 "목표를 크게 잡고 상자 밖에서 생각하는 창의성이 중요하다"며 "무엇보다 창업을 함께할 수 있는 팀원과의 협동과 모험하고자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회사를 설립하면서 후배 벤처 사업가를 키우기 위한 프로젝트도 가동했다. 자신이 직접 멘토로 나서 KAIST 재학생들에게 글로벌 기업가정신을 고양하고 현지문화와 창업환경 체험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김 회장은 "처음 벤처를 만들며 실패도 많이 했다"며 "빚도 많이 졌지만 실패에서도 열정을 잊지 않고 목표를 잡아 실행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