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5.22 09:07
한국 화장품 업계에는 불황(不況)이 없다. 한국 화장품 산업은 수출과 내수 판매가 함께 늘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 화장품 성장세를 촉발한 것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해외 관광객과 한류(韓流) 열풍이다. 국내 화장품 1위 기업 아모레퍼시픽· 2위인 LG생활건강 제품에서 벗어나, 2014년 한국을 찾은 610만 중국 관광객이 선택한 덜 알려진 브랜드들을 찾았다. 의사들이 만든 마스크팩, 말 기름으로 만든 보습 크림 등 제품 종류도 다양하다. 중국인들의 입소문을 타고 불티나게 판매되는 제품들 덕에 이들 기업들은 작년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사상 최대 실적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한류 화장품 열풍의 숨겨진 주역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산성앨엔에스 '리더스 마스크팩'
한국 마스크팩에 대한 중국 소비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인기 제품 순위 상위를 한국산 마스크팩이 휩쓸 정도다. 국내 마스크팩 제조업체 주가는 연일 고공행진 중이다.
그 중에서도 '리더스 마스크팩'이란 제품은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국내 대형 화장품 제조업체들의 제품을 제치고 중국 시장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이 제품은 중국 최대의 쇼핑몰 '타오바오'의 마스크팩 부문에서 2014년 10월 이후 줄곧 1위를 차지했다. 2014년 한 해 동안 판 마스크팩이 총 4000만장으로, 100만장이 넘어가면 '베스트셀러'로 여겨지던 마스크팩 시장에 한 획을 그었다. 한 편에선 '중국인 관광객이 싹쓸이해 내국인이 더 구하기 어렵다'는 말까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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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성앨엔에스의 '리더스 마스크팩'이란 제품은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국내 대형 화장품 제조업체들의 제품을 제치고 중국 시장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타오바오 제공
이 제품을 만드는 산성앨엔에스는 영업이익이 1년새 10배 늘었다.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산성앨엔에스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은 518억원을 기록해 2014년 같은 기간보다 129.9%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175억원으로 1060.8%, 순이익은 132억원으로 1191.4% 늘었다.
산성앨엔에스는 원래 골판지 제조업을 주로 하던 업체다. 2011년 화장품 제조업체 리더스코스메틱을 인수합병하기 전까지는 화장품 업종과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리더스코스메틱 인수로 기능성 화장품 분야에 발을 뻗자 마자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인수 1년 만인 2012년 8월에는 롯데면세점 본점에 입점했고, 2014년에는 신라·갤러리아· 동화·한라·워커힐 등 다른 주요 면세점에도 속속 들어섰다.
이 회사의 주력제품은 산뜻한 느낌의 에센스를 사용해 자극이 덜하고, 독특한 시트 소재(부직포)로 만든 마스크팩이다. 일반 화장품업체와 비슷한 다른 제품군들도 있지만, 마스크팩 의존도가 특히 높다. 현재 판매하는 200개 품목 중 마스크팩이 130개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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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성앨엔에스 용인공장에서 직원들이 마스크팩을 10장 단위로 포장하고 있다. /산성앨엔에스 제공
이 제품은 '의사들이 만들었다'는 코스메슈티컬(Cosmeceutical·약용화장품) 컨셉과, '마스크팩에 집중한다'는 전문성을 강조해 중국인 관광객들과 중국 현지 온라인몰에서 주목을 받았다. 코스메슈티컬은 '화장품(cosmetics)'과 '의약품(pharmaceutical)'의 합성어다.
애초에 산성앨엔에스가 인수한 리더스코스메틱이 '리더스피부과' 전문의들이 환자 임상 결과와 '리더스에스테틱' 회원들의 피부 개선 경험을 바탕으로 화장품을 만들던 업체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타오바오 쇼핑몰에서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들의 평가를 보면 이 제품은 평균 점수가 5점 만점에 4.8점을 넘는다. 특히 전체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 가운데 68% 이상이 구매력이 높은 25~40대 사용자다. 이들은 이 제품 평가에 '보습 효과가 좋다(保湿滋润)', '품질이 우수하다(质量好)', '향기롭다(味道好闻)'와 같은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박종대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중국 마스크팩 시장이 쑥쑥 크고 있고, 중국에서 리더스코스메틱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 앞으로도 마스크팩 관련 사업은 도약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여기에 색조 화장보다는 기초 화장에 집중된 중국인들의 관심도 마스크팩 인기에 힘을 실어줬다. 중국인들은 비싼 기능성 화장품을 사용하는 편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피부 보습 효과가 풍부한 마스크팩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양지혜 KB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인들은 한국 화장품 중 다른 세계적인 화장품 제조 업체 제품과 비교해 가장 좋은 제품, 사고 싶은 제품으로 마스크팩을 꼽는다"고 말했다.
산성앨엔에스 화장품 부문은 2014년 매출액 710억원을 달성했다. 2015년에는 2014년의 세 배에 가까운 1917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올해부터는 중국 내 온라인몰뿐 아니라 중국 오프라인 시장에서도 마스크팩 등 관련 제품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산성앤엔에스는 올해부터 인도네시아·두바이 등지에 해외 법인을 설립하고 다른 세계 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마스크팩 한 종류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지나치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금까지는 단일 제품으로 눈에 띌만한 성과를 올렸지만, 시장 변화나 경쟁사가 부상하면 한 순간 회사 전체 수익 구조가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높은 순익 비중에도 불구하고 광고 선전비가 늘고 있는 점과 면세점 매출 비중이 늘어나는 데 따른 판매 수수료 증가 공장 설비 증설 등으로 인한 일시적 비용 문제 등에도 주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