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대장이 되고싶은 부자들

    입력 : 2015.05.26 09:24

    [ 제2의 가로수길 찾아라… 해방촌·서교동·연남동서 '돈脈' 찾는다]


    - 골목 상권, 상식 뛰어넘는 투자
    여유로운 맛집 찾는 청춘 덕분에 교통 안좋지만 몇천만원씩 뛰어
    낡은 단독주택 리모델링 해서 1층 카페·위엔 원룸, 임대수익
    시세보다 지나치게 비싸게 나온 '배짱 물건' 주의해야


    지난 21일 오후 서울 합정역과 상수역 사이에 있는 서교동 카페 거리. 오래된 단독주택 골목길은 구석구석 상가 개조 공사가 한창이었다. 골목 곳곳에 있는 건물 철거용 가림막 사이로 전동 드릴과 망치 소리가 요란했다. 임채우 KB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골목길은 대로변보다 장사가 잘되지 않으니 땅값이 쌀 것이란 게 통념이지만 이 지역은 예외"라며 "작년에 3.3㎡당 4000만원 정도였던 이면 도로 단독주택 땅값이 지금은 5000만~6000만원까지 훌쩍 뛰었지만 나와 있는 매물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말했다. 임 위원 설명을 듣던 큰손 고객 12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쫑긋 세웠다.


    그중 한 남성 고객이 "건물을 지으려고 이 지역을 오래전부터 지켜봤는데 가격이 거의 움직이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급상승해서 속이 탄다"고 말하자, 임 위원은 "단독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가격이 횡보하다가 계단식으로 상승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답했다.



    한적한 도심 골목길이 큰손들의 발걸음으로 북적북적하기 시작했다.


    KB국민은행이 지난해부터 거액 자산가들을 상대로 펼치고 있는 골목길 상권 투어에는 이미 150명이 참석했다. 이날 서교동 카페 거리를 둘러보는 골목길 투어에는 자산가 12명이 참석했다. 한 50대 남성은 "삼청동이나 가로수길 같은 곳은 3.3㎡당 3000만원에서 시작해 1억원대까지 상승하지 않았느냐"면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제2 가로수길을 찾으려고 참석했다"고 말했다.


    ◇20~30대 발자국 따라 뜨는 골목길 상권


    골목길 상권은 기존 부동산 상식에서만 보면 사실 어처구니없는 투자일 수도 있다. 상권의 필수 성공 요건으로 꼽히는 것이 입지인데, 골목길은 교통 여건이 썩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골목길 상권은 답답한 도심 콘크리트 문화에 질린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잦아지면서 급속도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이들은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맛집·멋집 등의 정보를 활발히 교류하고, 실핏줄 같은 골목길 끝자락에 위치한 가게라도 스마트폰 지도로 귀신같이 찾아낸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 전문위원은 "유럽 등 해외에서 느긋한 서양 문화를 경험하고 돌아온 젊은이들은 자기만의 개성을 찾을 수 있는 여유로운 삶을 선호한다"면서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고성장 시대의 패스트 문화에 식상한 젊은이들은 한적하게 식사하거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닌다"고 말했다. 공간의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젊은이들이 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골목길을 따라 들어선 가게들은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나 커피 전문점, 옷 가게, 공연장 등이 대부분이다. 다른 상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설렁탕이나 국밥 등 후다닥 먹고 빨리 자리를 떠야 하는 식당은 보이지 않았다.


    ◇골목길에서 펼쳐지는 패션 경쟁


    서교동 카페 거리에서 단독주택을 매입한 건물주들은 낡은 집을 리모델링한 뒤, 저층은 카페나 음식점으로 세를 주고, 위층은 살림집이나 원룸으로 꾸며 임대 수익을 얻고 있다. 지난해 리모델링해서 4층짜리 깔끔한 신식 건물로 탄생한 허름한 4층짜리 다가구주택은 리모델링 후 가격이 30% 뛰었다. 골목길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가게들은 색깔이 튀는 벽그림이나 예쁘고 아기자기한 정원, 독특한 인테리어 등으로 행인들 눈길을 끌었다.


    박원갑 위원은 "골목길은 아무래도 이면에 있어 눈에 잘 띄기 어렵다 보니 건물마다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꾸미기 경쟁이 뜨겁다"고 말했다. 카페 거리 초입에 있는 3층짜리 건물 앞에서 임 위원은 "한 여성 방송인이 3년 전에 산 건물인데 깨끗하게 리모델링한 이후에 10억원이 올랐다"고 말했다. 고객들은 주택 리모델링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또 규제가 까다롭지는 않은지 등을 조목조목 질문했다. 박 위원은 "리모델링 비용은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3.3㎡당 200만~400만원이 든다"면서 "주택은 가구당 1대꼴로 주차장을 확보해야 하지만 근린 생활 시설은 이보다는 규제가 느슨해 유리하다"고 말했다.


    ◇위장 임차인 등 위험은 주의해야


    이날 현장 투어에서는 주택 건물 총 12건이 소개됐다. 이 가운데 가격 경쟁력이 있는 물건이라고 소개된 것이 18억원대에 나와 있는 2층짜리 단독주택이었는데, 공시지가(㎡당 987만원)와 비교하면 4.2배 비싼 가격이라는 말에 고객들은 전부 혀를 내둘렀다. 한 고객이 "이렇게 값이 뛰었는데 앞으로 더 오르겠느냐"고 물었다.


    임 위원은 "매입 후 리모델링해서 임대하면 연 4%대 수익이 기대되는데, 상권이 더 발달한 후에 매각해 차익을 얻겠다는 전략이라면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주변 가격보다 지나치게 비싸게 나온 배짱 물건은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6년 전에 19억원에 매입한 6층 건물인데 리모델링을 해서 지금 50억에 나와 있습니다. 월 임대료가 2250만원으로 임대 수익률이 6.7%는 나온다고 말하지만 주변 시세보다 지나치게 높습니다. 이런 주택은 대체로 비싸게 팔려고 가짜 계약서를 만들어 위장 임차인을 내세웠을 가능성이 높으니 관심 갖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임 위원은 이어 "지난 1월 영화배우 손예진씨가 합정역 인근 건물을 93억원에 매입하는 등 서교동 상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가격이 단기간에 급등한 데다 임대 수익이 3~4% 정도로 높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대출을 많이 끼고 사는 것은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