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5.26 09:41
[공급과잉에 불안한 油價… "현금 확보하자"]
SK이노베이션 등 '정유 4社'… 땅·주유소 팔고 계열사 정리
신규 채용도 없애거나 줄여
국내 불황에 中 경기 하락세… 수익성·유동성 확보에 전력
국내 1위 정유업체 SK이노베이션은 인천시 항동에 있는 3만3989㎡(약 1만평) 규모의 유휴(遊休) 부지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이 땅의 감정가는 약 200억원으로 공개 입찰 방식으로 매각을 진행 중이다. 인천시 석남동에 있는 200억원대 부지 역시 팔려고 내놨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항동 부지는 본래 해외에서 들여온 원유 저장 시설이 있던 곳"이라며 "최근 회사가 재무 구조 개선을 추진하면서 저장 시설은 여유 부지가 있는 다른 공장으로 옮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유회사들이 올 1분기 실적 턴어라운드(흑자 전환)에도 불구하고 경영의 고비를 바짝 조이고 있다. 비(非)핵심 자산을 잇따라 매각하고 각종 비용 절감책을 내놓으며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 대비하고 있다. 올 1분기 유가(油價) 반등에 힘입어 흑자를 기록하긴 했지만, 지속적인 기름값 상승과 수요 확대를 낙관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정유사들, 수익성과 유동성 확보에 전력
정유사들의 비핵심 자산 정리는 전방위로 진행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경북 포항의 물류센터 부지를 40억원에 팔았고 보유 중이던 일본 정유 트레이딩 회사 타이요오일의 지분도 최근 92억원에 매각했다. 경쟁사인 GS칼텍스 역시 보유 중인 전국 400여개의 직영 주유소 가운데 100개를 팔거나 다른 용도로 개발하기로 했다. 현대오일뱅크도 직영 주유소 숫자를 계속 줄이고 있다. 작년 초만 하더라도 130여개였지만 이달 현재 110개까지 감소했다.
회사 내부의 강도 높은 비용 절감 작업도 시작됐다. 에쓰오일은 이달 들어 울산 온산 공장에 화상(畵像) 회의 설비를 기존 3개에서 6개로 늘리는 공사에 들어갔다.
김호정 에쓰오일 상무는 "출장비 절감을 위해 본사와 공장 간 화상 회의를 적극 늘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에쓰오일은 서울 마포구 공덕동 사옥 로비의 조명도 전기료가 적게 드는 LED(발광다이오드)로 교체했다.
신규 인력 채용도 꺼리는 형국이다. SK이노베이션은 작년에 이어 올 상반기에도 신입사원을 뽑지 않았고, GS칼텍스 역시 신입사원 채용 없이 인턴만 뽑고 있다. 지난해 정유 4사 가운데 유일하게 흑자를 냈던 현대오일뱅크는 상반기 대졸 신입 채용 인원을 작년 50명에서 올해 55명으로 소폭 늘리는 데 그쳤다.
◇"유가 상승세와 석유 수요 확대 확신 못해"
정유회사들의 움직임은 향후 경영 환경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최근 유가가 오르긴 했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여전히 공급 과잉이라는 진단이 우세하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박사는 "사우디 등 중동 국가들이 감산(減産)을 하지 않고 있는 데다 저금리로 인해 투자처를 잃은 돈이 미국 셰일 유전 개발로 이어지면 기름값은 언제든 다시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유사들은 유가 하락으로 인한 글로벌 원유 수요 증가에도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경기 부진으로 유가 하락을 상쇄할 정도의 급격한 원유 소비량 증가는 당분간 나타나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내 경기가 저성장 국면에 빠져들고 있는 데다 주력 수출 시장인 중국도 경기 하락세가 뚜렷해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IEA(국제에너지기구)는 올해 IMF가 발표한 세계경제 성장률(3.5%)을 감안할 때 세계 석유 수요가 작년보다 1% 늘어나는 데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충재 KT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창사 이래 첫 적자를 내며 충격에 빠졌던 정유사들이 당분간은 현금 유동성 확보와 핵심 사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