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日, 돈 풀어 경기부양... 뒷짐 진 한국만 '골병'

    입력 : 2015.06.05 09:14

    [글로벌 환율전쟁 격화… 코너에 몰린 한국]


    中, 올 기준금리 두차례 내려… 지준율 인하로 300조원 풀려
    달러대비 엔화가치 65%하락… 日, 엔低로 수출경쟁력 회복, 美는 中 견제위해 엔低 묵인
    원·엔 환율 890원대로 추락 "엔低는 우리 경제에 악몽… 韓銀 추가 금리 인하 해야"


    중국 정부가 지난 4월 말부터 1조5000억위안(한화 270조원) 규모의 담보보완대출(PSL)을 단행, 대규모 돈 풀기에 나선 것으로 4일 확인됐다. PSL은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시중은행이 보유 중인 채권을 담보로 잡고 낮은 금리의 자금을 대출해 주는 것이다. 중국은 또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가 위안화 강세를 유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해외 자원투자, 기업 인수·합병 등의 용도로 달러를 해외로 퍼내고 있다. 그 결과 올 1분기(1~3월) 중 중국은 경상수지에서는 790억달러 흑자를 냈지만, 자본·금융수지에서는 1590억달러 적자를 냈다.


    일본은 중국보다 앞서 양적완화(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시중에 돈을 푸는 것)를 단행해 엔화 가치를 공격적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일본 중앙은행의 돈 풀기 정책에 힘입어 달러당 엔화 환율은 현재 1달러당 124엔대로 3년 반 만에 65%나 치솟았다(엔화 가치 하락).


    일본과 중국이 글로벌 환율 전쟁에 가세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한·중·일 환율 전쟁에서 가장 뒤처지며 속으로 골병이 들고 있다.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최근 3년 반 사이에 3.6% 올라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뒤늦게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인 연 1.75%까지 끌어내렸지만, 중·일 양국의 막대한 돈 풀기와 금리 떨어뜨리기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환율 전쟁 앞서가는 일본과 중국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해 11월과 올해 3월, 5월 등 세 차례에 걸쳐 0.2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또 올해 2월 지급준비율을 0.5%포인트 인하한 후 2개월 만에 또다시 1%포인트를 추가 인하했다. 두 차례의 지급준비율 인하만으로도 시중에 약 300조원이 풀렸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하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인민은행은 담보보완대출(PSL)까지 단행한 것이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경기 부양을 위해 중국 당국이 지급준비율 등을 더 낮출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2013년 4월 양적완화에 돌입한 뒤 지난해 10월부터는 추가 양적완화를 단행해 자산 매입 규모를 연간 80조엔(720조원)으로 늘려서 시행 중이다. 엔저를 앞세운 일본은 지난 3월 7년 만에 최대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2조7953억엔)를 기록할 만큼 수출 경쟁력을 회복했다. 지난달 중순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연내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엔저는 가속도가 붙는 상황이다.



    이처럼 급격한 엔저는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이 일본과의 동맹을 강화하면서 엔저를 묵인하고 있는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이 미국과 아시아·태평양 방위를 분담하는 역할을 떠맡으면서, 외교력을 통해 환율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이투자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엔화의 급격한 약세에도 미국 내에서 이를 불평하는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는 이유는 미·일 간 밀월관계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한국은행 특단의 대책 필요


    환율 대응에 손을 놓고 있던 한국은행도 지난 3월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연 1.75%)로 낮추면서 환율 전쟁에 가세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엔저가 가파르게 진행되면서 힘이 빠졌다. 아베노믹스가 시작된 시점인 2012년 10월 100엔당 1430원대였던 원·엔 환율은 최근 890원대까지 추락했고, 현대자동차 등 주력 수출 대기업까지 일본 기업에 밀리게 됐다. 신성환 금융연구원 원장은 "엔저가 극심한 상황에서 수출과 국내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방법은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돈을 더 풀고, 한은은 금리 인하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엔저는 우리 경제에 악몽을 가져온다"면서 "환율을 시장에 맡겨두는 나라는 지구 상에 단 한 나라도 없다는 사실을 되새겨봐야 한다. 한은이 추가 금리 인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출보다 내수 침체에 따른 수입 감소가 더 커서 생기는 '불황형 흑자'로 올해 600억달러의 경상수지 흑자가 예상되는 만큼 달러를 국내에 쌓아놓지 않도록 해외 자본 수출을 확대해 원화 가치 상승 압력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또 아베노믹스가 '이웃나라 거지 만들기(근린궁핍화정책)'이고, 통화 전쟁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을 펴서 미국 등 국제 사회가 엔저를 일정 선에서 저지하도록 하는 '환율 외교'도 절실하다. 이와 관련,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4일 OE CD 각료이사회에서 "경제위기 과정에서 주요 선진국이 펼친 사상 유례없는 통화정책의 부작용 없는 정상화가 당면 과제이고, 신흥국이 큰 타격을 입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