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C 백기사로 잡은 삼성그룹, 또 다른 복안은

    입력 : 2015.06.11 09:35

    삼성물산 지분율


    삼성그룹이 KCC를 삼성물산의 백기사로 끌어들였다. 하지만 30%가 넘는 외국인 지분율을 감안하면 엘리엇 매니지먼트와의 표 대결에서 안정적으로 이기기 위해 우호 지분을 추가로 확보해야 유리한 상황이다. 재계와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삼성그룹이 기관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주주 친화 정책을 내놓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10일 삼성물산 (73,300원▼ 1,700 -2.27%)은 자사주 5.6%(899만577주)를 6742억원에 KCC에 매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으로 KCC는 삼성물산 주식 931만557주(5.79%)를 갖게 됐다. 그리고 삼성물산은 삼성SDI와 삼성화재,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주식 등을 모두 합해 총 19.78%의 우호 지분을 갖게 됐다.


    삼성물산의 주주인 한 국내 자산운용사의 대표는 "삼성이 엘리엇에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판단했다. 그는 "엘리엇이 법적 대응에 나서는 등 장기전에 돌입할 것으로 보이자 삼성도 협상안을 제시하지 않고 정면으로 표 대결을 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계와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이 국민연금 등 기관 투자자들에게 거버넌스 위원회 설치, 배당 성향 상향 조정 등 주주 친화 정책을 제시하며 찬성 표를 모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윤용암 삼성증권 사장은 10일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가 끝난 후 "(기관 투자자들의 목표가) 각자 다른 것 같다"며 "장기적으로 무엇이 더 나을지는 각자 현명한 판단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거버넌스 위원회(주주권익 보호 위원회) 설치


    일부 전문가들은 삼성그룹이 거버넌스위원회 설치를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거버넌스위원회는 주주들이 이사회에 직접 참여해 경영진이 독단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주주 의견을 반영하도록 감시하는 조직이다.


    지난해 현대자동차가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 입찰에 10조5500억원을 써내자 네덜란드 연기금 운용사 APG가 거버넌스위원회 설치를 요구했고 결국 회사 측이 받아들였다.


    삼성이 거버넌스위원회를 설치할 경우 주주들과의 소통을 확대하는 것에 주안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엘리엇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안을 반대하고 나선 이유도 결국 삼성물산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이사회가 경영진을 감시·견제하지 못해 삼성물산 주주들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인데, 주주 친화 정책을 통해 이런 반발을 줄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이 향후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계열사 합병이나 매각 등의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것도 거버넌스위원회 설치를 점치는 이유다. 조직 재편 때마다 외국계 투자자의 반대에 부딪힐 경우 추진력을 상실하거나, 그룹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원일 제브라투자자문 대표는 "국내외 주주들을 모두 설득하기 위해서는 이번 같은 상황이 또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삼성이 장기적인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내놓을 수 밖에 없다"라면서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안 등이 포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들은 삼성이 거버넌스위원회를 통해 계열사 합병이나 매각으로 얻는 장점이 많다는 것을 외국계 투자자에게 이해시킨다면 향후 그룹 재편 작업이 한층 더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 배당성향 확대


    또 다른 유력한 방안은 배당 성향 확대다. 합병을 반대하는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을 때 삼성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감안하면 차라리 배당 성향 확대가 훨씬 효율적인 대응이라는 것.


    한 국내 투자자문사 대표는 “삼성그룹이 배당 성향을 높이거나 매년 정기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하는 방식의 주주 친화 정책을 제시한다면 국내외 기관 투자자들이 호응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라고 전했다.


    10% 가까운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도 환영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 투자 수익률이 부진한 상황에서 국민연금은 국내 기업에 배당 확대를 요구할 수 있는 내부 지침을 신설하기도 했다.


    삼성물산의 최근 5년간 배당성향은 당기순이익이 줄면서 2010년 15.58%에서 2014년 28.03%로 늘었지만, 배당금 총액은 730억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배당성향이란 당기순이익에 대한 배당액 비율을 말한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실패할 경우 재추진이 쉽지 않다"라면서 "앞으로 진행할 모든 지배구조 개편에 제동이 걸리기 때문에 삼성 입장에서는 반드시 통과시켜야 하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삼성 측이 기존 주주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과잉 대응을 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김신 사장과 최치훈 사장이 현재 국내외 주요 기관투자자들의 명단을 파악해 개별적으로 접촉하면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 따른 이익을 설명하고 있다"며 "자세한 전략이나 행보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렵지만, 회사 자체적으로 주주와의 접점을 넓힐 방안을 준비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