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사각지대 低신용자들에 'P2P 대출' 인기

    입력 : 2015.06.23 08:51

    [한국서도 움트는 'P2P 금융']


    필요한 액수·금리 등 올린후 십시일반 대출금 투자받아
    은행 문턱 넘기 어려운 중소 상공인·직장인에 단비
    한국선 대부중개업에 국한, 美·英선 금융회사로 인정… 법적·제도적 보완책 필요


    서울 강남 논현동에 있는 도시락 배달 업체 '보통도시락'을 창업한 권은민(29)씨. 권씨는 지난 1년 동안 시중은행 여러 곳에서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창업 1년이 되지 않아 소득 증빙이 어렵고, 제2금융권 대출 800여만원이 있으며 무엇보다 담보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하는 수 없이 저축은행·대부 업체에서 연 30%대 고금리 대출을 써오던 권씨는 최근 '펀다'라는 P2P(Peer to Peer) 대출 업체의 문을 두드렸고, 연 11% 금리로 1000만원의 운영자금을 빌릴 수 있었다.


    권씨의 신용등급은 7등급으로 낮은 편이었다. 그러나 펀다가 1년간 보통도시락의 카드 단말기를 분석해보니, 매달 평균 3000여만원의 매출에 순이익률은 15%이며, 대출 연체가 없었다. 펀다가 홈페이지에 보통도시락에 대한 투자 정보를 올렸더니, 17명의 투자자가 몰려 1000만원이 금세 조달됐다. 권씨는 "그간 내내 고금리 대출을 써 이자 부담이 컸는데, P2P 대출을 받고 나서 사업이 순항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핀테크(금융과 IT를 결합한 금융 서비스)의 꽃으로 불리는 P2P 비즈니스의 싹이 움트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2~3곳에 불과했던 업체가 올 들어 10곳으로 늘었다. P2P 업체의 대출 금리는 연 7~15% 수준이다. 은행권(대출 금리 연 5~10% 수준)과 저축은행·대부 업체(연 20~30%) 사이의 중(中)금리 대출로 대출 사각지대에 놓인 저신용 대출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8분 만에 5000만원 대출 모집 마감


    지난 5월 초 서울 여의도에서 연 수제맥주집 '한국 맥주거래소'. 이 가게 역시 사례로 등장한 보통도시락처럼 은행 대출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는데, 4월 말 P2P 업체 '8퍼센트' 홈페이지에 투자 정보를 올린 지 8분 만에 5000만원을 투자받았다. 8퍼센트 이효진 대표는 "여의도에 처음으로 들어서는 수제맥주 가게인 데다, 퇴근한 증권사 직원을 공략한 메뉴 콘셉트, 가게에 부채가 전혀 없다는 점이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었다"고 설명했다. 수제맥주집 관계자는 "P2P 자금을 받고 창업 한 달간 매출이 5000만원 발생, 순이익률이 20%에 달하고 있다"며 "P2P대출이 아니었으면 창업이 3~4개월늦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액 연체해 신용등급 떨어진 멀쩡한 직장인 대출자 많아


    P2P 업체들은 금융권 출신의 대출심사역 등을 채용해 나름 엄격한 잣대로 대출자들을 선별하고 있다. 엄격한 잣대가 적용돼, 실제 대출을 받기는 쉽지 않다. 대개 100명이 대출을 신청하면 실제 승인되는 대출자는 10~20명에 불과하다. P2P 대출 업체들은 은행들처럼 나이스·KCB 등 일반 신용평가회사로부터 대출자에 대한 소득·신용정보 등을 1차적으로 받아 투자자들에게 제공한다. 또 자체 신용평가 기술을 활용해 가맹점 매출 분석에 따른 미래 추이, 대출자의 카드 소진율 등에 따른 상환 여력도 분석한다. 렌딧의 김성준 대표는 "카드 소진율 등 종합적 재무 정보를 수집해 대출자의 상환 여력을 1~40등급으로 세분화해 평가하고 있다"며 "대출 신청자들을 보면 저축은행이나 대부 업체에서 소액을 연체해서 신용등급이 2~3등급씩 떨어진 멀쩡한 직장인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대부업에 국한한 P2P 대출, 정식으로 허용해야


    대출 자금을 대주는 고객들의 1인당 평균 투자금은 40만~50만원에서 최대 200만원 정도. 소문이 퍼지면서 투자 건당 수십명, 많게는 100명 이상씩 몰린다. 학원강사 이연진(30)씨는 "300만원을 연 8% 금리로 투자했다"며 "은행 이자율보다 훨씬 높고 대출자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알 수 있어 믿고 투자할 수 있다"고 말했다.


    P2P 대출 업체들은 투자 과열을 막기 위해 전체 대출자가 원하는 대출금의 10~20% 선으로 투자 금액을 제한하며, 대출 금리는 대출자와 협의를 거쳐 조정한다. 통상 대출 기간은 1년, 원리금 분할 상환 방식으로 대출금을 회수한다. 대부분 P2P 대출 업체의 연체율은 아직 0%대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P2P 비즈니스가 좀 더 활성화되려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금융 당국에서는 P2P 대출 업체들을 '대부중개업'으로 등록하도록 함으로써, '대부 업자'처럼 비치게 한다. 반면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은 P2P 대출에 관한 법안을 따로 마련해, 제도권 금융회사로 인정하면서 영업도 자유롭게 하도록 하고 있다.


    이영환 건국대 IT금융학과 교수는 "대부업으로만 선을 긋지 말고 명확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제도권 금융회사로 클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P2P 대출이란


    P2P(Peer to Peer) 대출은 개인이나 소상공인이 인터넷·모바일 P2P 대출 플랫폼에 필요한 대출 액수·금리·대출 기간을 고지한 뒤, 다수 투자자로부터 십시일반 대출금을 투자받아 자금을 조달하는 신개념 금융업을 뜻한다. 대출의 거치 기간 없이 정해진 기간 안에 원리금 상환 방식으로 운영해 부실률을 최소화하며, 주로 은행권에서 대출을 거절당한 대출자들이 이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