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칩칩칩칩... 식품업계 '도 넘은 베끼기'

    입력 : 2015.06.24 09:55

    롯데·농심·오리온 등 허니버터칩 짝퉁 20種 내놔


    한식 뷔페 원조 '풀잎채'… CJ·신세계·이랜드가 베껴
    그릭요거트·과일주도 비슷 "불황에 모험않고 모방나서"


    올해 4월 국내 스낵 시장 판매 상위권은 '허니 짝퉁' 제품이 휩쓸었다. 1983년 출시된 장수 브랜드 롯데제과의 '꼬깔콘'은 32년 만에 월간 1위에 올랐는데 해태제과의 '허니버터칩'을 베껴 올 2월 내놓은 '꼬깔콘 허니버터맛'이 큰 인기를 얻은 덕분이었다. 신제품 '허니밀크'가 바람을 일으킨 오리온의 '오감자'는 4위, '허니머스타드맛'이 인기를 모은 농심의 '수미칩'은 5위에 올랐다. 정작 '허니' 바람의 주인공인 해태 '허니버터칩'은 이들 '미투(me too·따라 하기)' 제품에 밀리면서 7위에 그쳤다. 연 매출이 2조원을 웃도는 '형님'들이 지난해 매출 6900억원에 그친 해태제과를 짝퉁 물량 공세로 눌러버린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 '허니버터칩'이 히트 제품에 오른 후 '허니'나 '꿀' 등 달콤한 맛을 내세워 출시된 제품은 '치토스 허니치즈맛' 등 10종이 넘는다.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의 PB(자체상표) 상품까지 더하면 20여 종에 이를 정도다.


    ◇度 넘은 '대놓고 따라 하기'


    국내 식품·외식업계의 인기작 따라 하기가 도(度)를 넘고 있다. 과거에도 일본 등 외국에서 히트한 제품을 베끼거나 초코파이와 같은 빅히트 제품을 그대로 본떠 만든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이제는 대놓고 모방에 나서고 있다.



    최근 들어 대기업들이 앞다퉈 뛰어드는 프리미엄 한식 뷔페가 대표적이다. 사실 이 분야의 '원조'는 2013년 1월 경남 창원의 한 백화점에서 문을 연 '풀잎채'로, 당시 한식 뷔페로서는 획기적으로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산지 제철 먹거리, 즉석요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풀잎채의 하루 매출이 1000만원에 이를 정도로 성공을 거두자 CJ푸드빌·이랜드파크·신세계푸드 등 대기업 계열사들이 뛰어들었다. 풀잎채 관계자는 "많은 대기업 사람들이 와서 우리 매장을 벤치마킹해 갔다"고 전했다.


    지난해 국내 시장이 200억원을 기록하며 1년 만에 4배 이상 성장한 그릭요거트 시장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난다. 일동후디스가 2012년 7월 국내에 처음으로 이 제품을 출시하자 1년여 뒤부터 롯데푸드·풀무원다논·빙그레 등 대기업과 외국계 합작사가 시장에 뛰어들었다. 박경배 일동후디스 부장은 "일부 제품은 정통 제조 방법을 따르지 않았지만, 슬그머니 '그릭요거트 스타일'이란 이름을 붙이면서 인기에 편승한 곳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젊은 층과 여성을 중심으로 인기를 끄는 과일 칵테일 소주도 논란거리다. 올 3월 출시된 롯데주류의 '처음처럼 순하리'가 국내 칵테일 소주 시장의 첫 제품이지만 지난해부터 일본에 수출을 하고 있던 무학의 '좋은데이 컬러시리즈'도 지난 5월부터 국내 시장에도 제품을 팔기 시작했다. 그러자 소주업계 1위인 하이트진로도 이달 들어 '자몽에이슬'을 내놓았다. 이 밖에 롯데마트의 '오징어 통마리 튀김'은 중소 납품업체 제품을 베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CJ제일제당의 '컵밥'도 노량진 고시촌의 명물을 상품화한 미투 제품으로 꼽힌다.


    ◇"안정적으로 쉽게 돈 벌려는 버릇"


    미투, 짝퉁 제품이 쏟아지는 것은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기업들이 위험 부담이 큰 신제품보다는 성공 사례를 보고 따라 하는 '안전한 선택'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제품을 베낀 곳이 대부분 크고 힘있는 회사들이다 보니 아이디어를 뺏긴 업체 입장에선 나중 일을 생각해 강력하게 대응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며 "원조 회사도 다른 제품을 베끼면서 서로 간에 베끼기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게 되는 경우도 많아 업계에서 자정(自淨) 작용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연승 단국대 교수(경영학)는 "큰 기업들이 새 아이디어를 내놓으면서 시장 파이를 키우고 해외 수출 등에 힘써야 하는데 지금 대기업들은 너무 안정적으로 쉽게 돈 벌려는 버릇에 젖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