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잠 사세요~ 1兆원대 숙면시장 뜬다

    입력 : 2015.06.25 09:12

    [침구업체에 병원·패션업계도 '기능성 침구' 戰爭]


    자생바이오·템퍼·LF 등 항균·교정 등 첨단기능에
    고급소재 제품 잇단 출시, 알레르망 매출 100% 늘어
    美 수면시장 20兆원 달해 '슬리포노믹스' 신조어 등장


    피로와 스트레스에 지친 사람들은 잠이라도 깊고 편안하게 자기를 원한다. 현대인들의 이 같은 욕구를 겨냥한 이른바 '숙면(熟眠)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진드기가 생기지 않는 이불, 수면 자세를 똑바로 교정해주는 베개, 유아 전용 침구처럼 숙면을 도와주는 이불과 베개, 매트리스 등 기능성 침구류 시장이다. 시장조사 전문업체 '야노경제연구소' 서울지점에 따르면 한국의 기능성 침구 시장은 2011년 4800억원에서 지난해 6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이를 포함한 전체 수면 관련 제품 시장은 연 1조~1조5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커지는 수면 시장


    병원, 섬유업체 등도 수면 관련 신제품을 내놓고 속속 시장에 뛰어드는 추세다.


    척추 전문 병원으로 유명한 자생한방병원의 자회사 자생바이오는 지난 4월 '자생추나베개'를 출시했다. 비뚤어진 목뼈나 등 척추를 바로잡는 치료법인 '추나요법'을 베개에 접목해 목이 꺾이거나 어깨가 눌리지 않도록 한 제품이다. 산업용 섬유 전문업체 웰크론도 최근 유아동 침구 브랜드 '세사키즈' 매장을 열며 침구 사업을 본격화했다. 웰크론 이영규 회장은 "수면 산업은 침구뿐 아니라 아로마 향과 조명, 소리, 온도, 습도 등을 총망라한다"며 "앞으로 노인 전용 침구 상품도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이브자리의 침구 전문 매장 '슬립앤슬립'에서 소비자가 편안한 잠을 자도록 도와주는 기능성 이불과 베개를 고르고 있다. 숙면을 원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침구 등 관련 업체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베개·매트리스 업체인 미국 템퍼는 지난 2일 똑바로 잘 때와 옆으로 잘 때 등 자세별로 편안한 수면을 돕는 기능성 베개 제품을 국내 시장에 선보였다. 이에 맞서 국내 1위 침구업체 이브자리는 고객이 이불 속과 베개 등을 체험해보고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침구 전문 매장 '슬립앤슬립'을 현재 50개에서 연말까지 100개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브자리와 웰크론 등 17개 기업은 올 3월 '수면산업협회' 창립총회를 열고 편안한 수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장은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덕아이앤씨의 집먼지 진드기 차단용 침구 제품 '알레르망'은 지난해 매출이 100% 신장하며 800억원을 달성했다. 1999년 머리와 목을 편안하게 감싸주는 메모리폼(특수 처리 스펀지) 베개를 상용화한 까르마는 베개 하나로 1000만달러 수출탑까지 받았다. 황병일 대표가 한때 사업이 망해 잠을 못 이룬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했다는 이 제품은 현재 세계 20개국 이상에 수출하고 있다. 홈쇼핑업체 GS샵은 침구류 먼지를 차단하는 '바이알러' 제품을 방송할 때마다 평균 3억원 이상이 팔린다고 밝혔다.


    ◇한국인 수면 시간은 최하위권


    이처럼 수면 관련 시장이 커지는 이유는 한국인 삶이 그만큼 고달프기 때문이기도 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불면증 환자는 2008년 25만여명에서 2012년 42만여명으로 65% 급증했다. 지난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인용해 "한국인의 수면 시간은 하루 평균 7시간 49분으로 18개 조사 국가 가운데 꼴찌"라고 보도했다.


    수면 시간이 짧은 이유로는 긴 근무 시간이 지적됐다. 한국의 1인당 연간 근로 시간은 2163시간으로 지난해 OECD 34개국 가운데 멕시코(2237시간)를 제외하고 가장 길다. 여준상 동국대 교수(경영학)는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사람들이 늘 긴장하며 스트레스를 받아 피로를 풀어주는 산업이 발전하고 있다"고 했다.


    더 편안하고 부드러운 소재를 내세운 판매 경쟁도 치열하다. 패션업체 LF는 올 3월부터 프랑스 침구 브랜드 '잘라' 제품을 국내에 들여와 판매 중이다. 이 제품은 고리 모양의 보풀이 있는 직물에 여러 니트 실을 섞어 짜서 부드러운 감촉이 특징이다. 영국 친환경 침구업체 포가티는 지난 12일 거위, 오리, 양털 등으로 만들어진 침구류를 국내에 출시했다. CJ오쇼핑이 선보인 이탈리아 '벨로라'는 마직류인 린넨을, GS샵이 수입하는 핀란드 '스칸노'는 너도밤나무에서 추출한 '모달' 소재를 사용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국내 수면 관련 제품 시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간 20조원, 일본은 6조원에 이른다. 수면과 경제의 합성어인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수면경제)'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수석연구위원은 "국민소득이 3만달러 이상으로 올라가면 삶의 질을 돌아보고 양질의 수면을 통해 정신 건강을 높이려는 이들이 늘어난다"며 "특히 도시 생활로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들이 편안한 수면을 돕는 제품을 많이 구매해 시장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