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6.29 11:03
-
- ▲ 동아은행(東亞銀行·Bank of East Asia)은 홍콩 대표 상업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오너 경영'이 이뤄지는 곳이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지난 2월 동아은행이 지난해 9월 실시한 유상증자가 주주 가치를 침해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블룸버그
삼성물산 (67,700원▲ 1,400 2.11%)과 제일모직 (175,000원▲ 1,500 0.86%)의 합병을 반대하며 삼성그룹과 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엘리엇)이 홍콩 동아은행(東亞銀行·Bank of East Asia)를 상대로 소수주주 보호 명분의 소송을 제기하면서, 다른 한편에선 해당 은행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천명한 기업의 동맹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향후 삼성과의 분쟁에서도 단시일 내의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일반 행동주의 펀드보다 더 많은 요구를 할 수 있다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온다.
조선비즈는 지난 2월 엘리엇이 동아은행을 상대로 홍콩 고등재판소에 제기한 기업 내부 문서 열람 신청 소송에 대해 5일 내려진 판결문을 입수했다.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리고, 엘리엇이 열람을 원하는 문서가 어떤 것들인지 상세한 내역을 작성해 동아은행 측과 협의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엘리엇 5개 펀드로 나눠 지분 취득
엘리엇은 지난해 9월 동아은행 경영진이 일본 스미토모미쓰이파이낸셜그룹(SMFG)을 상대로 뚜렷한 이유 없이 대규모 유상증자에 나서 기존 주식 가치가 희석됐다며 문제로 삼았다.
동아은행은 홍콩 대형 상업은행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오너 경영'이 이뤄지고 있지만 리궈보우(李國寶) 회장 등 오너 일가 지분은 지난해 9월 말 현재 8.7%에 불과했다. 나머지 지분은 스페인 은행 카시아(18.0%), 일본 스미토모(9.5%)가 각각 보유했다. 오너 일가는 지난 2008~2009년 두 은행과 각각 전략적제휴를 맺고 유상증자 방식으로 주요 주주로 영입했다. 외국 은행을 '백기사'로 끌어들였던 셈이다.
지난해 9월 유상증자의 경우 스미토모 지분을 9.5%에서 17.4%로 끌어올리고자하는 것이었다. 오너 일가 및 우호 지분은 36.3%에서 42.9%로 껑충 뛰게 된다. 하지만 다른 주주들의 지분율은 5.5% 가량 줄었다.
엘리엇은 홍콩지사의 자회사로 되어있는 5개 펀드 명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총 2.5%(9월말 현재)의 지분을 보유했다. 하지만 이들 펀드들은 모두 엘리엇과 관계를 암시하는 고유명사를 사명에 붙이지 않았다.
◆적대적 M&A 시도 기업 2대 주주
문제는 동아은행 상대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선언한 말레이시아 대기업 지분 9%를 엘리엇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엘리엇은 홍콩 증시에 상장된 궈코그룹 주식 9%를 보유한 2대 주주다. 최대주주는 지분 73%를 보유한 궈렁찬 회장 소유의 말레이시아 기업 홍렁그룹. 엘리엇의 궈커그룹 지분 가치는 28억홍콩달러(4100억원)으로 동아은행 지분 가치 18억홍콩달러(2600억원)보다 많다.
말레이시아의 화교계 대기업인 궈코그룹(國浩集團)은 지난 2009년 6월 동아은행 지분 6%를 인수한 뒤, 계속 지분을 늘린 이후 몇 차례 동아은행 인수를 시도했다. 궈코그룹이 지분은 지난해 9월 현재 15.0%로 카시아에 이은 2대 주주다. 궈코그룹은 말레이시아 대표 기업 가운데 하나로 화교인 궈렁찬(郭令燦)이 세운 말레이시아 대표 대기업으로, 홍콩 금융시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때문에 엘리엇이 제기한 소송이 궈코그룹의 M&A 시도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동아은행 지분 구조에서 엘리엇이 2.5% 정도 지분으로 대주주와 협상력을 가질 여지는 거의 없다"며 "자사 지분보다 궈코그룹 등 우호세력 지분이 희석되는 걸 막으려는 포석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후 다른 세력이 동아은행을 상대로 적대적 M&A에 나서기 쉽게 판을 짜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재계와 금융투자업계 일각에서는 이 같은 엘리엇의 행태를 거론하면서 다른 행동주의 펀드와 다르다고 지적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1~2년 내 철수를 생각하고 주가를 띄우는 데 좋은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여타 행동주의 펀드와 달리 엘리엇은 아예 경영권 자체를 뺏어오는 시나리오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행동주의 펀드가 경영권 공격을 하는 기업을 돕는 '흑기사' 역할을 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이 때문에 엘리엇이 지금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175,000원▲ 1,500 0.86%)의 합병을 주주 이익을 내세워 반대하는 데 그치지만, 이후 삼성그룹 지배구조와 관련된 더 큰 요구를 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