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해진 '잡스'의 추억... 이제 나의 시대가 왔노라

    입력 : 2015.07.10 09:08

    팀 쿡 색깔 강해지는 애플


    애플이 부드러워지고 있다. 창업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의 뒤를 이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팀 쿡(Cook)의 경영 스타일이 정착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애플은 잡스가 강력한 카리스마로 이끌어온 회사였다. 잡스와 애플 마니아들의 관계는 흔히 교주(敎主)와 광신도들에 비유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애플은 잡스의 신비주의를 걷어내고, 사회와 적극 교감하며 보다 유연한 회사로 거듭나고 있다.


    쿡은 IBM·컴팩을 거쳐 1998년 애플에 입사했다. 잡스 사망 6주 전인 2011년 10월 애플 최고운영책임자(COO)에서 CEO로 취임했다. 당시엔 반신반의하는 시각도 많았다. 영업·조직관리 전문가인 쿡이 '변덕쟁이 천재' 잡스를 보좌하는 데는 적격일지 몰라도 잡스 같은 안목과 결단력으로 회사를 이끌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쿡은 이런 우려를 불식하고 애플의 새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애플 개발자회의(WWDC)의 기조연설 무대에 올랐다. 쿡 CEO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외유내강(外柔內剛)형 리더십으로 애플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 블룸버그


    ◇사회와 적극 소통…유연해진 애플


    인류의 보편적 가치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던 잡스와 달리 쿡 CEO는 사회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 경제전문지 포천은 쿡 CEO가 이를 통해 애플이라는 회사에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지난달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同性) 결혼 합헌 결정을 내리자 쿡 CEO는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은 평등, 인내, 사랑이 승리한 날로 기억될 것"이라고 썼다. 지난해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공개한 데 이어 '애플은 소수자도 존중하는 열린 회사'라는 이미지를 준 것이다. 전에는 잡스라는 인물 개인에 시선이 집중됐지만 이제는 애플이 주목을 받는다.


    쿡 CEO는 "인종, 성별, 국적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편안한 근무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 결국 기업 경영에도 도움이 된다는 요지였다. 지난달 개발자회의(WWDC)에서는 여성 임원 2명을 기조연설 무대에 올렸다. 언론과 팬들은 "남성 연사 일색이었던 이 무대에서 기조연설의 상당 부분을 여성에게 맡긴 점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쿡 CEO는 제품 개발에서도 잡스보다 훨씬 유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잡스는 생전 "소비자들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 잘 모른다"는 말을 자주 했다. 기업이 소비자를 따라갈 게 아니라 혁신적 제품을 먼저 제시해 소비자가 그것을 갈망하게 해야 한다는 발상이었다.


    하지만 쿡 CEO는 다르다. 그는 최근 "제품 디자인에 중국 소비자들의 취향을 반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신의 시각을 고집하지 않고 전략 시장의 특성을 면밀하게 파악하는 자세로 돌아선 것이다. 덕분에 애플은 안방인 미국보다 중국·대만 등 중화권에서 아이폰을 더 많이 팔고 있다.


    ◇팀 쿡 체제 강화…장기집권 모드로


    쿡 CEO가 마냥 부드러운 모습만 보인 것은 아니다. 내부 인사문제 등에 있어서는 강단(剛斷)을 보여주기도 했다. 2012년 스콧 포스톨(Forstall) 수석부사장을 해고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포스톨은 애플의 모바일 운영체제 'iOS'를 개발한 인물이다. 잡스처럼 부하 직원들을 가혹하게 다그치는 스타일로, 잡스의 뒤를 이을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쿡 CEO는 '리틀 잡스'로 통하던 그를 해고한 배경에 대해 "혁신의 핵심은 협업(collaboration)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잡스의 경영 철학을 존중하되 맹신하지는 않겠다는 쿡의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잡스의 최측근이었던 조너선 아이브(Ive)가 지난 1일자로 수석부사장에서 애플의 최고디자인책임자(CDO)로 승진한 것도 쿡 CEO 중심 체제가 굳어지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아이브 휘하에서 소프트웨어·제품 디자인을 해왔던 부사장 2명이 아이브가 아닌 쿡 CEO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조직이 개편됐기 때문이다. 즉, 아이브가 외형상으로는 승진했지만 실제로는 권한이 축소됐다는 관측이다.


    쿡 CEO는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일상적인 관리 업무 부담을 덜어줘 아이브가 디자인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애플에서 조너선 아이브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일 수도 있다"고 전했다. 사상 최고 실적을 올리고 있는 팀 쿡의 장기집권 체제가 강화될 것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