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7.13 09:15
["대출금리 이상 돈 벌 자신있다"… 주식·채권 담보대출 10兆 '훌쩍']
상하한가 확대… 證市 투자 열기 - 주식보유액의 400%까지 대출
스톡론 사상 첫 2조원 돌파, 깡통계좌 속출 2007년과 흡사
주택담보대출 올 들어 18조 증가 - 오피스텔 등 수익형 부동산 구입
주택담보대출 2명 중 1명은 사업자금·투자에 대출금 사용
"마이너스통장 쓰세요. 2.6%로 1억5000만원까지 가능합니다."
대기업 계열사인 A사에 다니는 이모(43)씨는 지난주 출근길 지하철역 앞에 늘어선 한 시중은행 직원들로부터 이런 권유와 함께 전단을 받았다. A사 재직증명서와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만 제출하면 통장에 억대의 돈을 입금시켜 준다고 했다. 이씨는 "요즘 상하한가 제한이 풀려서 주식 하나 잘 고르면 하루에도 30% 넘게 벌 수 있다던데, 은행 이자가 이렇게 싸니 주변에서 돈을 빌려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전례 없는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값싼 대출을 활용해 재테크를 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상가·오피스텔 등 월세를 받을 수 있는 부동산을 구입하거나 주식에 투자하려고 빚을 내는 중이다. 주식·채권 등을 담보로 하는 대출 잔액이 지난달 10조5500억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로 늘어난 것이 단적인 예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저금리로 이자 부담이 줄었다고 빚을 내서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위험하다"면서 "향후 미국이 금리를 올리게 되면 국내 금리도 오를 가능성이 높고, 주가의 하락 장세가 시작되면 이중고를 겪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오피스텔 등 월세 받는 부동산 활황세
작년 8월부터 계속 금리가 낮아지는 추세라 과감하게 빚테크에 나섰던 사람들은 꽤 재미를 봤다. 충북 청주에 사는 전모(40)씨는 작년 9월 변동금리(3.2%)를 적용받아 9000만원을 빌렸다. 전씨는 평소 모아둔 돈과 중간정산 퇴직금을 합쳐서 서울 마포구에 있는 소형 아파트(46.28㎡)를 2억7000만원에 구입했다. 이후 그는 아파트 세입자한테 보증금 7000만원에 월세 70만원을 받고 있는데, 그새 금리가 더 떨어져 은행 이자를 내고도 매달 40만원가량 흑자(黑字)를 보고 있다. 전씨는 "아파트 가격은 올랐고, 반면 대출 금리는 내렸으니 적절한 시기에 투자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빚테크가 늘어나면서 주택담보대출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이 올 들어 5월까지 18조8000억원 늘어나 기록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 매매가 늘어나는 것이 기본적인 이유지만,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 2명 가운데 1명은 대출금으로 사업 자금이나 투자 등에 충당하고 있다고 금감원은 보고 있다. 은행감독국 박상원 팀장은 "지난달부터 기준금리가 역사상 최저인 1.5%로 내려가면서 대출이 급증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빚더미 지고 증시로 뛰어드는 개미들
주식시장에서도 초저금리에 자극받은 개인들이 주식을 사기 위해 일정 기간 빌리는 신용융자 규모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직장인 김모(35)씨는 보유한 주식을 담보로 최근 증권사에서 2000만원을 빌렸다. 김씨가 담보로 맡긴 주식은 대형주 2종목과 중소형주 1종목의 주식 5000만원어치다. 3개월 만기에 연 금리 7.5% 조건이다. 김씨는 빌린 돈으로 보유 주식을 추가로 사들였다. 그는 "요즘 상승장이 이어지고 있어 내가 가진 주식이 오를 것이라고 믿고 빚을 냈다"고 말했다.
저축은행이나 캐피털사 등에서 취급하는 스톡론(stock loan·연계신용거래)도 무섭게 불어나고 있다. 지난 4월 스톡론 잔액은 사상 처음 2조원을 돌파했다. 작년 초(1조3552억원)와 비교해 50% 이상 늘었다.
스톡론은 주식 보유 금액의 최대 300~400%까지 돈을 빌릴 수 있어 공격적인 성향의 투자자들이 선호한다.
이처럼 대출한 자금으로 주식 투자를 하면, 주가가 오를 땐 대박이지만, 하락할 경우 빚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 증권사에서 반대 매매에 들어가 깡통 계좌로 전락하게 된다. 최근 상하이 증시도 빚을 내서 투자했던 개미들의 보유 물량이 정부 규제 때문에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면서 크게 출렁거렸다.
김겸수 우리은행 팀장은 “6개월 만에 신용융자잔고가 2조원 넘게 급증했다가 깡통 계좌가 속출했던 2007년 코스닥과 지금 증시의 모습이 닮았다”면서 “대출 이자가 싸다고 빚테크가 만연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손상호 금융연구원 박사도 “전 세계적으로 주가가 이미 많이 오른 상태라 추가 상승보다는 하락 우려가 더 크다”면서 “중국 증시 거품 붕괴,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미국의 금리 인상 등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졌다. 빚테크는 예상하지 못한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