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7.23 09:49
[백화점 "메르스로 망친 매출 만회"… 최대 90% '떨이' 나서]
롯데百, 킨텍스서 '블랙슈퍼쇼', 축구장 2개 면적서 '출장세일'
현대·신세계百 해외명품 할인, 대형마트·아웃렛도 할인 동참
"재고 많아 납품업체 부도 직전… 싸게 파는 게 손해 줄이는 것"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의 직격탄을 맞은 백화점 업계가 일명 '땡처리'로 불리는 대규모 할인 행사를 앞다퉈 연다. 올 초부터 5월까지 회복 기미를 보이던 내수 경기(景氣)가 지난달 메르스 사태로 다시 꺾어진 데 대한 '응급 처방'인 것이다.
롯데백화점은 올 4월에 이어 3개월 만에 다시 '초대형 출장 세일'을 벌인다.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도 해외 명품을 파격 할인가에 내놓는다. 예년에는 여름이 막바지로 접어든 8월 중순 이후 열었던 '시즌 오프(season off)' 행사를 한여름으로 2주가량 앞당긴 것이다. 쌓여 있는 여름 상품 재고(在庫) 처리를 위해 할인율도 최고 90%로 높이고 행사 규모도 작년의 두 배 이상으로 확대했다. 백화점 할인 행사에 들어오지 않던 '지방시' '끌로에' 등 명품도 참여한다. 프리미엄아웃렛과 대형마트도 비슷한 이유로 재고 처리 행사에 나서, 휴가철에 없던 '할인 쇼핑 대전(大戰)'이 벌어지고 있다.
◇롯데百, 킨텍스 축구장 2개 넓이 매장에서 출장 세일
롯데백화점은 22일 "경기 일산 킨텍스 2전시장에서 이달 23일부터 26일까지 '블랙슈퍼쇼'를 열어 누적 재고 물량을 대폭 할인 판매한다"고 밝혔다. 올 4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세텍(SETEC)에서 업계 최초로 이른바 '출장 세일'을 벌여 성공한 여세를 몰아 다시 비슷한 행사를 마련한 것이다. 특히 매장 규모는 4월 행사의 네 배인 1만3000㎡에 달한다. 축구장(약 7000㎡) 2개 넓이로 롯데아울렛 서울역점(1만1000㎡)보다 넓다. 320여개 업체의 200억원어치 상품이 준비됐다. 의류와 잡화, 전자제품과 가구는 물론 디저트 매장까지 들어서며 미니 콘서트도 연다.
롯데백화점은 이 행사가 끝난 직후인 29일부터는 서울 소공동 본점을 시작으로 잠실과 부산, 대구점에서 250여개 브랜드가 참여하는 해외 명품 대전을 진행한다. 이완신 롯데백화점 마케팅부문장은 "작년보다 2주일 정도 일정을 앞당겼다"며 "일부 상품은 90%까지 할인한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도 30일부터 다음 달 16일까지 서울 무역센터점과 압구정본점, 부산점에서 '해외 패션 대전'을 연다. 상품 규모가 작년의 두 배인 800억원으로 지금까지 현대백화점이 진행한 명품 할인 행사 가운데 가장 크다. 유태영 현대백화점 상무는 "규모를 확대하기 위해 가장 큰 행사장, 문화홀, 층별 행사장을 모두 활용하고 기간도 늘렸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서울 충무로 본점과 강남점, 부산 센텀시티점 등에서 23일부터 8월 16일까지 최대 80%까지 싼 가격에 명품을 내놓는다. 김영섭 신세계백화점 해외잡화 담당 상무는 "이번 할인 행사엔 '폴스미스' '로에베' 등 많은 명품이 처음 참여한다"며 "기존 브랜드도 할인율을 작년보다 10~30%포인트 높였다"고 말했다.
◇"內需 살리고 名品 소비 수요 흡수"
대형 백화점 3사가 일제히 떨이에 나서는 것은 메르스의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의 지난달 매출은 작년보다 4.5% 감소(기존 점포 기준)했다. 유주연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위원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에 이어 올해 메르스까지 겹치면서 2년치 재고가 쌓인 납품업체들은 사실상 부도 직전 상황"이라며 "싸게라도 빨리 파는 게 손해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7월 말~8월 초에 몰린 여름휴가 피크 시즌에 맞춰 해외로 향하는 명품 구매 수요를 흡수하려는 목적도 있다. 이원준 롯데백화점 대표는 "협력업체가 안은 재고를 처리하고 해외 소비 수요를 국내로 돌려 내수(內需)를 활성화하는 게 이번 행사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장재영 신세계 대표는 "명품 행사는 고객 1인당 구매액이 큰 만큼 실적 개선에 확실한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장기화한 불황 여파로 백화점 세일의 구조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영태 현대백화점 사장은 "작년까진 이맘때 벌인 할인 행사에서는 6개월 이상 지난 가을·겨울 상품의 비중이 70%가 넘었지만 이번엔 올해 봄·여름 상품 비중이 절반에 이른다"고 말했다. 백화점과 아웃렛이 세일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도 드문 일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백화점이 '땡처리' 업체의 방법을 쓴다거나 해당 시즌 상품을 싸게 파는 것은 과거 업계 관행과 결별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며 "불경기(不景氣)가 더 길어지면 백화점, 대형마트, 아웃렛의 경계선이 더 모호해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