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산업 매각... 朴 vs 朴, 4000억 줄다리기

    입력 : 2015.08.05 10:11

    [금융권 '뜨거운 감자' 금호산업 매각 어떻게 되나]


    -미래에셋 등 채권단 1조 넘는 매각가
    경영권 프리미엄 90% 붙여
    금호측 희망가격에 매각하면, 미래에셋 "1900억원 손실 본다"


    -금호그룹 측은 5900억원 제시
    경영권 프리미엄 10%가 적당
    박삼구 "돈 없는 것 알지 않느냐… 다수가 인정할 수 있는 금액이어야"


    작년 말 워크아웃을 졸업한 금호산업 매각이 올여름 금융권의 '뜨거운 감자'다. 이 협상 테이블의 한편에는 좀 더 싼값에 금호산업을 되찾아오려는 호남의 대표적 기업인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이, 한 푼이라도 더 비싸게 팔려는 반대편 채권단 측에는 고향 후배인 금융인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버티고 있어 초미의 관심을 모은다. 현재 박삼구 회장과 매각 협상을 벌이는 금호산업 채권단에는 산업은행을 비롯해 55개 금융회사가 포진해 있는데, 이 가운데 최대 의결권을 가진 금호산업의 1대 주주가 바로 미래에셋자산운용(지분율 8.55%)이다.


    문제는 역시 매각 가격이다. 채권단이 지난 5월부터 두 달간 회계법인을 통해 실시한 실사(實査)에서 금호산업의 주당 가치가 3만1000원(총 5369억원)으로 나왔고,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어느 정도 얹어서 사고파느냐가 관건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채권단은 프리미엄을 무려 90% 붙여 1조213억원이라는 매각 가격을 박삼구 회장 측에 제시했다. 예상을 훨씬 웃도는 1조원 넘는 가격표를 받아들고, 박삼구 회장은 펄쩍 뛰고 있다. "경영권 프리미엄은 10%가 적당하다"며 5900억원에 팔라는 입장이다. 박삼구 회장은 4일 본지 기자와 만나 "금호산업 매각 가격은 대다수가 인정할 수 있는 적정한 금액이어야 한다. 내가 돈이 (별로) 없는 것을 잘 알지 않느냐"고 했다.



    하지만 금호산업 매각은 박삼구 회장과 채권단의 일대일 협상인 것만은 아니다. 채권단 내에서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데다, 그 뒤에는 "헐값 매각 시비가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금융 당국이 서슬 퍼렇게 서 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채권단에 끼어 있는데 헐값 매각이라는 말이 나오면, 다음 정권에서 무조건 검찰 수사를 각오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채권단 중에 제일 강경한 미래에셋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채권단 중에서 금호산업 지분율(8.55%)이 제일 높다. 2006년 금호산업이 대우건설을 6조4000억원에 인수할 당시 여러 투자자의 돈을 끌어모아 투자했는데, 당시 미래에셋 측도 6100억원을 투자했다. 박삼구 회장과 박현주 회장이 광주제일고 선후배라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금호산업은 '만약 3년 후인 2009년 말 대우건설 주가가 3만2576원을 넘지 않으면, 투자자금에 연 9%(복리) 이자를 붙여 되사주겠다'고 약속했다(풋백옵션). 대우건설 주가가 폭락하면서 미래에셋은 이자까지 합쳐 7300억원을 돌려받아야 했지만, 금호그룹이 경영 위기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에 미래에셋 측은 7300억원 가운데 4600억원만 돌려받고, 나머지 2700억원은 주당 11만원에 금호산업 주식으로 대신 받았다. 그래서 미래에셋 측이 금호산업의 최대 주주가 된 것이다. 현재 미래에셋 측은 "만약 박삼구 회장이 주장하는 대로 5900억원에 금호산업을 매각하면, 투자금 2700억원 가운데 1900억원을 날리게 된다"면서 1조원 넘는 매각 가격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반면 금호그룹 측은 5900억원(주당 3만4000원)도 낮은 가격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4일 현재 금호산업 주가는 1만7450원. 지난 1년간 최고 주가(3만3700원)보다도 높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에 대해 채권단 관계자는 "박삼구 회장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10%만 주겠다는 얘기인데, 지난 5년간 20여개 기업의 인수·합병에서 경영권 프리미엄 평균은 50% 정도였다"고 말했다.


    ◇연내 매각 힘들 수도


    4일에도 채권단과 박삼구 회장 측의 실무 협상이 진행됐다. 채권단 관계자는 "연일 협상을 해도 '경영권 프리미엄이란 무엇이냐'를 놓고 탁상공론만 하다가 끝난다"면서 "다음 주부터 협상에 나설 채권단을 주요 6곳에서 20곳으로 늘릴 계획이지만, 이달 말까지 최종 가격 협상을 마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여름 내내 지루한 협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은 9월 중에 최종 가격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 박삼구 회장에게로 공이 넘어간다. 박 회장이 한 달 내에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양측이 한 발씩 양보해 8000억원 안팎에서 극적인 타협이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박 회장이 우선매수청구권을 포기한다면, 채권단은 오는 10월부터 6개월간 제삼자 공개 매각을 추진할 수 있고, 매각에 실패하면 다시 박 회장과 가격 협상을 벌이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이번 협상에서 최대 주주인 미래에셋 측이 가장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박삼구 회장이 설득하고 넘어야 할 산이 1대 주주인 미래에셋 측만은 아니다. 금융 당국은 박 회장이 일단 우선매수청구권을 포기하고, 6개월간 공개 매각이 불발되는 상황을 더 이상적으로 본다. 이럴 경우 박 회장과 채권단이 매각 가격을 낮춰서 재협상을 하게 되고, 박 회장이 조달 가능한 금액에서 합의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도 비슷한 전망이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호산업이 호남 대표 기업으로 알려져 있어 비(非)호남 기업에서 인수에 나서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6개월간의 공개 매각이 불발돼 내년 3~4월쯤 채권단과 박 회장이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