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8.25 10:15
24일 중국 증시의 상하이종합지수가 전날보다 8.5% 내린 3209.91로 마감했다. 최근 사흘 동안 15.4% 하락했다. 선전 증시도 7% 넘게 내렸고, 대만 자취안지수와 홍콩 항성지수도 각각 4.8%, 4.7% 떨어지는 등 중화권 증시는 모두 약세를 보였다. 중국 증시의 급락에 한국을 비롯한 주요 글로벌 증시도 대부분 하락 마감했다.
이날 상하이종합지수는 장 중 9% 떨어지기도 했다. 중국 증시의 가격 제한 폭이 ±10% 인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종목이 하한가일 정도로 폭락했던 셈이다. 전날 중국 정부가 증시 부양을 위해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허용하는 방안을 발표했지만, 쏟아지는 매도 물량을 막기는 어려웠다.
최근 1년간 중국 증시는 주요 글로벌 증시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상승세를 보였다. 지난해 6월 2000 초반이었던 상하이종합지수는 올해 6월 12일 5166.35까지 오르며 1년만에 150% 넘게 뛰었다. 그러나 불과 두 달여만에 1년 넘게 이어져 오던 상승분이 대부분 사라졌고, 증시는 다시 지난해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다.
◆ 쏟아진 호재에 거품 키운 개인투자자, 등 돌리자 꺾이는 증시
-
- ▲ 올들어 중국 상하이종합지수 추이
지난해부터 중국 증시에서는 다양한 호재가 쏟아졌다. 중국 금융당국이 상하이와 홍콩 증시간 교체거래인 후강퉁(滬港通)을 시행하면서 중국 본토 주식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올 초 유럽중앙은행(ECB)이 대규모 양적완화를 시행하면서 외국인 자금의 중국 증시 유입도 늘었다.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을 위한 통화정책 완화도 호재가 됐다. 중국 중앙은행인 런민(人民)은행은 지난 2월과 4월, 6월 세 차례에 걸쳐 은행 지급준비율을 인하했고, 대출금리도 낮췄다.
국내·외에서 대규모 자금이 풀리자, 한 동안 주식투자에서 눈을 돌렸던 개인투자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중국 증시는 연일 큰 폭으로 상승했다. 특히 가격이 오를대로 오른 부동산에 비해 주식시장은 저평가됐다는 의견이 늘면서 빚까지 내 주식투자에 뛰어든 개인투자자들이 크게 늘었다. 현재 중국 증시에서 개인투자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신규 상장 기업들에 대한 투자 열기가 뜨거웠다. 일부 기업들의 경우 상장과 함께 연일 투자자가 몰리며 주가수익비율(Price Earnings Ratio·PER)이 200~300배까지 치솟기도 했다.
그러나 경기 회복이 뒷받침되지 못한 채 짧은 시간 동안 급등한 증시는 결국 모래성이었다. 지난 6월부터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지면서 글로벌 증시가 조정을 받기 시작했고, 각종 경제지표는 계속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나자 거품을 키웠던 개인투자자들이 앞다퉈 주식을 팔아치우기 시작하면서 증시는 빠르게 꺾였다.
◆ 中 금융당국, 어설픈 대응도 禍 키워
중국 금융당국의 어설픈 대응도 증시 혼란의 원인이 됐다. 지난달 초 중국 증시가 급락하자, 중국 정부는 1400여개 상장기업의 거래를 무기한 중단시키는 조치를 내놨다. 1년여간 상승세를 이어갔던 증시의 거품이 빠르게 사라지는 조짐을 보이자 놀란 당국이 하락세를 늦추기 위한 시간을 벌고자 내린 조치였다.
이 밖에도 중국 정부는 신규 상장 예정 기업들의 기업공개(IPO)를 중단하고, 국영기업들의 주식매도와 공매도를 금지하는 등 혼란에 빠진 증시를 안정시키는데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의 개입은 결과적으로 외국인들의 중국 증시에 대한 불신만 키우는 악재가 됐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흐름에 역행하는 정부의 낡은 관치 행정으로 인해 외국인들의 중국 증시 매도물량은 더욱 늘었고, 개인투자자들의 투자심리도 계속 위축돼 갔다.
이미 투자자들이 매도로 돌아서자 중국 정부의 갖가지 처방도 별다른 약발을 받지 못했다. 지난달 18일 중국 정부는 17개 국영은행들의 대출을 통해 주식시장에 총 1조3000억위안(약 240조원)의 자금을 공급하는 내용의 부양책을 내놨지만, 상하이종합지수는 4000선을 잠시 회복한 뒤 다시 3000대로 고꾸라졌다.
중국 정부가 수출을 통한 경기회복을 위해 최근 실시한 위안화 평가 절하가 증시의 급락을 부추겼다는 의견도 있다. 김종수 토러스투자증권 연구원은 "위안화 약세로 인해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 자금이 계속 유출됐고, 수급여건 악화를 우려한 내국인의 증시 이탈도 늘었다"며 "신용잔고 축소와 공매도 재개 우려에 위안화 약세까지 추가되며 투자심리가 빠르게 악화됐다"고 말했다.
◆ 기업 주식담보대출 규모도 커…신용경색 위기도 가중
일부에서는 중국 기업들의 막대한 주식담보대출로 인해 새로운 신용 위기와 증시 혼란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한다.
그 동안 많은 중국 기업들은 최근 몇 년간 이어진 경기침체와 대출 규제에 따른 자금난을 주식투자로 만회해 왔다. 실적 개선에 어려움을 겪자 본업 대신 주식투자를 통해 이익을 남기려는 기업들이 크게 늘었고, 한 동안 증시가 강세를 보이자 보유한 주식을 담보로 추가 대출을 받아 또다시 주식에 투자하거나, 빚을 갚는데 사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주식담보대출은 증시가 약세로 돌아설 경우 큰 문제가 생긴다. 주식이 담보가치를 밑돌 정도로 떨어질 경우 증권사와 은행들이 반대매매에 들어가거나, 자금 회수에 나서기 때문에 결국 주식담보대출에 의존해 왔던 기업들은 신용경색으로 위기에 빠지게 된다.
글로벌 헤지펀드인 킹던캐피탈매니지먼트는 지난달 투자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중국의 주식담보대출 규모가 급증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며 보유한 중국 주식을 모두 매도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 악화되는 지표에 짙어지는 투자자 불신…당분간 약세 지속될 듯
전문가들은 중국 증시가 저점을 찾고 반등하기까지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여전히 제조업을 비롯한 각종 경제지표가 계속 악화되고 있어 투자심리를 되돌릴 수 있는 강력한 부양책이 나오지 않는 한 투자자들이 한번 꺾이기 시작한 증시에 다시 눈을 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지난 21일 발표된 중국의 차이신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7.1을 기록, 6개월 연속으로 기준치인 50을 밑돌며 최근 6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내려갔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중국의 경기둔화 흐름은 미국의 조기 양적완화 종료 가능성과 글로벌 경기침체 등으로 인해 증시가 흔들렸던 2013년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며 "원자재 가격도 약세가 지속되고 있어 당분간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 정부가 승전 70주년 기념일(전승절)의 열병식 준비에 매진해 금융시장을 진정시키는데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난 12일 톈진(天津)에서 발생한 대폭발에도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며 투자자들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대권 유경PSG자산운용 본부장은 "중국 증시는 개인투자자들의 비중이 약 80%에 달해 각종 확인되지 않은 정보나 소문에 의해 투자심리가 민감한 영향을 받는다"며 "최근 열병식 준비와 톈진 대폭발 등 어수선한 분위기가 계속되는 와중에 당분간 강력한 추가 부양책이 나오기 어렵다는 비관론도 늘면서 투자자들이 증시를 계속 떠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