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8.28 10:26
['김기사' 앱 만든 박종환 대표 '벤처썸머포럼'서 쓴소리]
대기업 담당자에 밉보이면 하루아침에 협력업체 탈락
사업초기는 '기득권과 경쟁'… 창업지원 정책도 형식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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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비게이션 앱 '김기사'를 만든 박종환 록앤올 대표
"사업 초기에 가장 어려웠던 점은 자금이나 기술 부족 같은 내부적인 문제가 아니라 기득권과의 경쟁이었습니다."
26일 제주 하얏트호텔에서 벤처기업협회가 주최한 '2015 벤처썸머포럼'. 내비게이션(길안내) 앱 '김기사'를 만든 박종환 록앤올 대표가 '지금부터 시작이다'라는 주제로 선후배 벤처기업인 200여 명 앞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그는 부산대 컴퓨터공학과 석사과정 1년을 막 끝낸 2000년부터 지금까지 16년간 벤처기업에 몸담고 있다.
"예전에 근무했던 벤처는 대기업에 소프트웨어를 납품하는 일이 주업무였어요. 대기업의 경우 담당자 입김에 의해 하루아침에 협력업체가 바뀌는 일도 벌어지다 보니 그분들에게 밉보이지 않도록 하는 게 최우선이었습니다."
기술개발보다 영업이 더 중요했다는 말이다. 박 대표는 "당시 우리 회사는 '개발은 잘하는데 영업은 별로'라는 평가를 받았다"며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그분들을 거치지 않고도 직접 일을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 록앤올을 설립하고 이듬해 '김기사' 앱을 내놓았다. 하지만 통신사들은 이미 스마트폰에 자사(自社)의 내비게이션 앱을 기본으로 탑재해 공짜로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정한 경쟁이 힘든 상황이었다. 박 대표는 "그래도 대기업 직원을 상대로 영업을 하면서 소프트웨어를 납품하는 것보다는 나았다"며 "일반 사용자는 오로지 기술과 서비스 자체만 평가하기 때문에 오히려 일하기가 수월했다"고 말했다.
그는 "벤처와 대기업은 바라보는 대상이 다르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메뉴의 버튼 하나 바꾸는 것도 우리는 금방 하는데 대기업은 몇 달이 걸리더군요. 내부적으로 승인받아야 하고,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설득해야 하니까. 대기업은 그런 절차나 형식을 너무 신경 쓰는 것 같습니다." 박 대표는 "그러다 보니 우리는 빨리 움직이고 그 회사들은 느리게 움직이면서 우리가 그들을 따라갈 수 있었다"고 했다.
박 대표는 현실과 맞지 않는 창업지원 정책에 대한 '쓴소리'도 했다. "기술보증기금에 가면 사업자금을 빌려준다는 얘기를 듣고 며칠 밤을 새우며 우리 회사 기술의 장단점을 적은 제안서 수십 페이지를 작성해서 찾아갔어요. 그런데 담당자는 '사장님 신용만 좋으면 1억원까지 대출이 된다'고 하더군요. 자금을 받기는 했지만 허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는 "대출을 받으니 저절로 '벤처 인증'이란 것까지 해줬다"며 "그래서 우리 회사도 자연스럽게 벤처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올 5월 다음카카오에 회사를 626억원에 매각하고 전문경영인으로 계속 일하고 있다. 박 대표는 이 과정에서도 기업 인수합병(M&A)에 얼마나 많은 불합리한 난관이 있는지 실감했다고 했다. "인수합병 관련해 세금 신고를 해야 하는데 담당 세무사가 '국세청에서 이상한 거래로 볼 수 있으니 관련 서류를 최대한 많이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연간 20억원 정도 적자 나는 회사를 이 가격에 사는 걸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면서요. 그런데 아직까지 국세청에서 따로 서류 요청이 들어온 건 없습니다."
벤처 경영의 애환을 설명한 박종환 대표가 뜻밖에 "원래는 내 꿈도 삼성전자나 SK텔레콤에 가는 것이었다"고 하자 청중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는 "좋은 대학을 나온 훌륭한 인재들이 안정적이고 돈 많은 대기업을 선호하는 건 이해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벤처기업으로도 많이 가야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중요한 영양분이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