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兆 적자에도 파업하는 노조... 해외 생산량까지 勞使합의 요구

    입력 : 2015.09.11 09:25

    [高임금 노조에 발목잡힌 경제]


    - 금호타이어 파업 손실 1100억
    임금피크제 연기하고 임금인상률 합의했지만 성과급 요구 틀어지자 투쟁


    - 度 넘은 경영권 침해
    해외 본사 찾아가 매각 방해, 구조조정은 사무직 위주로


    광주광역시 소촌동 금호타이어 광주 공장 본관 2층 사장실. 이 회사의 김창규 사장과 허용대 노조위원장은 지난 9일 오후부터 10일 오전까지 마주 앉아 밤을 꼬박 새웠다. 16차례에 걸친 노사 임금 협상이 난항을 겪자 노사 수뇌부가 단독 협상을 벌인 것이다. 하지만 결론은 또 '결렬'이었다. 금호타이어는 10일 현재 25일째 노조 파업으로 1100억원의 매출 손실을 보고 있다. 지난해 총매출의 7%가 넘는 규모다. 하루 손실액만 40억~50억원이다.


    금호타이어 노조원들이 지난 7일 광주 광산구 금호타이어 광주 공장 앞에서 회사 측에 직장폐쇄 조치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9일에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호중공업 등이 부분 파업을 벌였고, 10일에는 현대자동차노조가 투표를 통해 파업을 가결했다. 자동차·조선·타이어 등 주력 업종 노조가 잇달아 파업에 나서면서 한국 경제에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성형주 기자


    임금인상률이나 임금피크제 실시 연기 등 노조 측 주장은 대부분 수용됐다. 남은 요구사항은 하나, 노조원들에게 지급할 올해 성과급을 실적이 나오기 전에 1인당 150만원씩으로 확정해달라는 것이다. 금호타이어 관계자는 "회사는 망하든지 말든지 자신들의 이익은 무조건 챙기겠다는 것"이라며 "금호타이어 협력 업체 직원과 가족들까지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불황에 시달리는 한국 산업계가 '고(高)임금 노조'들의 잇단 파업 움직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파업에 돌입했거나 파업 움직임을 보이는 자동차·조선·타이어업계는 대부분 1인당 임금이 연봉 7000만원대를 넘고 현대차는 1억원에 육박한다. 조선업은 지난해 이후 8조원 가까운 적자를 냈다. 그런데도 노조들이 파업에 나서자 산업계에서는 "급여를 많이 받는 일부 대기업 노조들의 끝없는 이권(利權) 챙기기로 한국 경제 전체가 발목 잡힐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영권 침해하는 노조


    현대자동차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해외 공장 생산량 노사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 이 '생산량 조정'은 경영권에 해당한다. 현대차는 지금도 신차를 출시하거나 해외 공장을 신설할 경우 노조와 해외 공장 생산량을 합의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노조는 '해외 공장에서 만드는 모든 차종에 대한 생산량 협의'로 요구 수준을 더 높였다. 이항구 산업연구원(KIET) 선임 연구위원은 "과거 프랑스도 노동자들이 경영에 참여와 간섭을 했다가 고임금, 저효율 구조가 고착돼 제조업이 모두 망가졌다"며 "경영권 침해가 이뤄지면 효율적인 기업 운영이 어렵게 되고 우리도 프랑스 제조업과 비슷한 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노조는 9일 파업 찬반 투표를 실시해 78% 찬성으로 가결시켰다. 사진은 9일 밤 울산 공장 노조사무실에서 개표를 진행하는 모습. /뉴시스


    자동차 부품 업체인 한국델파이노조는 미국 델파이 본사가 보유 지분 50%를 한국의 S&T그룹에 매각하려는 시도 자체를 막고 있다. 이들은 "S&T그룹에 매각하면 전면 총파업에 들어갈 것"이라며 지난달 미국 미시간주에 있는 델파이 본사를 찾아가 회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델파이는 '비슷한 가격이면 노조 방해가 없는 쪽에 매각하겠다'며 물러나 S&T와의 매각 협상이 중단됐다.


    ◇생산직은 구조조정에서 제외


    노조가 파업에 나서면서 내세우는 상투적인 명분 중 하나는 "어려울 때 생산직만 내쫓기 때문에 평소에 이익을 더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생산직이 중심인 노조는 구조조정 등에서 사무직이나 임원들에 비해 비켜나 있다. 올해 상반기 5조원에 가까운 손실을 내서 고(高)강도 구조조정에 들어간 국내 3대 조선사 가운데 생산직 감원을 계획하고 있는 기업은 전무(全無)하다. 희망퇴직 대상은 사무직일 뿐이며 생산직은 무풍(無風)지대인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초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 사무직 1400여 명이 회사를 떠났지만 생산직은 희망퇴직자가 거의 없었다. 대우조선해양도 이달 중 부장급 이상 사무·연구직 직원 최대 400명을 희망퇴직 등으로 내보낼 예정이지만 생산직 7000여 명은 구조조정 대상에서 아예 빠졌다.


    자동차 업종도 마찬가지다. 2009년, 2012년과 지난해 희망퇴직을 실시한 한국 GM은 매번 사무직만을 상대로 수백명씩 구조조정을 했다. 생산직은 퇴직을 2~3년 앞둔 팀장급 관리자만 해당됐다.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 부회장은 "요즘 같은 글로벌 장기 저성장 시대에 고임금 노조가 자기 이익만 챙기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행위"라며 "노조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변신해야 본인도, 회사도 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