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율 0%... 은행도 놀란 'P2P 대출'

    입력 : 2015.09.11 09:35

    [담보·신용만 보는 은행권과 달리 첨단 IT기술 도입, 대출 심사]


    인공지능 SW로 SNS 글 등 분석, 상환 의지 등 다양한 요소 파악
    자영업자 POS 통해 매출도 확인 "이제 초기단계… 더 지켜봐야"


    개인 간(P2P) 대출을 중개해주는 업체인 8퍼센트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난해 12월부터 이달 10일까지 156건에 걸쳐 총 44억5000만원의 대출을 했다. 은행에서 대출받기 힘든 신용등급 4~6등급 사람들이 주요 고객으로, 대출 금리는 연 9.9%(개인대출 기준) 선이다. 연 30%대인 대부 업체나 저축은행 금리보다는 낮고, 은행 금리보다는 높은 이른바 '중(中)금리' 대출이다. 이런 조건에서는 금리에 비해 연체율(延滯率)이 높아서 수익을 내기 힘들다는 것이 기존 금융권의 상식이었다. 은행 등이 중금리 대출에 진출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P2P 대출 업체들이 이런 상식을 깼다. 이효진(32) 8퍼센트 대표는 "지난 10개월간 한 번도 대출 상환이 늦어지거나 부도(不渡)가 난 사례가 없다"고 했다. '연체율 0%'인 셈이다. 1~3등급의 높은 신용등급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은행권의 연체율도 0.5~1%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수치다. 이 회사뿐만 아니라 렌딧(Lendit)과 펀다(Funda) 등 다른 P2P 대출 업체 두 곳도 아직 연체율 0%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만의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는 걸까.


    ◇SNS 내용도 신용 평가에 활용


    P2P 대출 업체들은 기존 금융권이 흔히 쓰는 '신용등급 평가' 외에도 첨단 기술을 도입, 대출 심사 과정을 차별화했다. 대출 서류와 신용등급 등 기존 지표에는 나타나지 않는 '숨은 연체 가능성'을 IT(정보기술)의 힘으로 찾아내는 것이다. 이들 업체는 "수백 가지 검토 요소가 있지만, 영업 기밀이라 자세한 내용은 밝히기 어렵다"고 했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이용, 대출 신청자의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를 분석하는 기법이 대표적이다. 렌딧의 김호성 팀장은 "페이스북·블로그·트위터 등에 올라온 글을 통해 상환 의지와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를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업체들은 대출 신청자들의 사전 동의를 얻어 이들이 온라인에 올린 글을 수집해 자체적으로 개발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로 자동 분석한다. 예컨대 공격적·부정적 표현을 많이 쓰거나 사치스런 생활을 하고 이를 남에게 자랑하는 내용이 많은 사람은 신용도에 불리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상 대출의 경우, 매장 카운터에 설치된 결제 기기(POS 기기) 정보를 통해 실적을 분석하는 기법도 쓴다. 실제로 이 상점이 어느 정도 매출이 나는지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다. 서류상 담보와 대표자의 개인 신용만 보고 대출 여부를 판단하는 기존 금융 회사보다 한발 더 나아간 기법이다. P2P 대출 업체 펀다의 이주영 팀장은 "POS 기기 네트워크를 통해 매출 발생 자료를 받아오는 기술을 개발했다"면서 "어느 정도 매출이 나는지를 정확하게 알면 대출 및 상환 능력을 더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출 신청자가 웹사이트에 들어와 대출 신청을 하는 과정도 관찰해 신용 평가에 반영한다. P2P 업체들은 "대출 희망액과 기간을 입력하는 행동 패턴을 분석한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동일한 사람이 액수나 상환 기간을 수십 차례씩 바꿔가면서 입력하면 평가 점수가 낮아진다. 제대로 된 자금 계획 없이 무분별하게 대출을 하려는 사람일 수 있고, 결국 연체가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돈 빌려준 사람이 돈 벌어 줘"


    이런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대출을 받는 사람은 전체 대출 신청자의 10% 내외다. 이효진 8퍼센트 대표는 "(연체율이 0%인 데는) P2P 대출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려고 좀 더 엄격하게 대출 심사를 한 영향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업계 자체가 아직 규모가 작고 업력(業歷)도 1년 미만인 만큼 다수 업체가 앞으로도 이렇게 낮은 연체율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돈을 빌려주는 P2P 대출의 네트워크적 속성이 낮은 연체율의 또 다른 비결이라는 해석도 있다. 8퍼센트 신혜련 리서치팀장은 “법인 대출의 경우, 대출 한 건당 평균 110명이 투자자로 참여했다”면서 “대출 업체 입장에서는 110명에게 자기 회사를 소개·홍보할 기회를 갖는 셈”이라고 했다.


    차량 공유 업체 '쏘카(SOCAR)'의 경우 지난 7월 네 차례에 걸쳐 13억원의 대출을 받으면서 총 717명의 투자자에게 매달 1시간씩 무료로 차를 빌려 쓸 수 있는 쿠폰을 줬다. 투자자 이모(29)씨는 "내 돈을 빌려 간 기업이라는 호기심 때문에 한 번 이용해 봤는데 요금이 저렴해 만족했다"면서 "주변 사람에게 '이런 서비스가 있다'고 소개도 한다"고 말했다.


    돈 빌려준 사람이 매출을 올려주고, 입소문도 내준 셈이다. 대출을 받은 입장에선 투자자들이 단순히 채권자일 뿐만 아니라 고객이기도 하다. 업계 관계자는 "이런 입소문 효과 때문에 일부러 P2P 대출을 찾는 소상공인도 있다"면서 "P2P 대출이 홍보·마케팅 역할까지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P2P(Peer to Peer·개인 대 개인) 대출


    돈이 필요한 사람(대출자)과 여윳돈을 굴리려는 사람(투자자) 사이를 인터넷으로 연결해 주는 대출 방식이다. 영단어 'to'의 발음이 숫자 '2(two)'의 발음과 같아서 'P2P'라고 표기한다. P2P 대출 업체가 인터넷으로 대출 신청을 받은 뒤 적정 금리를 매겨 게시판에 올리면, 투자자들이 투자하고 싶은 대상을 골라 십시일반(十匙一飯)식으로 투자를 한다. P2P 대출 업체는 대출자로부터 매달 원금과 이자를 받아 이를 투자자에게 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