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펀드시장 '스타크래프트 세대' 돌풍

    입력 : 2015.09.17 09:25

    [펀드인맥 지형도 변화 바람]


    주식형 펀드 1년 수익률 상위 5위 중 4명이 30代
    조선·철강 등 대형株보다 성장성 높은 '중소형株' 공략
    전문가 "한쪽 치우치지 말고 적절히 섞어서 투자해야"


    40~50대 오락실 테트리스 세대가 주름잡던 여의도 펀드인맥 지형도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30대의 젊고 씩씩한 스타크래프트(PC방) 세대가 시중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전통적인 일반 펀드들을 압도하는 좋은 성과도 올리고 있는 것이다. 30대 매니저들은 오락실보다는 PC방이 훨씬 친근한 세대로, PC방 열풍을 일으켰던 대표게임인 '스타크래프트'를 따서 스타 세대라고도 불린다. 신건국 에프앤가이드 수석연구원은 "젊은 감각으로 무장한 30대 매니저들은 박스권에 갇힌 장세에서 시장 변화에 맞는 종목을 찾아내고 대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면서 "이들은 현장 탐방도 많이 다니기 때문에 우리나라 경제의 심장으로 성장할 신산업을 발굴하는 데에도 유리하다"고 말했다.


    ◇펀드는 복불복? 63% vs. -17%


    펀드매니저는 펀드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펀드매니저가 정성 들여 가꾸고 키우는 펀드는 점점 돈이 몰려들면서 건강하게 커나가지만, 펀드매니저가 잘못 키운 펀드는 평생 한 번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인생의 종착점을 맞이하게 된다. 투자자 입장에선 어떤 펀드매니저가 운용하는 펀드를 고르느냐에 따라 수익률이 천차만별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금융시장에선 30대의 젊은 매니저들이 굴리는 작은 펀드가 선전(善戰)하고 있다.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매니저들은 통상 수천억원대의 일반 대형주 펀드보다는 중·소형주에 투자하는 펀드를 맡는다.



    16일 펀드평가업체 에프엔가이드가 국내 주식형 펀드를 1년 이상 운용한 매니저 149명의 수익률(6월 말 기준)을 분석한 결과, 1년 수익률 기준으로 상위 5위 펀드매니저 중 4명이 모두 30대인 것으로 조사됐다. 1년 수익률 63%로 1위에 오른 이현진 미래에셋운용 본부장은 지난 2005년 증권시장에 몸담은 36세의 펀드매니저다.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 펀드의 1년 수익률은 6.74%에 그쳤고, 최하위 주식형 펀드 수익률이 -17%로 부진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탁월한 성과를 올린 것이다.


    박택영(2위, 52.7%) 미래에셋운용 매니저, 홍정모(3위, 51.6%) NH-CA자산운용 매니저, 이하윤(5위, 44.9%) 마이다스에셋운용 매니저 모두 30대였다. 이 30대 매니저들은 한국 경제의 핵심축이었던 삼성전자·현대차 같은 덩치 큰 종목보다는 저성장·고령화 속에서도 성장할 수 있는 작지만 알짜 기업을 찾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이현진 본부장은 "눈에 보이는 주가가 예전보다 싸다고 해서 무작정 매수하지 않는다"면서 "특히 조선·철강·기계 등 일본·중국과 경쟁해야 하는 중후장대한 산업은 매수 고려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테트리스+스타' 섞어 위험 분산


    투자자들의 시선은 현재 눈에 보이는 가치보다는 꿈의 가치를 더욱 중시하는 PC방 스타크래프트 세대의 중소형 펀드로 향하고 있다. 올 들어 국내 주식형 펀드 시장은 지독한 환매 몸살을 앓았지만, 중소형 펀드는 오히려 1조4000억원의 자금이 몰리며 문전성시를 이뤘다. 문성필 한국투자증권 상무는 "연륜과 경험이 쌓이게 되면 아무래도 전통 제조업 같은 익숙한 것만 찾게 되는데, 반면 30대 젊은 매니저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덜하고, 달라지는 산업 구조에도 빠르게 적응한다"고 말했다.


    다만 매니저의 물리적인 나이보다는 포트폴리오가 젊게 꾸려지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연초 이후 수익률 1위(31%)인 라자드운용 펀드는 50대인 동일권 매니저가 운용하는데, 보유 주식 리스트를 살펴보면 CJ E&M, 뷰웍스, 한국항공우주 등 대부분 중소형주이며, 시가총액이 큰 대형주는 담고 있지 않다.


    또 일부 젊은 매니저들은 아직 투자 철학이 여물지 않아서 박쥐처럼 시장 상황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확 바꾸기도 하므로, 펀드 가입 시 매매 회전율(높을수록 매매 빈도가 높아 비용이 비싸짐)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김규범 SC은행 부장은 "지금까지는 스타 세대의 성과가 좋았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는 만큼, 테트리스와 스타 어느 한쪽을 찍기보다는 적절히 섞는 것이 효율적"이라며 "투자할 때 한쪽 방향으로 치우치면 부작용이 따를 확률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