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9.17 09:38
인사혁신처, 민간기업 실무수습 제도 올해 첫 도입
140여개 기업에 7주 배치…기업들 "무슨 일 시키나"
수도권에 있는 A 기업은 이달 초 한국중견기업연합회로부터 5급 공채 수습 사무관 2명을 인턴으로 채용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지난 14일 처음 출근한 이들은 10월말까지 7주 동안 근무하게 된다. A 기업 관계자는 "갑자기 연락을 받아서 어떤 일을 시켜야 할지 난감하다"며 "현장의 애로 사항을 파악하도록 하라는데 공무원에게 어느 정도까지 보여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인사혁신처가 올해 처음 도입한 5급 공채 수습 사무관의 민간기업 실무수습에 대해 일부 기업들이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민간기업 실무수습은 국가공무원 5급 시험에 합격한 후 기본교육을 마치고 시보로 임용된 사람들을 7주 동안 민간기업에서 근무시키는 제도다. 올해는 총 401명의 수습 사무관이 140여개 중소·중견 기업에서 근무한다.
인사혁신처는 수습 공무원들이 민간기업에서 일하면 다양한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고 실물경제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돼 정책역량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17일 "수습 공무원 기본교육 프로그램에 중소기업 연수를 1주일 다녀오는 게 있는데 실제 기업이 어떻게 일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사무관들이 낮은 부분부터 체감하면서 (느낀 점을) 정책에 반영하도록 하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혁신처는 각 기업에 내려보낸 '참고자료'를 통해 해당 기업들이 수습 사무관들에게 구체적인 업무를 부여하고 주요 현안 담당 부서를 중심으로 적합한 직위를 발굴하라고 지시했다.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고 초과 근무나 과도한 음주행위는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해당 기업들은 7주 동안 어떤 업무를 맡겨야 할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한 기업 관계자는 "배치된 수습 사무관들은 '여기에 왜 왔나'하는 표정이고 직원들은 공무원 앞이라 자유롭게 얘기도 못 하는 어색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며 "한 수습 공무원은 근무 시간에 자기 자리에서 외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데 누구도 선뜻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말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인사혁신처는 원하는 기업에만 수습 사무관을 보냈다고 설명했지만 해당 기업들은 강제로 할당받았다고 주장했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대상 기업은 중소기업청이 취합했고 희망한 기업에만 수습 사무관을 배치했다"고 말했다. 반면 해당 기업은 “중기청이 연합회를 통해 사실상 강제적으로 내려보낸 것”이라며 "정부가 사무관을 인턴으로 채용하라는데 싫다고 할 기업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수습 사무관 대부분은 나중에 중앙부처에서 근무하고 일부는 시청이나 도청에서 근무하게 된다. 이 때문에 해당 기업들은 나중에 불이익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며 수습 사무관을 깍듯하게 대하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회사에 배치된 첫날 주요 임원들과 인사하고 사장과 식사를 했는데 일반 인턴이라면 이런 일이 가능하겠는가"라며 "정식 공무원도 되기 전에 대접받는 것부터 배울까 걱정"이라고 했다.
이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대다수 공무원은 민간 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실제 기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한 경제부처 과장은 "공무원 생활만 하다 보니 1년 정도 민간 기업에서 일하다 오면 더 좋은 정책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며 "민관 교류를 늘리는 게 쉽진 않지만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