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9.21 09:13
[금리동결후, 美·유럽 증시 하락… 구리 등 원자재價도 동반 급락]
"美경제 허약한 상태 보여준 것… 中·신흥국 둔화 예상보다 심각"
옐런 10월 금리인상 가능성 열어
일부선 '내년 연기說' 거론 혼란
무디스, 프랑스 신용등급 강등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 동결 결정의 후폭풍이 글로벌 금융시장에 몰아치고 있다. 지난 7년간 지속돼 온 유동성(돈)이라는 영양제 투약을 연장해야 할 만큼 세계 경제가 허약하다는 뜻으로 해석되면서 지난 18일 미국과 유럽 증시가 동반 하락하고 원자재 가격이 급락했다. 또한 금리 인상이 아예 내년으로 미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확산되면서 지난 몇 개월간 금융시장을 괴롭혀온 금리 인상의 불확실성이 오히려 높아지는 분위기다.
◇"미국도…" 흔들리는 글로벌 경제
지난 17일(현지시각) 연준의 금리 동결 결정이 나온 직후 신흥시장의 첫 반응은 호의적인 편이었다. 유동성 장세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 18일 일본을 제외하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증시가 대부분 상승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이날 하루 한국·인도·태국 등 신흥 7개국에 4억달러가 유입됐다.
하지만 선진국 증시로 넘어가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18일 다우지수는 1.74% 하락해, 중국 경기 둔화 우려로 2.8% 하락했던 지난 1일 이후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유럽 18개국의 주요 기업 600곳 주가를 토대로 산출하는 유로스톡스 600 지수도 1.78% 내렸고, 영국과 독일 증시도 각각 1.3%·3.1% 떨어졌다.
연준이 금리를 인상하지 못한 것은 중국과 신흥국의 경기 둔화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증거이며,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웠기 때문이다. 필립 웨처 내틱시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정상으로 회복한다'는 신호를 모두가 기다렸지만, 아직 그런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며 "이번 결정은 미국 경제가 매우 허약한 상태라고 연준이 생각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 증시에서는 '금리 인상 수혜주'로 꼽혔던 금융주가 대거 하락했다. 또 '경기 둔화 우려→원자재 가격 급락→에너지 관련주 하락'의 연쇄 반응도 일어났다. 18일 뉴욕 상업거래소에서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4.7% 급락한 배럴당 44.68달러로 마감했고, 이에 따라 정유주 등이 동반 하락했다. 실물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구리 가격도 2.7% 하락했다. 닉 라이치 어닝스 스카우트 최고경영자(CEO)는 "연준이 금리를 올리지 않은 것은 세계 경제에 우리가 모르는 나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추측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18일 프랑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 글로벌 경기 둔화가 전방위적이고 '현재 진행형'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무디스는 "프랑스의 경제 회복이 매우 느리고, 구조적 고실업과 수출시장 점유율 감소 등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Aa1에서 Aa2로 한 단계 낮췄다. 지난 2012년 최고등급(Aaa)에서 한 단계 강등된 이후 3년 만의 강등이다.
◇'내년 연기설'까지 돌며 불안감 커져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등 국제기구들은 "미국이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 전 세계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만류해 왔다. 연준이 고심 끝에 금리를 동결한 것도 이런 경고를 지나치기 어렵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금리 동결 결정을 내린 이후에는 "연준이 너무 눈치를 본다" "불확실성만 키웠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아 연준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연준 내 대표적인 '매파'(통화 긴축정책 지지자)로 꼽히는 제임스 블라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는 18일 "연준의 결정에 반대한다"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올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투표권이 없는 그는 "금융시장은 늘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는 것이지만, 통화정책은 좀 더 안정적이어야 한다"며 "금리 동결 결정이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감소시키기보다는 오히려 키웠다"고 말했다.
실제로 옐런 의장이 기자회견에서 10월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놓았지만, 시장에서는 벌써부터 '내년 연기설'이 높아지며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 가격으로 봤을 때 트레이더들은 내년 1월 인상 확률을 52%로 점치고 있다. FOMC 회의 후 연준이 발표한 점도표(연준 위원들의 금리 전망을 표시한 자료)를 봐도 연내 인상을 점친 연준 위원은 17명 중 13명으로 지난 6월 15명보다 감소했다. 심지어 금리를 마이너스(-)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 위원도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7년간 지속된 초(超)저금리와 양적 완화에도 세계 경제가 소폭의 금리 인상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취약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세계 경제가 금융위기 이후 약 8조달러를 투입했는데도 돌아온 것은 저조한 성장뿐"이라면서 "돈 풀기 정책만으로는 세계 경제가 치료될 수 없다는 것이 이번 금리 동결의 교훈"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