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0.07 09:51
[막연한 아이디어도 다듬어 현실화…'창조경제타운'사이트]
일반인의 아이디어 평가해 선발, 2400명의 석·박사급 멘토가 검토… 특허 등록·창업 과정까지 지원
시제품 제작·창업 교육 등 알선… 유통 판로 개척, 글로벌 진출까지 도와
300여개 기업 '창업의 닻' 올려
대학생 안규호(26)씨는 지난해 2학기 '제품 혁신 전략'이라는 경영학 수업 과제로 '어린이 보호 수전(水栓·수도꼭지) 장치'란 아이디어를 냈다. 욕실이나 주방의 수도꼭지가 돌아가는 각도를 핀으로 제한할 수 있게 해 어린이들이 물 장난을 치다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지 않도록 하는 장치다. 수도꼭지를 아예 돌리기 힘들게 만들어버리는 기존 제품의 단점을 극복했다. 안씨는 "지도교수님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고 나 스스로도 학교 과제만으로 썩히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하지만 자금도, 전문 지식도 없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사업화할 엄두조차 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안씨가 지금은 그 어린이 보호 수전 아이디어를 특허로 출원했고 몇몇 기업과는 구체적인 사업화를 논의 중이다. 수업 과제 아이디어가 사업으로 급진전하게 된 것은 지난 5월 '창조경제타운'(www.creativekorea.or.kr) 사이트를 접하면서부터다. 정부와 민간 전문가들이 함께 운영하는 이 사이트는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는 있지만, 이를 어떻게 실현해야 할지 막막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도와준다. 안씨는 "'아이디어 제안'란에 내 아이디어를 올리니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멘토(mentor)'로 붙어서 아이디어를 진짜 제품으로 구현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조언을 해줬다"면서 "바로 다음 달(6월)에 변리사의 연락을 받아서 이 아이디어를 특허로 출원했고, 지금 몇몇 기업과 사업화 논의까지 진행 중"이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안씨가 낸 돈은 특허출원에 필요한 인지대 8만원뿐이었다. 그는 "거짓말처럼 쉽게 내 아이디어가 현실이 되어 가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고 했다.
◇막연한 아이디어를 현실로
안씨의 이야기는 2013년 9월 창조경제타운이 생긴 이후 이 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 중인 총 3920여 건의 사례 중 하나다. 이 사이트는 발명이나 창업에 관심있는 사람들 사이엔 이미 입소문을 탔다. 지난 2년 새 7만730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했고, 228만여 명이 방문해 누적 페이지뷰가 1700만건에 이른다. 어지간한 대기업 홈페이지보다도 많은 수치다. 이를 통해 총 2만6000여 건의 아이디어가 나와 이 중 200여 건이 실제 사업으로 연결됐고, 1300여 건이 사업화 과정에 있다.
창조경제타운은 전문적 지식이 없는 일반인도 아이디어만 가지고 오면 바로 그다음 단계부터 꿈을 현실화하기 위한 지원을 해준다. 다른 민간의 창업지원센터와 다른 차별성이다.
'멘토'들이 이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다. 일단 개인의 아이디어가 올라오면 멘토가 따라붙어 아이디어의 검증부터 사업화를 위한 개선 방안까지 다양한 조언을 해준다. 현재 창조경제타운에는 2400여 명의 멘토가 활동하고 있다. 모두 민간 기업이나 정부 연구기관에서 일하는 석·박사급 이상의 전문가들이다. 정보통신 분야(38%)가 가장 많고, 환경·에너지(14%), 부품·소재(13%), 안전·의료·복지 분야(8%)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창조경제타운은 한 달에 한 번씩 그동안 제안된 아이디어를 평가해 선발한다. 여기서 뽑혀 상업적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로 판정이 되면 이를 더 구체화하는 과정을 거쳐 특허 등록을 시도한다. 창조경제타운은 전국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연계해 변리사를 연결해 주고, 그 비용도 지원받도록 주선해 준다. 변리사를 고용할 경제 사정이 안 되어도 아이디어만 훌륭하면 거의 공짜로 특허를 낼 수 있는 셈이다.
◇"창업에 필요한 모든 정보 있어"
아이디어가 구체화되고 권리를 명확히 하는 과정을 거치면 본격적인 창업 및 사업화 단계로 들어간다. 시제품을 만들고, 이 제품을 판매할 유통망을 확보하며,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투자를 받고, 법인을 설립해 실제 사업에 뛰어드는 과정이다.
창조경제타운은 이 과정에서도 정부 기관과 민간 기업을 끌어들여 도와주는 시스템을 갖췄다. 초기 단계에서는 시제품 제작 및 인프라 지원, 창업 교육과 창업 보육기관 입주 등을 알선해주고, 본격적인 창업(사업화 추진) 단계에 이르면 정부가 운영하는 기술 개발 지원 사업 및 대기업이 운영하는 민간 창업 프로그램과 연계해 준다. 여기에 추가로 창업 자금 보증과 유통 판로 개척, 나중에는 글로벌 진출도 따라 붙는다.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총 300여 개의 기업이 창업의 닻을 올렸다. 창조경제타운 유수현 실장은 "2년의 짧은 기간이지만 이 중 34개 회사가 매출을 내기 시작했고, 이 중 12개는 해외 진출도 했다"고 말했다. 2013년 10월 자전거 거치대와 공기 펌프를 합친 '킥스탠드 펌프'의 아이디어를 낸 김필호씨가 대표적이다. 그는 1년여간에 걸쳐 특허 등록 및 창업 지원을 받고 이 제품을 만드는 ㈜리만을 창업해 최근 미국의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킥스타터(Kickstarter)'를 통해 2만달러어치의 선주문을 받았다. 김씨는 "창업에 필요한 각종 지원 정책과 행사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이 한데 모여 있는 것이 가장 맘에 든다"면서 "창업가들 사이엔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들어가봐야 하는 사이트'라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황영헌 창조경제타운 단장은 "학력이나 나이, 인맥을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창업 플랫폼(기반 서비스)"라며 "한국 경제의 지속적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핵심 인프라로 키워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