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0.07 10:20
[CEO가 말하는 내 인생의 ○○○] 홍성국 대우증권 사장의 '천자문'
초등생때 소설 '광복 20년' 20권 완독, 중고교땐 '불모지대' 등 세계로 눈돌려
입사후 책 읽으려 車 두고 지하철 출근
평생 독서습관 금융시장 분석시 빛발해 빠르고 깊이 있는 보고서 작성 1인자로
나는 한글보다 한자를 먼저 깨쳤다. 조기교육에 대한 열정이 유별났던 할아버지 덕이다. 내가 다섯 살이 되자 할아버지는 직접 천자문을 가르쳐주셨다. 한글도 모르는 꼬마가 기와집 사랑방에 앉아 천지현황(天地玄黃), 우주홍황(宇宙洪荒)을 달달 외웠다. 한 자라도 틀리기라도 하면 할아버지는 곰방대로 마룻바닥을 '땅 땅' 내리치며 "다시" 하고 호통을 쳤다. 기어이 여섯 살에 천자문을 뗐다. 정말로 1000자를 줄줄 욀 정도였다. 그해 할아버지는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할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천자문은 평생의 밑거름이 됐다. 단순히 한자 지식을 넘어 독서와 학습에 대한 흥미를 일깨웠다.
◇충청도에서 전학 온 한자(漢字) 신동
충남 연기군(현재의 세종시)에 살던 우리 가족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서울 창동으로 이사왔다. 학교에서 천자문을 술술 읊자 선생님들 사이에 '신동이 나타났다'고 소문이 돌았다. 아직 한글도 못 읽는 또래들이 많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한자 지식을 활용해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신문과 잡지를 매일 읽었다. 당시 인쇄 매체는 세로쓰기에 한자 투성이로, 어른도 읽기 어려웠다. 친구들이 공 차고 개구리 잡을 때 특이하게도 난 조선일보와 신동아를 읽었다. 책을 읽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푹 빠져버린 것이다. 한자를 알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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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년 독서량이 200권에 이른다는 대우증권 홍성국 사장은 "어려서부터 신문과 잡지를 탐독하고, 책벌레가 되고 지식이 쌓여 리서치 애널리스트로 성장했다"면서 "금융인이라면 평생 공부를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성형주 기자
초등 4학년에는 현대사의 바이블 격인 대하소설 '광복 20년' 스무 권을 다 읽었다. 공무원의 아들로, 과외 교습이란 호사를 누릴 처지가 아니었던 내게 책과 신문, 잡지는 훌륭한 과외 선생님이 돼줬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여운형, 김규식, 임영신 등 현대사 인물들에 대해 토론했다. 선생님들은 그런 내게 조금 더 관심을 보이고 존중해줬다. 그 덕에 성적은 항상 상위권이었다. 중·고등학교 진학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수험서 대신 정치나 역사를 다룬 책들에 푹 빠졌다. 일본에서 건너온 번역서 '태평양전쟁', '불모지대' 등을 탐독했다. 이때부터 세계를 보는 눈을 넓고 깊이 있게 키우기 시작한 것 같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82학번으로 입학한 후엔 문학에 빠져들었다. 당시 우리 학교는 2주마다 현대소설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해야 했다. 기타 치고 술 마실 시간도 모자란데, 다른 학생들에겐 이 과제가 아주 고역이었을 것이다. 나는 서강대 도서관에 살다시피 했다. 이문열, 이청준 등 당대를 대표하는 문인의 책들과 동인문학상·이상문학상 수상자들 책을 빠뜨리지 않고 읽었다. 현진건의 '빈처',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 등 제목은 들어봤지만 실제로 읽은 사람이 몇 없을 텐데 난 대학 때 읽었다.
◇지하철에서 책 읽으려고 운전면허 포기
나는 자동차 운전면허를 36세(1998년)에 땄다. 면허를 따고도 주로 아내가 차를 몰고 다녔고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매일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우이동 집에서 여의도 회사까지 마을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1시간 30분 걸렸다. 우리 집이 종점이다 보니 항상 앉아서 출퇴근하며 여유 있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남들은 왜 3시간씩 낭비하느냐며 자가용을 타라고 했지만 난 사양했다. 증권가 사람들처럼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직장인이라면 시간을 만들어서 책을 읽어야 한다.
사실 증권사에 입사한 후 한동안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가, 투자분석부로 오게 되면서 다시 책을 손에 잡았다. 부서 특성상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평생 다져온 독서 습관이 이때부터 빛을 발했다. 내 자랑 같아서 조금 민망하지만, 리서치센터에서 시장전망 보고서를 쓸 때 속도와 깊이에 관해 나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내년도 정부예산 삭감'이라는 뉴스 제목만 봐도 난 배경과 전망에 대해 일필휘지 써내려갈 수 있었다. 독서의 밑바탕이 받쳐주는 덕에 남들보다 빨리, 널리, 멀리 볼 수 있었다. 예컨대 리서치센터에서는 다음 주 전망 보고서를 주말에 써놓아야 하는데 나는 주말에 약속이 있으니까 미리 평일에 다 써놓곤 했다. 내용은 거의 맞아들었다. 고객들에게도 종종 책을 선물했다. 다이어트를 고민하는 고객에겐 제러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을 권해줬다. 평소 책을 잘 읽지 않는 고객이라면 형광펜으로 중요한 부분만 밑줄 쳐서 건네줬다. 세심한 배려에 감동한 고객들은 내 단골이 됐다.
◇할아버지가 가르쳤듯이 신입직원 교육
어려서부터 신문과 잡지를 탐독하고, 책벌레가 되고 지식이 쌓여 리서치 애널리스트로 성장했다. 내가 사장이란 자리에 오르기까지 과정은 곧, 일찍이 할아버지가 심어놓은 씨앗이 발현해 꽃을 피워 온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내가 우리 할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돼서 회사 신입직원들을 엄격하게 교육하고 있다. 최근에 시작한 대우증권의 신입 PB 집중교육 프로그램 'PB 사관학교'가 바로 이 같은 맥락에서 출발했다. 우리 신입직원들은 입사 직후 몇 달 동안 엄청난 양의 독서와 공부를 해야만 PB로 거듭난다.
금융인이라면 평생 공부를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금융업이란 기본적으로 현재 흐름을 짚고 미래를 내다보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가치를 어떻게 현재로 당겨오는가를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신입직원은 물론 모든 젊은 금융인들에게 "우리는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세일즈하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한다. 단편적인 지식은 인터넷에 다 있다. 검색만 잘하면 된다. 하지만 지혜는 오로지 공부하는 자만이 얻는 것이다. 지혜를 갖춘 PB가 많아져야 한국 금융이 발전하고, 우리 업계의 숙원인 '금융의 삼성전자'가 나올 수 있다.
☞홍성국 사장은...
홍성국(52) 대우증권 사장은 1986년 대우증권 신입공채로 입사한 후 29년간 한 회사에만 몸담아 온 정통 ‘대우맨’이다. 지점 근무 1년 반, 법인영업부 근무 4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리서치센터에서 보냈다. 2014년 대우증권 공채 출신으로 처음 사장 자리에 올랐다. 바쁜 증권사 업무 속에서도 세계경제의 흐름을 진단한 굵직한 저작들을 잇따라 내놓아 ‘증권계의 미래학자’로 통한다. 1년 독서량이 200권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대 사대부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