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빠진 美 연내 금리인상論

    입력 : 2015.10.13 10:05

    [피셔 美 연준부의장 "예상일 뿐 약속 아니다" 밝혀 인상 유보論 확산]


    中재정장관 "시기상조" 유보 촉구
    세계 증시는 반색, 일제히 상승… 원貨 환율, 15원 급락 1140원대로


    연내에 금리를 올리겠다고 했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가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고 있다. 글로벌 증시는 이런 미국의 변화를 대체로 반기는 모습이다. 12일 미국의 금리 인상이 내년으로 미뤄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퍼지면서 세계 증시가 일제히 상승세를 탔다. 전날 미국 뉴욕 증시가 0.2% 상승 마감한 데 이어 중국 상하이지수는 3% 이상 급등했고 일본 닛케이지수도 1.64% 올랐다. 한국 코스피지수는 0.1% 올랐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도 15원 넘게 하락하며 3개월 만에 1150원선을 밑돌았다.


    전 세계에 미국의 금리 인상 유보론을 확산시킨 진원지는 페루 리마였다. 이곳에서 열린 IMF 연차총회에 참석한 스탠리 피셔 미 연준 부의장이 "(연내 금리 인상은) 예상일 뿐 약속이 아니다"고 말한 것이 단초가 됐다. 겨우 이 말 한마디에 금융시장이 열띤 반응을 보인 것은 그만큼 세계 증시가 취약하다는 의미다. 미국의 금리 인상 변수에 금융시장이 너무 휘둘리자, 신흥국 일각에선 피로감을 호소하며 "그냥 금리를 빨리 올려버려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美 금리 인상 유보론(論) 확산


    미 연준은 그동안 연내에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예고해왔다. 지난 8일 공개된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에 따르면 17명의 FOMC 위원 중 13명(76%)의 위원이 올해 안에 금리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시장에서도 비슷한 전망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2~6일 월가 전문가 6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오는 12월 금리 인상을 전망한 응답자는 64%에 달했다.



    하지만 "연내 금리 인상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약속'이 아니다"는 피셔 부의장의 발언으로 미국의 연내 금리 인상은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퍼지고 있다. 박소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피셔 부의장의 발언은 미국이 금융시장에 충격을 가하면서 무리하게 금리를 인상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을 주기엔 충분하다"고 말했다.


    세계 경제 회복을 위해 각국의 정책 공조를 강조하는 자리인 IMF 총회에서 중국이 대놓고 미국에 금리 인상 유보를 촉구하고 나선 것도 미국의 금리 인상 연기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중국 러우 재정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의 경기 회복세가 강한 편이지만 아직 기준금리 인상의 조건을 갖추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증시와 실물경제의 불균형 지속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을 놓고 미국 금융 당국자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시장이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세계 증시가 '깨지기 쉬운 균형'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미 연준이 4조달러에 달하는 양적 완화 자금을 쏟아 붓는 등 그동안 중앙은행들이 돈을 풀어 금융 시장을 떠받쳐 왔지만, 실물경제의 회복세는 당초 기대보다 훨씬 더디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중국 경제의 감속(減速)이란 변수까지 보태져 세계 경제의 향방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안갯속 상황'을 헤맨다.


    더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들은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선제적 정책 안내) 등 '말로 시장 기대를 움직이는 통화정책'을 추구하면서 투자자들이 각국 정책 담당자의 입만 쳐다보게 하였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미국이 금리 인상을 단행하거나 단기간에 실물경제가 성장세를 보여주지 않는 한 글로벌 증시가 미국 금리 인상의 불확실성에 흔들리는 일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신흥국 일각에서는 "차라리 미국이 올려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IMF 총회에 참석한 타르만 샨무가라트남 싱가포르 재무장관은 "미국의 금리 인상 자체를 반기는 것이 아니라 경제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싶어 하는 심리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