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0.16 10:22
[정부·정치권, 규제 추진 논란]
"소수업체 독과점 구조 해소위해 대기업 참여 제한·수수료 인상"
업계 "글로벌 대형화 추세 역행"
中, 하이난에 세계최대 면세점
소형 위주로 운영해온 일본도 한국따라 긴자 등에 대형매장 계획
국내 면세점 시장이 연간 매출 10조원대로 성장한 가운데 정부와 정치권에서 '면세점 규제론'이 불거지고 있다. 소수 업체 중심의 독과점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대기업 참여를 제한하고, 면세점 특허(特許) 대가로 내는 수수료율을 대폭 상향 조정하자는 게 그 골자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면세점이 대형화하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일각에선 정부 인허가 제도를 전면 폐지하고 자유 경쟁 체제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대기업 진출 제한하고, 이익 환수해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15일 서울지방조달청에서 '면세점 시장 구조 개선'을 주제로 공청회를 열었다. 최낙균 KIEP 선임연구위원은 이날 주제 발표에서 "매출액 비중이 30% 이상인 시장 지배적 기업의 면세점 특허 입찰을 제한하거나 시장점유율 1~3위 기업에 대해 특허 심사 시 일정한 점수를 감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면세점은 대기업 매출 비중이 86.9%에 달하며 롯데·신라면세점이 전체 매출의 79.6%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독과점 구조를 완화하기 위해 대기업을 규제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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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룸버그
최 연구위원은 또 현재 매출액의 0.05%인 특허 수수료를 10배(0.5%)로 올리거나 매출액에 따라 단계별로 누진 인상하는 방식도 제안했다. 경매 방식으로 최고가(最高價) 수수료를 제시하는 기업에 면세점 특허를 배분하는 방안도 거론했다.
정치권에서도 규제 움직임이 뚜렷하다. 홍종학 새정치연합 의원은 최근 대기업 면세점 특허 수수료를 현행 0.05%에서 100배(5%)로 인상하는 관세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당 김관영 의원은 최고가 수수료를 써낸 사업자에 사업권을 주는 경매 방식을 도입하자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세계적 추세는 대형화·집중화"
면세점 업계는 이에 대해 "면세점 시장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단견(短見)"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규모의 경제를 위해 대형화와 집중화가 숨 가쁘게 진행되는 국제 면세 시장 흐름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독과점을 걱정하지만 세계 면세점 시장은 '공룡 기업'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스위스의 듀프리는 최근 10여 년간 10여 차례 공격적 인수·합병(M&A)을 통해 미국 DFS를 제치고 세계 1위 면세점이 됐다. 중국 국영 기업인 중국면세품그룹(CDFG)은 작년 하이난 섬에 세계 최대 면적(7만2000㎡) 면세점을 열었다. 국내 대형 면세점 10곳을 모두 합친 것보다 규모가 크다. 화장품 매장 면적만 해도 축구장 면적만한 8000㎡이다.
소형 면세 취급점 위주로 운영해온 일본도 우리나라의 면세점 모델을 따라 도쿄 시내 중심가인 긴자, 오다이바 등지에 대형 면세점 설치를 추진 중이다. 대만도 작년 5월 진먼다오(金門島)에 1만1200㎡ 면적의 대형 면세점을 열었다.
글로벌 면세점 업계가 대형화에 나서는 것은 콧대 높은 해외 명품(名品) 브랜드에 대한 협상력을 높이고, 경영 리스크(위험)를 줄이려는 목적에서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국내 면세점 중 5% 이상을 영업이익으로 남기는 회사는 한 곳밖에 없을 정도로 면세점은 이익을 내기가 쉽지 않은 업종"이라며 "대형화를 통해 자본을 늘려야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1980년대 말 대기업 30여 곳이 운영하던 시내 대형 면세점은 현재 10여 곳으로 줄었다. 정부는 2012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중소기업 12곳에 면세점 허가를 내줬지만 이 중 4곳은 허가권을 반납했고, 1곳은 관세청으로부터 취소를 당했다. 남은 중소 면세점도 재정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면세점 진입 장벽 없애야"
15일 공청회에서는 면세점에 대한 정부의 인허가 장벽을 없애고 자유 경쟁 체제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정재완 한남대 교수(무역학)는 "허가 제도를 아예 없애 면세품에 대한 관리 역량이나 시설을 갖춘 사업자라면 모두 허가를 해줘야 한다"며 "이렇게 하면 독점에 따른 특혜 시비가 없어지고 자유로운 경쟁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경쟁자들과 맞설 수 있도록 규제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면세점 시장은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반도체 시장과 비슷하다"며 "독과점의 잣대로 국내 시장을 바라보면 경쟁력 있는 기업이 나올 수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