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 너무 높아... ISA 벌써부터 실효성 논란

    입력 : 2015.10.22 09:31

    [내년 도입 앞두고 우려 목소리]


    근로자·자영업자로 한정, 稅혜택 통한 재산 형성 절실… 은퇴·구직자는 가입 못해
    '부자 감세' 논란 피하려다 정작 필요한 계층은 소외
    수익 200만원까지 비과세… 英·日은 소득 전액 비과세


    서민층의 재산을 불려줄 목적으로 내년에 도입되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출시 전부터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입법 과정에서 계좌 가입 자격이 '근로소득자 또는 자영업자(사업소득자)'로 한정돼, 근로소득이 없는 은퇴자나 청년 구직자, 프리랜서, 영세 농어민 등 세제 혜택을 통한 재산 형성이 절실한 계층의 가입이 원천 봉쇄됐기 때문이다.


    ISA는 계좌 하나에 예·적금, 펀드, 파생상품 등 다양한 금융 상품을 골라 담아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는 통합 프로그램이다. 의무 가입 기간인 5년 동안 계좌 속 모든 상품의 이익과 손실을 합산한 순수익에서 200만원까지는 세금을 물리지 않고, 200만원을 초과하는 수익에 대해서는 9% 분리과세(지방소득세 포함 시 9.9%)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런 다양한 혜택이 망라돼 '만능 계좌'라는 별명도 붙었다. 20대의 결혼·전세자금 마련과 30~40대의 주택 마련, 50대 노후 대비를 고루 도울 수 있다고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ISA 가입 자격 지나치게 제한


    하지만 현재의 가입 기준대로라면 실제 혜택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수입이 뚜렷한 사무직이나 치킨집 사장 정도에 불과하다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평균 퇴직 연령이 55세임을 감안할 때, 연금이나 임대 수입 등으로 살아가는 55세 이상 장년층은 현실적으로 가입이 어렵다. 또,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일하는 단기 아르바이트생 등 다수의 비정규직 근로자 역시 혜택을 못 받을 공산이 크다.



    엄격한 가입 자격 때문에 실수요자들이 외면했던 재형저축(근로자재산형성저축)이나 소장펀드(소득공제장기펀드)처럼 흥행 실패가 불 보듯 뻔하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오는 이유다. 재형저축과 소장펀드 모두 가입 자격을 총급여 5000만원 이하로 한정했더니, 생활비를 뺀 남은 돈으로 재테크를 할 여력이 있는 실수요 계층은 가입조차 할 수 없어 가입자 수가 당초 예상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할 정도였다.


    ◇영국, 일본은 가입 자격 제한 없어


    ISA를 가장 먼저 도입한 원조 국가 영국과, 최근 영국을 따라 제도를 도입한 일본은 가입 자격에 사실상 제약이 없다. '16세 이상'(영국) 또는 '만 20세 이상'(일본) 거주자면 누구나 가입이 가능하게 돼 있다. 대부분 국민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서다. 덕분에 영국에서는 지난 1999년 ISA 도입 이후 국민의 40%가 이 계좌에 가입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영국에선 4년 전 미성년자를 위한 '주니어 ISA'까지 도입해 조부모가 손자·손녀에게 재산을 상속하는 제도로까지 활용하고 있다.


    유독 국내에서 가입 제한이 생긴 것은 정부와 정치권이 '부자 감세' 논란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재형저축이나 소장펀드처럼 총급여 한도는 없지만, 세원(稅源)이 확실한 서민층만 대상으로 삼으려다 보니 다른 나라에는 없는 가입 제한이 생겨나게 됐고 그 바람에 사각지대가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세제실은 근로소득자와 사업소득자만 해도 1970만명가량으로,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4분의 3이 혜택 범위에 들어가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국회 일부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총급여 한도를 두자는 주장마저 나오는 판국이다.


    ◇"비과세 혜택(200만원 한도) 쥐꼬리"


    국회예산정책처와 자본시장연구원 등의 전문가들은 ISA에 대해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투자수익 200만원에 대한 비과세 혜택을 보겠다고 기존 예금과 펀드 상품을 헐고 새로 가입하려는 유인(誘因)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ISA가 성공한 영국·일본은 이 계좌 안에서 발생한 소득 전액에 비과세 혜택을 준다.


    천창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ISA로 인한 세후 수익률 증가 효과가 크지 않아, 이 계좌에 새로 가입해야 할 인센티브가 부족해 보인다"며 "그렇게 되면 기존에 금융자산을 가진 사람들의 차익실현 도구 정도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비과세 범위를 획기적으로 늘리거나, 200만원 초과분에 대한 세율을 확 낮추는 등의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ISA


    영국과 일본에서 먼저 도입돼 내년 국내에도 출시될 예정인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Individual Savings Account). 5년간 매년 2000만원 한도로 예금, 적금, 펀드, 주가연계증권(ELS),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한 계좌에 담아 통합관리하면서 발생하는 수익 200만원까지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한국형 ISA는 영국·일본에 비해 제약 조건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