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0.30 09:27
[Cover Story] 오늘부터 계좌이동제 시행… 자동이체통장 변경 간편해져
직장인 고정욱(38)씨는 매달 25일이면 본인 신한은행 계좌에서 우리은행 계좌로 200만원가량 이체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신한은행 통장은 급여가 들어오는 월급 통장이고, 우리은행 통장은 보험료·관리비·카드 값 등이 빠져나가는 자동이체 통장이다. 고씨가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하는 것은, 이직 과정에서 기존 회사에서 쓰던 월급 통장을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씨는 "우리은행 통장으로 돈 보내는 것을 잊어 하루 이틀 연체 경험도 있다"며 "몇 번이나 은행을 가려고 했지만 업무시간과 은행 영업시간이 겹치다 보니 결국 가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30일부터는 고씨 사례와 같은 불편이 줄어든다. 자동이체 통장을 편리하게 바꿀 수 있는 '계좌 이동제'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계좌 이동제는 인터넷 등을 통해 자동이체 계좌를 간편하게 바꿀 수 있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소비자들은 불편을 줄이면서 은행이 제공하는 혜택도 누리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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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픽=양인성 기자
페이인포 사이트에서 간편하게 이용
계좌 이동을 하려면 우선 금융결제원이 이미 마련해 놓은 '페이인포(www.payinfo.or.kr)' 사이트에 접속해야 한다. 이 사이트는 별도의 회원 가입이 필요 없고, 주소 같은 개인 정보를 여러 개 입력하는 불편이 없다.
개인정보 처리에 동의하느냐는 물음에 '예'를 클릭한 뒤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면, 인터넷뱅킹을 할 때 사용하는 공인인증서 창이 뜨고 여기에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본인이 걸어두고 있는 각종 자동이체 목록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보험료, 관리비, 카드 값, 통신요금 등 납부 계좌를 본인의 다른 계좌로 옮길 수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자동이체 항목을 다른 계좌로 옮기거나, 여러 통장으로 분산돼 있던 자동이체 항목을 하나의 통장으로 통합하는 등 소비자가 편리한 대로 활용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신청한 계좌 변경은 5영업일(은행이 문 여는 평일을 의미함) 이내에 실행을 확인할 수 있다.
일단 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등 16개 시중은행이 서비스에 참여한다. 그래서 16개 은행에 걸려 있는 자동이체 목록만 페이인포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고, 통장 변경도 16개 은행 내에서만 가능하다. 금융 당국은 서비스 진행 상황을 보면서 증권사, 저축은행 등 나머지 금융사들도 참여시킬 계획이다.
또 내년 2월부터는 집 주변 은행 지점이나 각 은행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도 계좌 이동제를 이용할 수 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내년 2월부터 페이인포 사이트에 접속하지 않고 근처 은행 지점을 찾아 은행원에게 A은행에서 B은행으로 계좌를 이동시켜 달라는 신청이 가능하고, 각 은행 인터넷 사이트도 활용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은행권, 800조 시장 놓고 격돌
시중은행들은 계좌 이동 고객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금융 당국에 따르면 작년 자동이체 시장 규모는 26억1000만건에 금액은 799조8000억원에 이른다. 국민 1인당으로 하면 한 달 평균 8건씩 30만원의 자동이체를 하는 셈이다. 이를 통해 은행들은 수수료 수입을 올릴 수 있어 결코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그러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은행 고객들은 자동이체 통장을 갖고 있는 은행에서 다른 금융 거래도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자동이체 통장에 일정 잔액을 넣어두는 기초적인 거래는 물론 예·적금 가입, 개인퇴직연금 가입, 신용카드 개설 등 대부분의 금융 거래를 주거래 은행에서 하는 것이다.
특히 마이너스통장·주택담보대출 등 은행의 주 수익원이 되는 대출 거래나 수수료 수입을 안겨주는 환전 등의 거래도 대부분 주거래은행에서 하고 있다.
결국 자동이체 통장을 시작으로 많은 금융 거래를 끌어올 수 있는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자동이체 통장을 뺏기면 그에 수반하는 다른 거래 가능성도 모두 뺏기는 것"이라며 "기존 고객을 지키면서 다른 은행 고객을 끌어오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객들은 그냥 움직이지 않는다. 한 푼이라도 혜택을 더 주는 곳으로 옮겨 간다. 이를 위해 각 은행은 집토끼(기존 고객)를 지키면서 남의 집 토끼(다른 은행 고객)를 데려오기 위한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잘만 활용하면 기존에는 누리지 못했던 혜택을 챙길 수 있다.
은행별 혜택은 뭐가 있나
KB국민은행의 'ONE 통장'은 관리비 등의 이체 실적 혹은 KB국민카드 결제 실적이 매월 1건만 있으면 3개 수수료(전자금융 타행 이체 수수료, KB자동화기기 시간외출금 수수료, 타행 자동이체 수수료)를 무제한으로 면제해 준다. 여기에 급여 이체, 연금 수령, 가맹점 결제 중 1건 이상 실적이 있으면 3개 수수료(타행 자동화기기 출금 수수료 월 5회, SMS입출금내역 통지 수수료, KB자동화기기 타행 이체 수수료 월 10회)를 추가 면제한다.
신한은행은 '신한 온가족 주거래 우대 통장·적금 패키지'를 내놨다. 한 가족이 서비스를 신청하는 방식인데 우대 요건은 4가지다. 식구 중 한 사람이 4가지 우대 요건을 모두 채우거나, 식구들이 1~2개씩 나눠 4가지를 채울 수도 있다. 그러면 한 가족 모두 우대 혜택을 받는다.
우리은행은 '우리 웰리치 주거래 패키지'를 내놨다. 급여 또는 연금 이체, 관리비 등 자동이체, 우리카드 결제계좌 지정 등 세 가지 중 둘 이상 충족 시 수수료 면제 등 혜택을 준다. 또 예금과 적금의 장점을 결합한 주거래 예금 등 상품도 출시했다.
KEB하나은행은 정기예·적금, 주거래 통장 등을 포괄하는 '행복투게더 패키지'를 내놨다. 월급, 공과금 이체 등 주거래 요건 중 1개만 충족해도 자동화기기 타은행 이체 수수료를 무제한 면제한다. 또 주거래 요건 중 2개 이상 충족하면 다른 은행 자동화기기와 창구 이체 수수료도 최대 10회 면제한다. 관련 상품인 '행복투게더 정기예금'은 최고 0.3%포인트의 우대금리를 제공하며 '행복투게더 적금'은 1·2·3·5년제 중 가입 기간을 선택하면 최고 연 2.6%의 금리를 받을 수 있다.